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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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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옷깃을 스친다. 무더웠던 지난날의 기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라는 신호다. 언젠가부터 기자는 코끝에 느껴지는 서늘한 내음으로 가을의 도착을 체감하곤 했다. 익숙한 공기 주변을 겉도는 낯선 계절의 냄새. 이 어색한 조화는 올해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고 있음을 알리는 방증이다. 더불어 이미 이름 석 자에 깊게 스며버린, ‘홍대신문 기자’로서 내게 남은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음을 상기시키는 알람이기도 하다. 서늘한 가을 내음이 가득한 S동 211호에 앉아 있다 보면, 이제는 멀지 않은 끝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지금껏 기자라는 이름으로 밟아온 기억들을 돌아보게 된다. 


솔직한 심정으로, 기자로서 처음 신문 마감에 참여했을 때는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에 뭐 이런 조직이 다 있나 싶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마감 일정과 거듭되는 회의, 그 과정에서 오가는 치열한 의견 교환. 잔뜩 어수룩한 티를 벗지 못한 기자에게 이 모든 풍경은 낯설었다. 211호 한 귀퉁이에 잔뜩 쌓인 지난날의 신문, 그 특유의 내음은 선배들이 쌓아 올린 발자취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기자는 기자를 해보겠다고 S동에 발을 들였음에도 기사 쓰는 일이 무서웠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각종 취재 활동과 이를 바탕으로 한 S동의 일상에 기자는 묘한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항상 고맙고 힘이 되는 동기 기자들의 존재와 함께 지금까지 기자 생활을 지속해온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우습게도, 최근에는 기사 쓰는 일이 다시 두렵게 다가온다. 기자 생활의 마무리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참 어색하지만, 그간 마감을 앞두고 마냥 경쾌하게 놀리던 손가락의 무게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스치게 되는 대부분의 인연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 아닌 욕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하나의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이런 바람은 단지 과욕일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달갑지 않은 목소리, 기사화를 부담스러워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상대의 표정과 마주하면, 기자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겐 불편한 역할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상념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생각에 잠긴 채 마침표를 기다리며 깜빡이는 화면 속 커서를 응시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이전과 다르게 섣불리 손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과 마주해 있다. 한심하게도 나는 내가 선택한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품은 무게를 기자활동의 마침표가 가까워지는 지금에서야 뒤늦게 체감 중이다. 그 결과 그동안 기자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가시 돋친 선인장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하는 물음을 반복하고 있다. 


자판 위에 얹힌 손가락은 여전히 지독하게 무겁다. 선뜻 한 줄 한 줄 적어내리며 만족스러운 마침표로 끝을 맺고 싶지만, 마음 같지 않다. 어찌 보면 기자 생활을 시작할 당시부터 차근차근 쌓아왔어야 할 신중함의 무게를 지금에서야 찾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S동의 다른 기자들이 앞서 거쳤을지도 모를 고민 위에 뒤늦게 서있는 내가, 앞으로 남은 수번의 마감을 통해 알맞은 마침표를 찾아냈으면 한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작성하게 될 마지막 기사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마침표를 찍으며 S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나는 감히 지금까지 정말 값진 기자 생활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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