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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리는 왜 더 걷고 싶은가?(1)걷고 싶은 거리와 이벤트 밀도
  • 유현준 (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7.09.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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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거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먼저 걷고 싶은 거리와 성공적인 거리는 다르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보편적으로 강남의 테헤란로는 성공적인 거리이기는 하지만, 걷고 싶은 거리는 아니라고 평가된다. 반면, 명동 같은 거리는 성공적인 거리이기도 하면도 동시에 걷고 싶은 거리이기도 하다. 걷고 싶은 거리는 대부분 성공적인 거리이지만, 성공적인 거리라고 해서 반드시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휴먼스케일의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성공적이지만 걷고 싶지 않은 거리들은 대부분 휴먼스케일 수준에서의 체험이 다양하게 제공되지 못한 경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거리는 대부분 압도적인 스케일로서 상징성을 가지는 거리이다. 걷는 다는 행위는 평균 시속 4km/hr로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이 보행속도는 시속 60km/hr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느끼는 경험과는 사뭇 다른 체험이다. 따라서 과연 보행속도에 맞추어서 체험하는 변화의 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수준인가를 정량화해볼 필요가 있다. 휴먼스케일의 체험이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가로수의 크기, 인도의 폭, 평행해서 가는 차도의 폭, 거리에 늘어선 점포의 종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보행자가 걸으면서 마주치는 거리위의 출입구의 빈도수와 걷고 싶은 거리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걷고 싶은 거리의 물리적 조건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어느 건축가가 미국의 도시와 유럽의 도시구조를 비교한 적이 있었다. 그의 비교방법은 간단했다. 동일한 단위면적에 있는 두 도시의 블록 코너의 개수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유럽도시가 단위면적당 블록의 코너 개수가 더 많았다. 실제로 임의의 바르셀로나의 구도심과 시카고 도심의 4평방킬로미터당 블록코너의 개수를 조사해보았더니 바르셀로나 구도심은 4평방킬로미터에 2025개, 시카고의 경우에는 1075개의 블록코너수로서 그 숫자가 약 2배가량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도로가 직선으로 되어 있느냐 곡선으로 되어 있느냐’의 차이점이나 ‘격자형 도로망이냐 방사형 도로망이냐’와 같은 형태상의 차이점, 그리고 ‘블록의 크기가 반복적이냐 아니면 적당하게 변화하느냐’등의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변수이지만, 단위면적당 블록코너의 개수를 셈으로써 도시의 구조를 정량화해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비교연구방법을 찾았다는 점에 이 연구방식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도시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발명되기 오래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도시 내 도로망들이 사람 혹은 사람의 보행속도보다 약간 더 빠른 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이동수단은 느렸고, 그 느린 이동수단 때문에 사람들의 시간거리가 길게 되고, 따라서 물리적인 도시의 도로망은 짧은 단위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로의 결절점이 더 자주 만들어지게 되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가 대부분이다. 자동차는 짧은 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거리가 짧아지고 따라서 자동차를 위한 교차로는 가끔씩 있어도 되었고, 결과적으로 도시의 블록이 크게 구획되어지게 되었다. 이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은 미국도시에 비해서 유럽도시를 보행자가 걸을 때 더 자주 교차로를 마주치게 되고, 그 만큼 보행자는 더 다양한 선택의 경험 혹은 진행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난 도로의 공간감을 체험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교차로가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 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이 생겨날수록 그 도시는 우연성과 이벤트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보행자들이 거리를 걷게 되면 거리를 따라서 상점들과 건물의 입구가 나타나게 된다. 상점의 입구를 지나게 될 때 보행자는 가게를 들어가거나 혹은 계속해서 길을 걷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순간 한번이 나올 경우 보행자는 가게를 들어갈 경우와 들어가지 않을 경우 두 가지 경우가 생겨나게 됨으로 이벤트 경우의 수는 2번이 된다. 만약에 출입구가 2개가 나와서 결과적으로 선택의 경우가 2번이 나오게 되면, 둘 다 안 들어가고 지나치는 경우, 앞의 가게만 들어가는 경우, 뒤의 가게만 들어가는 경우, 두 가게 모두 들어가는 경우, 총 4번의 이벤트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따라서 상점의 수가 ‘n’이라면 보행자가 겪을 수 있는 이벤트 경우의 수는 ‘2ⁿ’이 된다. 다양한 경우가 있다는 말은 보행자가 다른 날 다시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다른 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뜻함과 동시에 하루를 걷더라도 다양한 이벤트를 만날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위거리 당 출입구의 수는 거리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있다.

