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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은 그곳, 『거기, 다다구미』(2015)여전히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 그리운 그때, 그리운 그 사람

언젠가 머릿속 한구석에 묵혀두었던 과거의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발끝에 고이던 날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전혀 갈 일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동네를 우연히 지나게 된 날이었다. 처음에는 발끝이었다가, 발목이었다가,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온 기억들이 마음속 깊은 지점에 닿자 나도 모르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동동 굴렀다. 참 묘한 경험이었다. 기억 속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눈에 설익은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이를 보는 나 자신조차도 낯설게 느껴져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연해지고 말았더랬다.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그 날의 감정이 작품 속 장소에 도착하자 되살아남을 느꼈다. 기자는 지금 이목연의 소설 속 주인공 ‘순자’의 가장 찬란하고도 서글펐던 기억의 무대인 ‘거기, 다다구미’에 있다.

 

‘다다구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다다구미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병창 확장공사를 위해 오늘날의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설치한 하청업체의 이름이다. 이러한 다다구미 사무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집을 지어 마을을 이뤘고 이를 다다구미 마을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광복 이후 다다구미는 철수했지만 여전히 다다구미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이 물러간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제24지원사령부(Army Service Command 24)가 설치되어 ‘애스캄(ASCOM)’이라고도 불렸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지숙이 함께 찾아주면 좋겠어요. 부탁합니다.” (중략)

‘인천 부평 신촌 네거리 애스캄 앞 화이트로즈 클럽’

 

책 속의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 지명이 명확할수록 수월하다. 굉장히 당연하다고 여긴 생각이 소설의 주인공 순자가 내민 쪽지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적은 주소는 언뜻 명확해 보이지만 검색하면 할수록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막연해지는 곳이었다. 짤막한 주소가 적힌 쪽지에 의지해 머나먼 미국에서 50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녀의 속내가 궁금했다. 심장이 병들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아 장시간의 비행을 견딜 수 있을지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곳으로 이끈 것일까.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짧은 그녀는 왜 삶의 마지막 시간을 모두 메모 속 장소를 찾는 데에 바치려 했을까. 기자는 다소 막막한 물음을 안고 이들의 자취를 따라 밟기 위해 열차에 올랐다. 창밖을 봐도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는 풍경을 지나 부평역에 도착한 기자는 지도상에 나오지 않는 미군 기지를 찾기 위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수잔을 데리고 간 곳은 아직도 남아있는 미군부대의 담벼락이었다.

 

작품 속에서는 부평 토박이인 한동구 씨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았지만, 기자에게는 그들처럼 도움을 청할 용기가 없었다. 그 근방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핸드폰을 간절히 들여다본 끝에 부대의 좌표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간신히 찾아낸 기지는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위에 철망이 감긴 채 회색빛 담으로 길게 둘려있어 싸늘한 기운을 풍겼다. 왠지 와서는 안 되는 곳을 온 기분이 들어 괜히 딴청을 피우면서도 철장 너머가 궁금해서 뒤꿈치를 들썩였다. 1973년 사실상 군사 기지의 역할을 멈춘 부평 미군 기지는 1996년부터 시작된 반환운동 끝에 평택으로 기지를 이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로 평택 기지 조성이 늦어지면서 부평 기지는 도심 속 거대한 섬처럼 단절되어 있었다. 기지의 주변부를 감싼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과거의 잔재인 기지를 더욱 이질적으로 느끼게끔 했다. 오후 4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철모를 쓴 관리인이 반쯤 열려있던 철문을 닫기 시작했고 기자는 그 소리에 쫓기듯 걸음을 옮겼다. 담벼락 아래 피어난 무궁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미군부대 조속 반환’이라 적힌 노란색 플래카드와 함께 환경오염을 규탄하는 내용의 벽보들이 죽 붙어 있는 담벼락을 따라 천천히 걷던 그녀는 그 담벼락 곁에 놓여있는 철길을 발견하고는 주저앉을 듯 비틀거렸다.

 

부평 기지에 물자를 보급하기 위한 기차가 지나다니던 철길에 다다르자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궁핍했던 시대에 유일하게 재화가 넘쳐났던 곳이 바로 미군부대였다. 지금은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곳이 처절하고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내딛는 걸음마다 그들의 애환을 머금은 듯 늘어지기 시작했다. 퍽 낭만적이었던 철길의 첫인상이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길의 끝에 닿을 쯤엔 막막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순자는 이 철길에서 한국 사람들이 보급 열차의 물건을 빼돌리려 했고 그들을 위해 시간을 끌어줬던 군인들 역시 한국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저 멀리 뻗어있는 철로를 따라 한없이 걸어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던 순자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자신의 옛 터전을 더듬었다. 그곳은 그녀가 기억하는 곳과는 확연히 다른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썰미가 있으시네. 맞아요. 70년대 미군들이 감축하고 나서 옛날 술집이며 환락가가 늘어섰던 자리를 재개발했지요. 지금은 부평공원이 되었습니다.”

 

순자의 기억 속의 ‘화이트로즈클럽’은 이미 사라지고 시민들이 이용하는 부평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순자는 한동구 씨가 당시의 악단장이었던 사람을 알고 있다며 만나게 해주려 하자 이미 날이 저물었다며 발길을 돌린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악단장을 찾을 기회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모를 비보를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어쩌면 순자는 단순히 악단장을 만나기 위해서만 한국을 찾아온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절한 시대의 현실로부터 도망치고자 했으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의 무대를 잊지 못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이 아닐까.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도 자신의 고국이 가난을 극복한 것에 놀라워하는 모습에서 기자는 가느다란 안도감을 본 것만 같았다.

 

 

부평공원은 주말의 마지막을 즐기는 가족과 연인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들에게 새로운 기억과 추억으로 남을 평화로운 광경 속에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과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녀상의 시선에 맞춰 공원의 풍경을 바라보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과 돌아와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에 잠겨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 이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정민주 기자  tjzero2004@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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