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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생의 집합소 영등포시장에 담긴 삶의 모습들

주변부의 삶을 그린 『삼오식당』(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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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야외 수업으로 대전역 뒤에 위치한 ‘쪽방촌’이라 불리는 동네를 찾아간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 설명하시길, 과거 도심이었던 대전역 근처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한 평 남짓한 작은 방들이 모여 이곳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구도심으로 주변이 많이 낙후된 지금 그곳에는 누군가에게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었다. 살고 있는 도시의 좋은 모습, 밝은 모습만을 봐오던 고등학생의 기자에게 그러한 도시 뒷면의 모습을 마주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사회의 좋은 모습만 보고 싶었는데 실수로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봐버린 느낌이었다. 이 책 『삼오식당』 역시 기자에게 같은 충격을 주었다. 우리가 외면하고 보려 하지 않는 사회 저 언저리에 있는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유독 피곤한 하루였다. 어제 늦은 잠자리에 들었던 탓인지, 학기 끝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빠져 오는 피로감 때문인지 강의 시간 내내 내려오는 눈꺼풀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졸음으로 가득했던 강의가 끝난 후 기자는 졸음이 채 가시기 전 영등포시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삼오식당』은 영등포시장에서 나고 자란 이명량 작가의 소설로, 작가는 소설 속에 ‘지선’이라는 자전적 인물을 등장시켰다. 지선 역시 영등포시장에 위치한 삼오식당 아줌마의 둘째 딸로 영등포시장에서 태어나 계속해서 그곳에 살고 있다. 소설은 그 누구보다도 영등포시장의 모습을 속속히 잘 아는 그녀, 지선에 의해 사람에 주목하여 어느 시장의 묘사보다 상세히 그려진다.

 

 

우리는 이제 장텃길로 접어드는 행길 입구에 서 있었다. 살림집들만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골목을 벗어나 여기저기 발 디딜 곳 없이 파라솔이 난립해 있고 공판장 담벼락에 세워둔 구루마의 바퀴에다 대고 용변을 보는 사내들은 꼭 한두 명씩은 마주치게 되는 장텃길 앞에 이르러, 영철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소설은 지선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삼오식당을 중심으로 주변 상점들 사람들과, 영등포시장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상점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는 전혀 포장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채 우리에게 전해진다. 다소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받았으니 기자는 괜히 겁을 먹어 시장으로 향했다. 영등포시장 앞에 다다를 때까지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기자를 서성이게 했다. ‘들어갈까, 말까’하고 고민하며 시장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당연한 결과가 기다리는 고민 끝에 들어간 시장의 모습은 기자가 아는 어느 시장과 다를 것 없는 시장의 모습이었다. 익숙한 시장 냄새가 났고, 익숙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었으며 익숙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모습을 왜 두려워했던 것일까. 아마 시장 사람들의 포장되지 않은 삶을 낱낱이 알아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이 그려내고 있는 영등포시장 사람들의 삶은 우리 사회 그 누구와 다를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다만 우리 사회 구석으로 밀려난 그들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속살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그들의 삶이 무섭게 또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아직 깜빡 거리고 있는 사이에 나는 벌써 우리 엄마가 밥장사하고 있는 골목, 정희네 엄마가 커피 구루마를 끌고 다니는 골목,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주렁주렁 매달린 새끼들에게 발목 잡힌 채 “죽어라! 죽어라!”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어머니들이 드글드글 북새통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저 장텃길 안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시장에는 과일 장사, 커피 장사, 국밥집, 떡볶이 가게 등등 다양한 상점과 가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모습은 아니었으나, 활기차고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시장을 구경하며 가다 보니 공중화장실이 보였다. 소설 속에도 공중화장실이 등장한다. 소설 속 공중화장실 앞에는 만나면 똥 밟았다는 의미로 별명이 지어진 똥할매가 있다. 화장실에 가려면 화장실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똥할매에게 요금을 지불해야 하고, 만약 이를 지불하지 않으면 똥할매에 의해 화장실에 갇히게 된다.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는 시장에서 거의 유일한 화장실이었으나 시장 사람들은 똥할매로 인해 이를 거의 이용하지 않고 시장 구석에 있는 수챗구멍에 일을 보았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작가는 매우 열악한 시장 환경을 보여주었다. 기자가 마주한 공중화장실은 똥할매가 없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화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그래도 그곳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낡고 무너질 듯한 모습이었다. 열악한 장소에서 장사하며 힘든 오늘을 보낼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장바닥에서 장사꾼 여편네로 한평생을 살아온 여자들 중에는 몸 성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탈장 수술을 몇 번씩이나 했고 누구는 무릎에 대못을 수십 개나 박아 넣었고 ···(중략)··· 그렇게 고질병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고 보면 몸이 안 아프다는데 그보다 더 달콤한 유혹은 없었던 것이다. 

 

기자는 시장 골목에서 나와 영등포역으로 가기로 했다. 골목을 나오자 기자를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의료기 가게들이었다. 기자는 이 가게들이 매일 물건을 나르며 힘겹게 일을 하니 몸이 성치 않아 고생하는 시장 사람들을 겨냥하여 이곳에 자리 잡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 속 영등포시장 사람들 역시 누구 하나 빠짐없이 아픈 구석이 없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했듯이 의료기 가게로 모여들었다. 의료기 가게 사람들은 시장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들에게 시장 사람들은 의료기를 사게 될 손님에 불과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을 생각하니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여러 의료기 가게를 지나쳐 소설 속 건양병원으로 등장하는 김안과병원 앞을 지나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영등포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기자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사진 전공하세요? 저는 사람을 전공하고 있습니다.”라며 말이다. 아무래도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기차역과 시장 주변인 이곳이 자신의 뜻을 알릴 사람을 찾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을 했을 것이다. 도시가 발달하며 교통이 편리한 기차역 근처에 시장이 형성되었고,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발달한 기차역 주변에는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주변부 사람만 남게 되었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지만, 자신이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이 주변부에 주목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달해주고 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살아가기 위해 억척스러워도 묵묵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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