단위거리 당 상점의 출입구 숫자가 많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공간의 주도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거리를 걷는 다는 것은 보행자 입장에서는 그의 세상(a world)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눈을 뜨고, 일어나, 먹고, 걷고, 이야기하고, 일하고, 쉬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매순간 결정하는 각각의 행위들은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서 그 사람의 삶 혹은 세상을 결정한다.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이고, 친구를 만날 때 어떤 카페에 들어갈 것인 가’와 같은 의사결정이 모여서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의 그날의 세상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살 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도적 선택권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이유에서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오락보다는 자신이 선택해서 만들어가는 내러티브적인 오락을 선호한다. 또한 수동적으로 고정된 채널의 TV를 보기 보다는 여러 개의 채널을 돌려가면서 보는 것을 더 즐겨하며, 더 나아가서는 인터넷상에서 웹서핑하면서 본인들이 보고 싶은 내용을 주도적으로 선택해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거리를 걷는 행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보행자가 선택권이 없는 길을 걷는다면 이는 마치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처럼, 수동적이고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반면, 출입구를 통한 선택권들이 일정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면 그 거리는 보행자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자기 주도적인 삶의 체험을 제공해주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거리에 다양한 상점입구의 수는 TV의 채널수나 인터넷의 하이퍼링크(Hyperlink)의 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점포의 출입구가 자주 나타난다는 점은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5미터에 한번 씩 점포의 출입구가 나온다는 것은 보행자의 속도를 시속 4km/hr로 보았을 때 4.5초당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쇼윈도를 통해서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는 신상품 옷 일수도 있고 식당에 앉은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TV를 시청하면서 특별히 볼 채널이 없을 때 2~3초에 한번 씩 채널을 바꾼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 특별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서로 다른 채널의 화면 속 영상들이 새로운 시퀀스로 편집이 되어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단순하게는 다른 채널로 바뀐다는 변화의 리듬감 때문에도 끊임없이 TV앞에 앉아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4.5초당 점포가 변화된다는 것은 4.5초당 케이블 TV의 채널을 바꾸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세종로의 미국대사관 앞의 거리에는 미국 대사관 정문이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보행자는 대사관을 들어가는 경우와 그냥 지나치는 경우 두 가지만 가지게 된다. 게다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냥 지나치게 된다. 이는 세종로의 미국대사관 앞의 길은 항상 한 가지 경우의 수만 제공하는 거리라는 것이다. 반면 같은 길이의 홍대앞 피카소거리를 걸을 때는 매번 다른 기억을 가질 수가 있다. 오늘은 ‘마포나루’에서 식사를 하고 그 옆의 옷가게를 들어갔지만, 내일은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서 식사를 하고 그 옆의 노래방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홍대앞 거리에는 다양한 선택의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보행자는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선택을 통해 다른 체험이 가능해진다.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 가를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경험의 밀도를 필자가 계산을 해보니 “명동거리 = 가로수길 > 홍대앞 피카소거리 > 강남대로 > 테헤란로”의 순으로 되었다. 주요 지표를 살펴보면 최고값을 가지는 명동거리와 가로수길은 최저값을 가지는 테헤란로의 4.5배 정도 높은 경험의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수치를 해석한다면 가로수길은 테헤란로 보다 4.5배 더 걷고 싶은 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명동거리와 신사동 거리는 각각 강북과 강남의 대표적인 걷고 싶은 거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량적인 수치와 정성적인 느낌이 비교적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행자의 체험으로 보았을 때 명동거리와 가로수길은 4.5초당 채널이 바뀐다면 테헤란로는 11초당 채널이 바뀌는 TV에 비유될 수 있었다.

강남과 강북 대표적인 거리의 분위기 차이는 그 거리가 위치한 주로 거리가 형성되었던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자연적으로 형성 된 지역의 경우 주로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의 문화 및 환경적 요인의 변화로 인해 자연발생적으로 거리가 형성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리가 소규모 민간자본에 의해서 작은 필지에 지어진 작은 건물들로 구성되어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조건 때문에 단위거리 당 점포의 수가 많아지고 보행자들은 가게에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경우의 수가 높게 나왔다. 반면, 도시계획에 의해서 큰 스케일의 필지와 자동차 중심의 도로로 정비된 지역에서는 거리를 구성하는 단위건물의 규모가 크다. 따라서 단위거리 당 보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조건은 도시계획상의 필지구획규모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가장 재미난 경우는 단위거리당 가장 높은 건물수를 보유한 명동이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이유는 명동거리의 필지의 프로포션이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로변으로 접한 면이 좁고 세로로 긴 형태라는 점 때문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도시계획가에 의해서 건설된 지역이기 때문에 일본 전통식 도심거리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좁고 긴 필지라는 조건 이외에도 인접한 건축물과 합벽의 형태로 건물과 건물사이에 틈이 없는 이유로 단위거리 당 건물 개수가 가장 많은 것이 명동 거리의 특징이다. 이는 주택가로 구성된 홍대앞과 비교했을 때 그 특징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홍대앞의 경우도 주거지역으로서 작은 필지를 구성하고 있지만 단위거리 당 건물의 개수는 홍대앞에 8개가 있는 반면 명동에는 15개의 건물이 만들어져 거의 2배에 이른다. 또한 명동거리는 50년대에 재건축이 되었을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는 자본시장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금융권의 지원을 받은 대규모 PF를 통해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작은 민간자본에 의해서 일제 강점기 시절 구획된 필지에 새로이 건물을 건축하는 상황으로 진행이 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좁은 건축입면이 유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단위거리에 더 많은 건물이 들어서는 물리적 환경이 구축되었다. 하지만 명동의 단위거리 당 건물의 수가 홍대앞이나 가로수거리의 2배의 개수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동의 120미터에 있는 입구의 수는 22개로 홍대앞의 20개와 큰 차이가 없으며, 가로수거리와는 같은 22개이다. 이 같은 이유는 건물의 입면은 좁았지만 결국 한 개의 점포가 입구와 쇼윈도우를 가지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점유해야하는 최소 폭(약 5미터)은 거리에 상관없이 비슷했기 때문에 비슷한 점포입구의 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명동거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조사한 5개의 거리 중 유일하게 보행자전용 거리(폭 10m)를 형성하고 있어서 건너편 쪽 상업가로와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걷고 싶은 거리는 결국에는 얼마나 자주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느냐의 물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도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대형 콤플렉스 건물을 만들더라도 거리와 접한 면은 작은 소규모 가게들과 입구가 놓이게 디자인 해야하는 것이다.

 

유현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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