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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더 따뜻했던 곳, 가족의 의미가 더해져 완성되는 공간

가족의 온기로 깊이 뿌리 내린 터전,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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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40분을 가야하는 평택역. 수업이 끝나고 해가 지기 전까지 취재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기차역으로 가는 기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잠시 졸다 깨니 40분이라는 긴 듯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기자는 허둥지둥 기차에서 내렸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 주소에서 ‘읍’과 ‘리’라는 단어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기자에게는 더욱 낯선 동네로 다가왔는데, 그곳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본 풍경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고 그저 넓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으며 차도 옆에 줄지어 피어 있는 키가 작은 꽃들과 버들 같은 풀들이 바람에 휩쓸려 파도가 치듯 살랑였다. 객사리 근처로 다가갈수록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을 들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달했을 땐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낮은 상가들과 족히 20년은 되어 보이는 가게들, 오래된 차들과 도로가 공존하고 있는 풍경을 포착할 수 있었다.

 

 

“엄마가 잠이 덜 깬 막내를 둘러업고 포대기로 야무지게 동여맸다. 그리고 함지와 똬리를 챙겨 들고 총총히 대문을 나섰다. 나는 쪽마루에 서서 엄마의 옷자락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별이 총총한 새벽이건만 엄마 발길은 바쁘다. 객사리에 살게 된 뒤부터는 늘 저랬다.”

 

동화책 위주로 집필하던 황선미 작가가 처음으로 첫 청소년 소설을 집필해 출간한 것이 바로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이다. 작가는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경기도 평택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이 때문에 이 소설은 모태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 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인 조연재인데, 연재의 집안이 기울어 외삼촌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객사가 눈에 띄었다. 객사 옆 작은 뜰에서 돗자리를 펴고 햇빛을 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을 보며 평택역에서 느꼈던 낯설음과 긴장감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남의 집은 아니지만 눈치 보이는 더부살이를 시작하게 된 연재는 그 집에서 먼저 더부살이를 사고 있던 또래 재순이에게 이유 모를 핍박을 받는다. 이미 고향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잊혀지고 있는데 새롭게 정착한 곳에서의 생활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더부살이하는 가난한 집의 자녀라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변인들에게 받는 시선과 말은 아직 어린 연재에게 분명 깊은 상흔이 되었으리라.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삶은 연재 뒤를 졸졸 뒤따라 다녔다. 열한 살 연재의 눈에 비친 세상은 분명 팍팍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동네가 정 없어 보이는 듯 했다. 도로 한복판에서 저 멀리까지 둘러보니 교회 건물임을 알려주는 십자가가 보여 가까이 가다보니 어느덧 객사 2리로 접어들었다.

 

 

“객사 2리. 외가 때문에 몇 번 왔으니 처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는 낯설고 내키지가 않는다.… 신작로를 따라 집과 건물이 늘어서 있는 동네. 벽돌 공장, 경찰서, 면사무소, 중국집 등 잡다한 가겟집들을 지나 손수레를 세웠다. 주변에서 가장 허름한 초가집. 길 쪽으로 난 유리문으로 부옇게 불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처음 객사리에서 보았던 것처럼 객사 2리 역시 주변에는 낮은 빌라들과 건물들이 즐비했다. 대부분이 오피스텔이나 주택으로, 주거 목적으로 지어진 듯했다. 그 사이에는 마치 기자의 상상 속 꺽다리 집을 옮겨다 놓은 듯한 집이 보였다. 1970년대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새마을 운동에 의해 초가지붕 개량사업이 활발히 일어나던 때, 연재가 사는 동네도 피해가진 못했는데 그 본보기로 연재가 살던 낡은 초가지붕 집은 태워져 버리고 만다. 이후 목수인 삼촌이 연재네 보금자리를 위해 반나절만에 만든 판자 집이 다섯 식구가 살 새로운 집이 된다. 차근차근 지어지지 않은, 뿌리가 없는 집. 그곳에서 연재와 연재의 어머니, 그리고 오빠 연후는 악착같이 그들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1970년대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근대화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자행되는 것들과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시선 혹은 건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가난한 민생들의 고초를 고려하지 않은 채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본보기 식으로 태워진 삶의 터전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기자는 꺽다리 집을 닮은 곳에서 연재가 나올 것만 같아 얼마간 서성여 보았다. 저 멀리서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소독차 소리가 발길을 재촉하는 것 같아 서둘러 움직였다.

 

“모든 게 다 있는 집이었다.…우리 집도 여기도 안과 바깥을 나눈 게 똑같이 문 한 장인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면 집에도 뿌리가 있나보다. 공중에 뜬 꺽다리 집과 달리 흔들리지 않게 땅에 깊숙이 내린 집의 뿌리.” (중략) “어쩌면 바람에게도 집이 필요했던가 보다.…그래, 꺽다리 집은 바람에게.”

 

결국 이웃인 숙이네의 제안으로 연재네는 따뜻하고 값싼 곳에 셋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춥지 않아도 된다. 연재네에게만 유독 혹독했던 겨울은 이사를 한 뒤면 차츰 물러갈 것 같다.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 버티기엔 가혹한 겨울의 끝에서 마주한 ‘집의 뿌리’에 대한 생각은 기자를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있게 만들었다. 1970년대에 비하면 판자집을 보기 드문 지금, 하지만 뿌리 없는 집이 적어졌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카메라로 앞을 확인하며 평택역을 향하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도중 카메라 프레임에 담긴 특이한 광경을 보곤 걸음을 잠시 멈췄다. 낮은 상가와 오래된 집들, 작은 텃밭이 가득한 이곳,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이 한 가로등을 기점으로 나눈 것 같아 보이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사람은 대부분 집에서 살지만 모두에게 집이 가진 의미는 각기 다를 것이다. 기자에게 집은 고향과 상등한 의미였다. 돌아가야 하는 곳이며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연재에게 집은 어떤 의미였을까. 뿌리가 없어 가족의 온기를 얹어야 아슬아슬하게 지탱이 되는 집, 결국 바람이 주인이 된 집. 어느 한 공간에 얽혀있을 여유가 없었던 연재에게 집은 항상 찬바람으로 채워진 좁고 불편한 곳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시멘트와 벽돌로만 지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아서, 바람이 마치 자신의 처지 같아서 꺽다리 집을 양보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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