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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겔의 『삶이 있는 도시디자인(Life Between Buildings)』을 읽고

도시의 공공공간에 대한 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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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전공하지 않는 입장에서, 건축을 정의할 때 이것이 빈 공간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재미있다. 건축물이 생기기 전 단순했던 빈 공간은 지어진 건축물에 따라 일그러져 변화된 형태를 가진 빈 공간이 된다. 건축물, 눈에 보이도록 존재하는 덩어리는 필연으로 그에 따른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를 만든다. 그리고 실제 사람이 점유하는 것은 이 빈 공간이므로 이것의 정경이야말로 사람이 사는 환경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더 중요도를 둔다. 건물 한 채, 나무 한 그루, 차 한 대는 각기 다른 전공의 종사자가 다루는 영역이지만 이것들의 네거티브 스페이스는 하나로 연결되어 도시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기반이 된다. 이것이 삶의 질을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가는 꽤 오래된 나의 관심사이다. 

책의 저자 얀 겔(Jan Gehl, 1936-)은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도시공학자로 ‘겔아키텍스어번퀄리티컨설턴츠'(Gel ArchitectsUrbanQualityConsultants)의 공동 창립자이다. 세계 여러 도시개발계획에 참여하여 인간 중심의 도시계획 사상을 펼쳤으며 특히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강조한다. 이 책은 1971년 초판 발행된 얀 겔의 가장 초기의 저서로 1970년대 초반 만연했던 기능주의적 도시계획과 주거지역 개발에 대항하는 항의서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꽤 오래된 책이지만 지금의 서울에 대입하지 못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시환경설계와 공공생활, 공공생활과 공공공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196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대규모의 모더니즘 도시계획은 학계와 언론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급격한 도시화와 맞물려 도시 속 삶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시기만 늦을 뿐 비슷한 모습을 겪고 있다. 1960년대 당시 우리나라는 강남 개발을 시작했다. 서울 강남 개발의 역사에는 지역사나 도시개발사에 그치지 않은 한국의 현대사가 이러했다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강압적이고 일방향적인 정책과 실행 과정에서 현재의 불만스러운 도시공간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 서울에 애정을 가지고 관찰할수록 불만이 보였는데 도로를 차를 중심으로 취급한다는 것, 이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보행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개발 중심의 짧은 근현대 역사 속에서 내가 사는 이 도시는 정부 주도 아래 일방적으로 개발되었다. 시대가 지나 지금은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또한 보다 다양한 요소가 개발 시에 고려되지만, 삶과 공공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비판은 부족한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규모가 거대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넓은 범위에 걸쳐져 있는 문제는 다가가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도시의 공공생활과 공공공간에 대한 문제는 뜻을 같이하는 정치적 힘이 절대적으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개선하기가 어렵다. 얀 겔은 이미 공공공간에서의 삶이 잔뜩 짓눌린 도시나, 보행 생활이 많으나 맘 편히 걷거나 자전거를 탈 만한 환경의 기본 조건이 확립되지 못한 곳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말한다.


도시공간을 계획할 때 놓치기 쉬운 점은 우리가 수평적 시점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만드는 이에 의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계획 모형은 실제 우리가 사는 모습과는 다르다. 도시공간은 그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의 눈높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점은 세심한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도시공간을 개발할 때 큼직한 결과물을 빨리 내보여야 한다는 것은 사실 부자연스럽다. 자생적인 움직임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정돼가는 것과 같이 가야 한다. 얀 겔은 이 책을 통해 더 나은 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관점을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매우 일관되게 얘기한다. 그 속에서는 여러 모순적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인간을 긍정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시선의 구체적인 모습은 부동산 값이나 발표 자료에 쓰인 듣기 좋은 문구가 아닌 곳에서 진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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