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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의 유래부터 시대 예술적 활용까지

통조림, 전쟁으로 열고 예술로서 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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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의 필수품이자 질리지 않는 다양한 간편 음식 통조림. 캔 따개를 따는 순간은 마치 선물 포장지를 뜯는 듯하다. 최근 한 방송에 소개된 일본의 통조림 전문식당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특이하고 다양한 통조림들로 푸짐한 밥 한 상을 대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간단한 단무지, 김치 등의 기본 반찬들부터 곰 고기, 게살, 캐비아 등의 고급 요리들까지, 가격대 모두 다양하다. 세상의 모든 요리를 담아 평생 동안 묵혀둘 수 있을 것만 같은 만국 공통 도시락 통조림! 이 편리한 식생활의 탄생과 미적 발견에 대해 살펴보자.

전쟁통 속 또 다른 무기, 통조림

통조림은 왜 생겨나야 했을까? 통조림이 시작되었던 곳은 어디일까? 바로 통조림의 큰 특징인 ‘간편함’을 가장 필요로 했던 곳, 전쟁터이다. ‘배고픈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전쟁에서 무기와 군대만으로는 승리를 이끌어낼 수 없다. 군사들의 식량이야말로 전쟁 속에서 무기만큼의 위력과 중요성을 지닌다. 여행을 가거나 캠핑을 가는 것도 아닌, 전쟁터로 향하는 군사들에게 복잡한 음식 조리기구들은 어깨 위의 사치다. 그렇다면 과연 온 유럽을 휘젓고 다니며 전쟁을 치르던 나폴레옹의 군대는 어떻게 배를 채웠을까.

프랑스 혁명 직후 계속되는 나폴레옹의 전쟁으로 인해 전쟁터 속 군인들 사이에서는 괴혈병이 허다했다. 장기간을 전쟁에 참여하는 동안 음식물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상한 음식을 먹거나 굶주리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정작 적군과는 맞닥뜨리기도 전에 아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음식물을 장기간 동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군인들의 식량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프랑스 산업 장려 협회’를 개설하여 프랑스 최고의 과학, 기술 인재들에게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의 응모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응모자 중 한 명인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 1749-1841)는 1804년, 이른바 ‘병조림(canning jar)’이라는 통조림의 시초를 등장시키며, 훗날 ‘통조림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다. 입구가 넓은 병에 푹 삶은 고기와 야채를 넣고 병째로 가열한 뒤, 코르크 마개로 뚜껑을 덮어 입구를 밀봉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 간단한 병조림의 조리법은 음식의 취사 시간을 절약해 주었고, 음식의 장기간 보관을 가능하게 해 보급 체계의 부담을 절하시켰다. 무엇보다 병조림이 전쟁 승리에 일조하게 되었던 결정타는, 조리기구가 필요 없어 군인들의 군장 무게를 덜어주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평균 군대 행군 속도는 분당 70보 내외였던 반면, 가벼운 군장을 멘 나폴레옹의 군대는 분당 120보 이상의 고속 행군을 강행했다. 병조림이 나폴레옹 군대의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 것이다.

▲'통조림의 아버지'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
▲'통조림의 아버지'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

이렇게 나폴레옹의 전쟁 승리에 기여한 병조림은 영국군의 병조림 벤치마킹을 시작으로 전쟁 속 또 다른 ‘발명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프랑스군의 병조림보다 더 실용적인 보존 방법을 발견하겠다는 영국군들의 포부와 함께 지금의 ‘깡통’ 통조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1810년, 당시 런던 출신의 기계공이던 피터 듀란드(Peter Durand)는 홍차를 보관하는 통인 캐니스터(canister)에 착안하여 병조림보다 가볍고, 파손 위험성 또한 적은 주석 깡통(tin canister) 발명에 도전했다. 듀란드는 그 주석 깡통으로 통조림 제조에 관한 특허를 제출하였고, 1812년 템스 강 우측 버몬드 지구에는 주석 깡통을 제작하는 세계 최초의 통조림 공장을 건설한다. 그러나 그 승승장구도 잠시, 주석 깡통의 수요가 늘어나며 영국의 주석 광산은 바닥나고 만다. 그와 동시에 두께도 얇고 무게 또한 더욱 가벼워진 강철 통조림이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강철 통조림은 모양이 쉽게 찌그러지는 단점이 있었고, 그 모양 변형을 막기 위한 모서리의 둥근 테두리가 둘러지며 점차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통조림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시대를 표현하는 예술로서의 통조림

