상단영역

본문영역

외로움에 관하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자란 나이에서 느끼는 외로움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는 것이 또 있을까. 고3. 첫 번째 수능, 준비되지 않은 이는 얼마나 나약하며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내 온 몸의 신경을 동원하여 받아냈던 그 날들. 나는 재수를 결정하고, 너는 대학을 가고, 저 아이는 공부를 놓는구나.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것이 당연했던 이들이 두 세 갈래의 길을 만나 흩어지던 때 느낀 내 생에 첫 외로움은, 그럼에도 함께 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동질감과 만나 야릇하고 묘하게 내 품에 안겼다.

  20살의 여름. 같은 길을 가기로 했던 이들 사이에서 벗어나 나는 독서실에서, 온전한 홑몸의 길을 걸었다. 어린 패기로 상정한 드높은 목표를 바라보며 펄펄 끓던 19살의 열기는 그 시절 유독 많이 내리던 비를 보며 식었다 다시 뜨거워지기를 반복했다. 하루에 내뱉는 말이라고는 편의점이나 식당에 들러 내뱉는 인사치레 몇 마디가 겨우. 저 밤하늘 위 뜬 달도 내 목소리가 궁금한지 그리도 서둘러 찾아왔던 걸까.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내 하루를 낱낱이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럽게 고하곤 했다. 항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들어주던 그들이기에 나는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이 나름대로 유익하고 독특하며 그렇기에 지난 겨울의 그 선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 무서운 줄 몰라 큰소리치는 데에만 자신 있던 아들 녀석이 골방에 틀어박혀 기계 같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앓던 속을 어쩜 그리도 당신 자식에게는 하나도 내비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사회로부터 자발적 격리를 행한 나의 고독함이 부패가 아닌 숙성이 되도록 이끌어 준 것이다. 20살의 독학재수. 도전이라 쓰고 외로움이라 읽었으며, 사랑이라 들렸다.

  21살에도 수능이라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 위의 발자취는 그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걸어가는 내 길의 사방엔 아름답고 찬란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굳이 어려운 발걸음을 택한 나를 이해하지 못한 시선만이 내 곁을 감싸 돌고, 한 걸음 한 걸음 숨이 가빠오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두드려보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돌다리, 안개가 자욱하여 보이지 않는 이 길의 끝. 모든 것이 불안했고 불확실했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시간 속에서 고통 받던 어느 날, 세 번째 외로움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었다. 길이 아닌, 나를 보는 것. 내가 택한 무언가가 아닌, 자신 자체를 믿고 살아가는 삶. 그리고 그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거울이 내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던 날, 나는 외로움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외로움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던 나는 22살엔 원하는 것을 이루어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원하는 의과대학 진학을 또 다시 실패했고, 그것이 간발의 차였다는 사실과 네 번째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겨움, 그리고 누적된 두려움은 나를 방구석의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수험 생활에 지출되는 비용이 죄송스러워 부끄러운 얼굴을 겨우 치켜들고 학원이나 카페, 과외 등으로 돈을 버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22살의 나. 원대한 꿈에 비해 이루어낸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나. 알바를 통해 사회의 작은 모습에 직면했을 때, 소위 말하는 스펙이랄 것도 없는 나는 거친 풍파를 견뎌낸 수많은 사회인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력해졌으며, 무정한 외로움은 현실과 결합해 성공에 대한 강박과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들고 나를 찾아다녔다. 심한 난독증을 겪고, 숱한 감정의 기복들 사이에서 바다를 채울 만큼의 눈물을 흘리며, 외로움은 무기력이라는 가면을 쓴 채 네 번째 수능 고사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간다. 정신의학 교수가 꿈이라고 당차게 소리치며 수많은 새벽과 맞서 싸우던 19살의 어린아이는 수차례의 좌절과 절망을 겪고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느끼는 첫 번째이자, 20대의 내가 최초로 느끼게 된 소속감. 허나 나는 여전히 외롭다. 수험생활 동안의 외로움을 무엇이든 집어 삼켜버리는 검은색의 괴물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다면, 대학 생활을 접하며 느끼는 외로움은 하얀색 도화지에 가깝다고나 할까. 낯선 경험과 즐거움은 내 눈과 정신을 빼앗아가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토록 바쁜 하루 끝에 엄습하는 부모님 생각, 그리운 고향과 바다, 우리 집 강아지 로이와 에디.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하기에 불안했고 불안했기에 불행하던 지난 시간들 따위의 것들이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도화지 위를 넘나들 때면 나는 또다시 새로운 느낌의 외로움을 맛보는 것이다.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말라붙은 당신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 미국의 소설가 펄 벅(Pearl Buck, 1892-1973)이 남긴 말로 외로움에 대한 글귀들 중 가장 내 마음과 공명하였던 한 줄의 문장이다. 종종 나는 이를 반추하며, 삶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여정 속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동안 외로움이 항상 나와 함께 했음을 돌이켜 본다. 외로움은 모든 감정 혹은 사고와 결합하여 나를 찾아오기에 그가 가진 얼굴은 앞으로도 무수할 것이며, 나이가 들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감에 따라  새로운 얼굴을 한 채 내게 다가올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안다. 때로는 성숙의 계기가 되기도, 때로는 극한의 고통이 되기도 했던 그가 아직은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외로울 땐 끝까지 외로워봐야 한대서, 또는 미워도 정든대서, 나는 외로움이 좋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