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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영역을 넘어 역사의 흐름을 품어내다.

시대의 풍경을 담은 옷감, 청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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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을 열면 다양한 옷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어떤 차림으로 밖에 나서야할지 머리 아픈 고민이 이어지려는 찰나, 언제나 이런 문제에 정답이 되는 청바지 한 벌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벌 씩은 갖고 있는 이 평범한 바지에는 역사의 흐름이 빚어낸, 생각보다 넓고 깊은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한 벌 한 벌마다 깊은 사연을 담고 있는 이 옷의 면모를 해부해보자.

 

우연이 빚어낸 발명품, 청바지

인류가 만들어낸 여타 다양한 발명품들이 그렇듯, 청바지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계기 역시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청바지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은 1850년대 미국. 당시 미국은 서부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이를 캐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골드러시(Gold Rush)가 한창이었다. 미전역 각지에서 몰려든 이 인원들은 금광 주변에서 천막촌을 형성하며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때문에 천막의 수요가 폭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 출처 : 위키피디아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천막 천 생산업자였던 독일 출신의 유태계 이민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1829-1902)는 이를 기회 삼아 광부들에게 천막을 공급하며 쏠쏠히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때마침 대형 천막 10만여 개에 들어갈 천막 천의 납품 주문이 들어왔고, 그는 주변에서 자금을 빌리면서까지 장장 3개월간 주문량을 만들어 냈으나 급작스럽게 천막을 공급할 길이 막혀버린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 어이없는 현실에 좌절할 법도 하지만, 스트라우스는 곧바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평소 보아오던 광부들이 작업을 진행하며 거친 일을 견뎌낼 질긴 옷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업용 오버롤을 만들었다. 또한 옷이 터지고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튼튼한 실로 꿰매고 뒷주머니에 굵은 리벳도 박아 넣었다. 이것이 현재 대표적인 청바지 브랜드가 된 ‘리바이스(Levi’s)’의 시초다. 당시 한 벌에 1달러에 불과했던 이 옷은 곧장 광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스트라우스는 금광채굴자보다도 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 질기고 튼튼한 청바지는 이후 일반인에게도 실용성을 인정받아 널리 보급되었으며,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는 참전한 미군들의 영향으로 해외에 소개되면서, 마침내 청바지는 전 세계인의 옷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청바지의 '푸름'이 품은 속사정

오늘날 수많은 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낯익은 청색으로 물들이는 청바지. 청색이 아닌 다른 색을 입힌 청바지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푸른색이 익숙하다. 그러나 청바지가 많고 많은 색 중에 왜 하필 청색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푸른 청바지의 이면에는 나름의 다양한 속사정들이 스며있다.

출처 : 대학내일
출처 : 대학내일

골드러시 당시 금을 캐러 다니는 광부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광산 주위에 가득한 독사와 파충류의 존재였다. 청바지가 광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스트라우스는 바지 옷감을 굵은 무명실로 짠 데님으로 바꿈과 동시에, ‘인디고 블루’라는 염료를 사용하여 파란색으로 물들이는 변화를 주게 된다. 이는 파란색 염료가 독사를 쫓아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인디고의 청색 색소는 대청이라는 작물에서 얻었는데, 이를 재배해 말린 후 동물의 오줌에 담가 발효시키면 푸른색의 염료가 나왔다. 인디고는 값이 싸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한번 염색하면 햇빛에 잘 바래지지도 않아 저소득층이나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또한 때가 잘 타지 않고 긁혀도 티가 나지 않아 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의 옷으로 적절했다. 이와 더불어 청바지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푸른색이 꽤 오랜 시간동안 ‘서민의 색’ 으로 인식되어 온 사실도 청바지의 정체성 확립에 한몫했다. 어디에서든지 구할 수 있는 색이라는 이유로 ‘고급’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진 푸른색은, 같은 이유로 르네상스 시대 교황 비오 5세(Papa Pio V, 1504~1572)가 교회의 제례 때 사용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의 옷으로 시작된 청바지가 청색 바지로 고정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청바지, 노동자의 옷을 넘어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190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본격적인 산업화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청바지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허무는데 일조했다. 막일을 하던 노동자들의 작업복이라는 고정관념은 사라지고 일반인들도 착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이다. 이를 부채질 한 것은 1930년대 카우보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부영화로, 영화 속에서 그들이 입고 등장하는 청바지는 남성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후 일반인들 사이에서 슬금슬금 인식을 넓혀오던 청바지가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이 시기는 베이비부머라고도 불리는 전후세대가 자라 새로운 세대를 형성한 때로, 이들은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들의 가치관에 반항하며 패션을 통해 반기를 들었다. 이들이 내세운 저항문화의 상징은 단연 청바지였다. 당시 청바지는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 자유로움, 해방 등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 / 출처: 네이버 영화

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로 인식되면서 반항적인 미국 청춘들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된다.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에 당대 인기를 끌던 배우 제임스 딘(James Byron Dean, 1931~1955)이 청바지를 입고 반항적인 청년을 연기한 것도 이런 기류에 부채질을 했다. 젊은이들은 청바지에 평화를 뜻하는 마크를 그려 넣거나 샌들 밑으로 질질 끌고 다녀 끝단이 해지게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젊은이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청바지는 1970년 들어 마침내 예술의 영역과 접목되기 시작한다. ‘청바지의 혁명’을 주도한 팝아트의 선두주자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작품과 청바지에 다양한 디자인들이 접목된 디자이너 진(Jean)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앤디 워홀은 1971년 영국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스티키 핑거스(Sticky Fingers)> 앨범 재킷을 위해 청바지를 소재로 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을 비롯한 다양한 디자이너 진들 역시 높은 가격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청바지는 이를 등에 업고 지속적으로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청바지, 이 땅에 상륙해 꽃을 피우다.

우리나라에 청바지가 도입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통해 국내에 미국문화가 퍼져나가면서부터이다. 이후 미국의 청춘들이 청바지에 새겨 넣은 저항의식과 청년문화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청바지를 입은 채로 당시 군사정권의 억압적인 정책에 대한 박탈감과 저항을 담아 통기타를 치며 자유를 노래했다. 이후 1980년대 정부의 교복 자율화 정책은 청바지를 입는 연령대를 더 확대시키는데 기여했다. 청바지는 이때부터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수수한 옷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는 다시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개성을 추구하는 X세대의 등장과 그들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으로 다양한 디자인과 접목되어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영화<쎄시봉>(2015)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쎄시봉>(2015) / 출처: 네이버 영화

노동자의 옷으로 시작한 청바지는 시대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항의 상징, 미적 표현의 수단, 개성 표현의 매체 등 수많은 의미를 담아냈다. 이는 가히 단순한 옷감을 넘어 시대의 풍경을 비춘 거울로 비견 될 만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바지는 캠퍼스, 직장, 기업의 제품 발표 현장 등에서 장소와 사람의 구분 없이 목격되고 있다. 오늘날 이들이 입고 있는 청바지 한 벌 한 벌은 모두 각자의 사연을 담고 있는 듯하다. 오늘 하루, 당신이 입고 있는 청바지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

 

< 참고 문헌 >

두산백과, ‘청바지’

『청바지의 역사』, 타냐 로이드 키, 상상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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