레드와 화이트 컬러의 단순한 조화, 맛을 설명한 타이포로 이루어진 통조림 수프 캔. 아마 누군가의 티셔츠에서, 가방에서, 액자나 포스터, 또 팬시 제품과 문구류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바로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대표작 <캠벨 수프 캔(Cambell Soup Can)>(1962) 시리즈다. 1950-60년대 미국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발전한 서부 팝아트의 작가들은 음식과 식료품을 담은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다. 웨인 티보(Wayne Thiebo)의 <파이, 파이, 파이(Pies, Pies, Pies)>(1961), <베이커리 진열대(Bakery Counter)>(1962), 에드 류샤(Ed Ruscha)의 <편평하게 펴진 박스(Box smashed flat)> 등이 그 예다. 미국의 전후 식문화를 표현해 풍요로운 미국 중산층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들과 함께 앤디 워홀 역시 1960년대 초반 음식문화와 연관된 작업을 많이 남겼다.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 캔>(2015)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 캔>(2015)

▲앤디 워홀의 두 가지 통조림 이야기

그의 당시 작품들 중 통조림이 제시된 작품은 <캠벨 수프 캔(Cambell Soup Cans)>과 <캔 참치 재난>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작품은 모두 ‘통조림’이라는 사물에 대한 이중성에 대해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대비되는 주제로 은근한 대조를 이룬다. 워홀은 1962년 페러스(Ferus)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에서 <캠벨 수프 캔>을 선보였다. 그리고 같은 해 뉴욕 스테이블(stable) 갤러리의 전시회에서 <100개의 캠벨 수프 캔(100 Cambell Soup Cans)>을 전시하고 수프 캔을 잉크 드로잉으로 제작하는 등 작품을 다양하게 반복 제작했다. 1964년 뉴욕 업 타운의 비앙키니(Bianchini) 갤러리에서 열린 《미국의 슈퍼마켓(The American Supermarket)》전에서는 1950년대 널리 쓰이던 식기 세척제 브릴로(Brillo) 박스와 함께 캠벨 수프 캔이 당시 미국의 여느 슈퍼마켓에서처럼 탑처럼 쌓여져서 표현되었다. 당시 「라이프(Life)지」는 “가장 비싼 작업 중의 하나는 워홀의 캠벨 수프를 그린 회화이다. 그것은 1500불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그 밑에는 2개에 35센트 하는 수프가 실제로 든 일반 캠벨 수프가 놓여 있다. 이 캔들은 정확히 6불에 팔렸다.”라는 보도를 남겼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캠벨 수프가, 순수예술의 영역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으며 이중성을 띄게 된 것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
▲앤디 워홀(Andy Warhol)

<캔 참치 재난>에서의 ‘이중성’ 또한, 일상적인 사건과 이례적인 사건의 충돌에서 이루어진다. 워홀은 ‘브라운 부인과 맥카시 부인, 상한 참치 먹고 사망’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을 캔버스에 찍고, 같은 화면에 옛 TV 퀴즈 프로그램인 <오늘의 여왕>에 출전한 2명의 중년 부인 사진을 넣었다. 또 그 밑에는 보툴리즘 균에 감염되었다는 기사가 났던 A&P 참치 캔 여러 개가 담긴 사진을 배치하였다. 이는 마트에서 참치 캔을 사는 일상적 행위를, 가능성이 낮지만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비극적인 일로 강조하였다. 일상적이고 흔한 일들과 흔하지 않은 사건을 동전의 양면처럼 다루었다. <캠벨 수프 캔>이 쇼핑의 즐거움에 대한 명상, 시각적 자극제라면 <캔 참치 재난>은 소비 중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승리하기 위해 나타난 통조림이 이제는 현대의 산물이 되어 전 세계적인 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상품에서 그치지 않고 당대의 시장을 대표하며 시대적 예술 속에서 시대적 상징물로 드러나기도 했다. 워홀이 하나의 물체 ‘통조림’에 시대적 반영을 통해 통조림에 새로운 내용물을 담은 이후의 지금, 통조림은 또 어느 분야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시대를 발전시키게 될까.

 

참고 문헌

리처드 폴스키,『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마음산책, 2006

고동연,『팝아트와 1960년대 미국사회』,눈빛, 2015

김지룡, 갈릴레오 SNC,『사물의 민낯』,애플북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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