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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부터 바로크까지, 원근법으로 본 미술의 흐름예술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관점(觀點)의 조언을 건네다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 일명 ‘원근법 무시.jpg’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사진들이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분명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앞 사람의 얼굴보다 작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띌 만큼 확연히 커, 원근법이 무시되었다는 사진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한 마디로, 앞사람보다 뒷사람의 얼굴이 크다는 것을 웃음거리로 만든 셈이다.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미술 시간을 떠올려보자.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작품에 원근법을 적용시켜야 한다. 이처럼 원근법은 21세기 현대의 삶을 살면서 우리가 익숙하게 듣고 배우는 법칙이다. 그러나 15세기 유럽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가 이 원근법을 수학적으로 체계화 시켜 예술계에 도입하자 일정 수준의 회화에 머물렀던 미술은 인류 최대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유치원 아이 그림 수준의 회화가 원근법을 만나 사실적이고 완벽하게 현실을 재현해 내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뒤흔들어 놓아 세계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꼽히는 원근법, 그 실체를 알아보자.

 

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원근법의 역사

원근법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르네상스(14세기~16세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이 이를 자체적으로 발명해낸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이전 이집트, 그리스에서 발견한 수학적,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원근법이라는 방법을 정립해냈다. 본격적인 원근법이 나타나기 전 소실점의 개념이 대두되는데, 소실점이란 그림 속 물체의 연장선을 그었을 때, 그 선들이 하나로 수렴되어 사라지는 점을 말한다. 이와 실제적 관찰을 기반으로 브루넬레스키는 그림을 그리며 공간 속 물체가 보는 사람에게서 멀어질수록 작게 보인다는 사실을 원근법으로 이론화 시켰다. 즉 르네상스 시대는 우리가 두 눈을 통해 외부 세계를 시각적으로 지각하는 바를 2차원 평면에 수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일명 ‘황금 부흥기’라고 불린다. 이렇듯 르네상스에 접어들어 예술은 원근법을 발판삼아 획기적인 도약을 해내고야 말았다. 추상적이고 일차원적인 묘사에서 시간 속에 사라져버린 그 순간을 팔레트에 완벽히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시점이 하나로 모이는 것을 소실점이라 부른다/출처:pixabay

 

원근법이 쏘아올린 작은 공, ‘시점(視點)’의 변화를 이끌어내다

앞서 언급한 효과가 미술계에만 영향을 끼쳤다면, 이제부터 얘기할 원근법은 전반적인 사람들의 ‘시선’, 즉 생각을 바꾸기에 이른다. 르네상스 직전까지도 사람들은 종교에 얽매여 살아왔다. 모든 그림은 오롯이 신에 의해, 신을 위해 그려졌으며 화가들은 주체성 없이 그림을 그리는 장인이었을 뿐, 그림 안에 그들의 생각을 담아낸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시선’의 반란이 일어났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원근법이탄생하면서 이러한 종속적인 생각은 후퇴하게 된다. 내 눈으로 본 것에 내 생각을 담아낸 그림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평생 성경에 묘사된 회화만을 관람해왔던 사람들의 시야에도 신선한 충격이 가해졌다. 대중들의 객관적이고 공적인 시선은 대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눈과 주관적인 자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근대적인 사상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적이고 개척적인 정신은 17세기 바로크 시대로 접어들어 물질주의의 종말을 본 사람들에게 허무주의를 심으며 다시 이전의 수동적인 인간의 시점으로 회귀하게 만들었다.

 

신을 넘어선 주체적 ‘자아(自我)’를 시작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이제 신의 세계를 일방적으로 모방하는 시대는 종결되었다. 인간은 신의 자리에 올랐고 전지적인 시점을 가졌다. 이 관점을 자신의 사상에 완벽히 녹여낸 철학가가 있다. 바로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이다. 그는 한 평생을 의심하며 살며 역사 속 ‘지독한 의심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끊임없이 의심했던 데카르트가 유일무이하게 인정한 명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모든 것은 참이 아닐 수 있으나 생각하는 나 자신만큼은 인정하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명제에 따르면 세상 모든 것이 부정된다고 하더라도 자아는 살아 숨 쉰다. ‘생각하는 자아’가 나타나자 인간은 신에게 억눌려 찾지 못했던 주체성을 되찾았다. 그렇게 개인(자아)주의가 시작되었고 인간은 한계에 거듭 도전을 시도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물질세계는 신의 생각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도구를 통해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전쟁을 시작하고 기계를 발명하고 공장을 만들어 신이 내린 풍요물인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출처:pixabay

그렇다면 자아를 확립한 화가들은 그들의 주체성을 회화 속에 어떻게 담아냈을까? 이 궁금증의 해답은 ‘수태고지(受胎告知)’에서 나타난다. 수태고지란 마리아가 성령을 입어 예수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천사가 전해주는 장면을 뜻한다.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불멸의 신성함을 어떻게 사실적인 원근법으로 표현해야 할까? 이전 시대의 화가들은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이를 신의 관점인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당시 화가들은 이를 거부하고 본인 스스로 원근법을 파괴해 ‘텍스트’를 담았다. 즉, 더 이상 그림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그들이 의도한 텍스트 하나하나에 부여된 상징과 함축적인 의미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화가는 이를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지성을 뽐낸다. 그림이라는 네모난 창이 화가가 만들어낸 관점을 관조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생각의 틀로 바뀐 것이다. 

▲수태고지/출처:pixabay

15세기 사람들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지만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인간만능주의로 역사에 오류를 남기기도 했다. 기독교의 새로운 시점을 알리는 종교 개혁, 신대륙 발견, 과학의 발달로 유럽은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진 정복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기아와 전염병 등의 문제가 함께 발생했다. 이에 전지적인 세계의 덧없음을 깨달은 17세기 바로크인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대한 사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인식했다. 메멘토 모리는 작품 속 해골, 썩은 음식 등에 비유되어 표현된다. 이런 점은 카라바조의 작품 중 <Bacchus>에서 보이는데, 술의 신 바쿠스 옆에 놓인 과일들을 주목해보자. 싱싱한 과일 옆에 대비되듯 썩은 과일이 놓여있어 결국 풍요의 상징인 과일도 썩게 되는 유한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바로크 시대는 결국 시간이 흘러 죽음으로, 무(無)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죽음에 속절없이 굴복하라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은 이를 기회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당장 눈앞에 주어진 생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라고 권유한다.

▲모멘토 모리/출처:pixabay

결국 원근법의 탄생으로 시작해 내 자신을 찾고 이를 사용해 신의 위치까지 올라갔던 인간은 다시금 본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내 삶에 명확히 위치한 죽음을 피해 영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남은 일생을 물질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려는 믿음을 가진다. 앞선 15세기처럼 현재 21세기는 인간의 오만으로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있다. 그리고 어쩌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최대의 황금 예술 부흥기를 이끈 원근법은 우리에게 시대를 앞서 조언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질에 사로잡힌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할 때라고 말이다.

▲카라바조의 /출처:pixabay

 

김나은 기자  smiles3124@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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