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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도시 속 끝없는 직각과 직선의 세계주거 부족 문제 극복에서 인간 소외 문제의 대두까지

“공간의 양상은 인간의 행태를 그대로 규정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의 말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형태가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느냐는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주택에서 6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주거 양식은 아파트였다. 앞선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와 통계청 자료를 통해 미루어 볼 때, 아파트란 주거 형태가 한국인의 삶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00년 전까지 만해도, 5층 이상의 건물 하나 보기 어려웠던 이 땅은 이제 끝없는 직각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아파트가 즐비해 있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의 많은 세대는 아파트를 사고, 아파트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이처럼 현대 한국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로마 시대 인슐라

아파트의 역사: 로마시대부터 18세기 산업혁명까지

그렇다면 아파트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아파트는 2,000년 전 로마시대의 주거 양식인 ‘인슐라’를 기원으로 한다. 당시 로마의 주요 도시는 현대 도시와 마찬가지로 인구밀도가 높고, 땅값이 비쌌다. 따라서 고위층을 제외한 서민층이 집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당시 6층 정도 건물에 상점 용도인 1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층을 주거 용도로 세를 놨는데, 이러한 주거 형태를 인슐라라고 불렀다. 이처럼 인슐라는 당시 로마 서민층의 주거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실제 인슐라는 다른 건물 보다 많이 지어졌는데, 당시 단독주택이 2천여 채 정도 있었던 반면, 인슐라는 5만여 채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이 지어진 인슐라는 당대 서민층의 아픔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당시 고위층은 서민층의 세를 더 많이 걷기 위해 무리하게 높은 층의 인슐라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건물이 붕괴되며 인슐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다. 이후 인슐라는 로마시대가 쇠퇴함에 따라 자취를 감추었다.

인슐라 대신 지금의 아파트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 유럽이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주거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따라서 대도시에서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고, 제대로 된 위생시설 또한 없어 도시에는 오물과 매연이 차고 넘쳤다. 이에 당시 영국 정부는 주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은 면적에서 최대한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 양식을 고안했고, 이에 따라 높은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것이 아파트인 것이다. 이처럼 아파트는 시대에 따라 용어나 모습은 변했지만, 주거부족 문제를 위해 만들어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시떼 하디유즈(Cite radieuse)

아파트를 통해 공동체의 이상을 꿈꾸다: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근대 건축가들은 아파트를 통해 주거부족 문제 극복뿐만 아니라 중세와는 다른 근대만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은 기술의 합리성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무거운 콘크리트를 지탱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하여 건물을 높이 쌓아 올렸다. 이에,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에는 인간의 기술 활용 능력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기술의 활용으로 쌓아올린 아파트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표준화된 생활공간을 만들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공동의 공간을 확보하여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도시계획 ‘빛나는 도시’를 발표하며, 현대생활에 있어 거주, 여가, 노동, 교통을 도시의 가장 중요한 활동기능으로 꼽았다. 그리고 이 활동기능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가 건축한 시떼 하디유즈(Cité radieuse)는 총 337개의 생활공간이 있어 약 1,600명의 주민이 거주 가능했으며, 상점, 사무실, 체육관 등이 구비되어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다. 이처럼 그는 아파트를 매개로 하여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이 쉬고 즐길 수 있는 ‘아파트 유토피아’를 꿈꿨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

한국의 아파트 문화

이처럼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형성된 아파트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다. 당시 일본에서의 아파트는 공동주택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는 한국에도 그대로 도입되어 사용된다. 당시 1933년 「신동아」 잡지에서는 아파트를 ‘현대적 도시의 산물로 미국에 가장 크게 발달되어, 독신 샐러리맨이 많이 사용하는 빌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에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는 1930년 충정로에 4층 규모의 유림아파트였다. 그러나 산업화 이전까지 아파

트 건축은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았으며,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기존 주택보다 높은 건물로만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한편, 정부에서는 산업화에 따른 도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파트에 많은 사람들이 입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포 아파트 준공식에 참여하여, 아파트를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생활혁명의 시금석으로 표현했다. 그의 치사에서는 이전 서구 근대 건축가가 상상했던 것처럼 공간의 변혁을 통해 사회의 개혁과 생활의 혁명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아파트와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비교하며 기존의 생활양식에서 벗어나 서구의 합리성과 근대적 편리성에 바탕을 둔 아파트를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후 정부의 대대적인 아파트에 홍보가 이루어진 후, 아파트 개발이 급격하게 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아파트 개발은 근대화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포 아파트를 시작으로 아파트 내 ‘단지’가 형성되며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기존 주택과는 상당히 다른 점을 보였다. 화장실이 집안에 구비되었으며,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편리함과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주택보다 싼 가격 덕에 경제적 이득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아파트의 장점으로 인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아파트는 도시와 시골을 불문하고 보편적인 주거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파트는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단절되어 이웃 소외의 문제를 야기했다. 또한 주거 공간의 획일성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환경 역시 획일화되었으며, 폐쇄적 아파트 단지의 환경으로 아파트 단지의 고립과 같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도심 속 성냥갑처럼 똑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갑갑해하면서도 아파트의 편리성과 높은 가격으로 되팔수 있는 환금성에 묶여, 여전히 아파트에 목 매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주거 문화를 가리켜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이와 같은 과도한 아파트 개발과 과도할 정도의 아파트에 대한 욕구에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 『옥상의 민들레꽃』에서는 주인공이 살고 있는 궁전 아파트에서 연달아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에 궁전 아파트 내에서는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해 자살 방지책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들이 죽음을 택했던 이유는 이웃과의 단절과 획일화 된 공간에서 느낀 소외감 때문이었다. 아파트는 우리에게 공간 부족 문제 해결과 편리함을 줬지만, 이웃 소외와 폐쇄적인 아파트 문화라는 문제를 안겨주었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르 코르뷔지에가 아파트 건설을 통해 얻고자 했던 인간소외 극복과는 멀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인구 10명 당 6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재, 아파트의 사용 목적과 그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자료

박철수,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마티, 2013.

박철수, 『아파트의 문화사』, 살림, 2006.

 

김민우 기자  kimsioa@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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