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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싶은 거리와 이벤트 밀도

어떤 거리는 왜 더 걷고 싶은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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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점포의 출입구가 자주 나타난다는 점은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5미터에 한번 씩 점포의 출입구가 나온다는 것은 보행자의 속도를 시속 4km/hr로 보았을 때 4.5초당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쇼윈도를 통해서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는 신상품 옷 일수도 있고 식당에 앉은 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TV를 시청하면서 특별히 볼 채널이 없을 때 2~3초에 한번 씩 채널을 바꾼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 특별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서로 다른 채널의 화면 속 영상들이 새로운 시퀀스로 편집이 되어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단순하게는 다른 채널로 바뀐다는 변화의 리듬감 때문에도 끊임없이 TV앞에 앉아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4.5초당 점포가 변화된다는 것은 4.5초당 케이블 TV의 채널을 바꾸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세종로의 미국대사관 앞의 거리에는 미국 대사관 정문이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보행자는 대사관을 들어가는 경우와 그냥 지나치는 경우 두 가지만 가지게 된다. 게다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냥 지나치게 된다. 이는 세종로의 미국대사관 앞의 길은 항상 한 가지 경우의 수만 제공하는 거리라는 것이다. 반면 같은 길이의 홍대앞 피카소거리를 걸을 때는 매번 다른 기억을 가질 수가 있다. 오늘은 ‘마포나루’에서 식사를 하고 그 옆의 옷가게를 들어갔지만, 내일은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서 식사를 하고 그 옆의 노래방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홍대앞 거리에는 다양한 선택의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보행자는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선택을 통해 다른 체험이 가능해진다.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 가를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경험의 밀도를 필자가 계산을 해보니 “명동거리 = 가로수길 > 홍대앞 피카소거리 > 강남대로 > 테헤란로”의 순으로 되었다. 주요 지표를 살펴보면 최고값을 가지는 명동거리와 가로수길은 최저값을 가지는 테헤란로의 4.5배 정도 높은 경험의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수치를 해석한다면 가로수길은 테헤란로 보다 4.5배 더 걷고 싶은 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명동거리와 신사동 거리는 각각 강북과 강남의 대표적인 걷고 싶은 거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량적인 수치와 정성적인 느낌이 비교적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행자의 체험으로 보았을 때 명동거리와 가로수길은 4.5초당 채널이 바뀐다면 테헤란로는 11초당 채널이 바뀌는 TV에 비유될 수 있었다.

강남과 강북 대표적인 거리의 분위기 차이는 그 거리가 위치한 주로 거리가 형성되었던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자연적으로 형성 된 지역의 경우 주로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의 문화 및 환경적 요인의 변화로 인해 자연발생적으로 거리가 형성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리가 소규모 민간자본에 의해서 작은 필지에 지어진 작은 건물들로 구성되어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조건 때문에 단위거리 당 점포의 수가 많아지고 보행자들은 가게에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경우의 수가 높게 나왔다. 반면, 도시계획에 의해서 큰 스케일의 필지와 자동차 중심의 도로로 정비된 지역에서는 거리를 구성하는 단위건물의 규모가 크다. 따라서 단위거리 당 보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조건은 도시계획상의 필지구획규모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가장 재미난 경우는 단위거리당 가장 높은 건물수를 보유한 명동이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이유는 명동거리의 필지의 프로포션이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로변으로 접한 면이 좁고 세로로 긴 형태라는 점 때문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도시계획가에 의해서 건설된 지역이기 때문에 일본 전통식 도심거리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좁고 긴 필지라는 조건 이외에도 인접한 건축물과 합벽의 형태로 건물과 건물사이에 틈이 없는 이유로 단위거리 당 건물 개수가 가장 많은 것이 명동 거리의 특징이다. 이는 주택가로 구성된 홍대앞과 비교했을 때 그 특징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홍대앞의 경우도 주거지역으로서 작은 필지를 구성하고 있지만 단위거리 당 건물의 개수는 홍대앞에 8개가 있는 반면 명동에는 15개의 건물이 만들어져 거의 2배에 이른다. 또한 명동거리는 50년대에 재건축이 되었을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는 자본시장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금융권의 지원을 받은 대규모 PF를 통해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작은 민간자본에 의해서 일제 강점기 시절 구획된 필지에 새로이 건물을 건축하는 상황으로 진행이 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좁은 건축입면이 유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단위거리에 더 많은 건물이 들어서는 물리적 환경이 구축되었다. 하지만 명동의 단위거리 당 건물의 수가 홍대앞이나 가로수거리의 2배의 개수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동의 120미터에 있는 입구의 수는 22개로 홍대앞의 20개와 큰 차이가 없으며, 가로수거리와는 같은 22개이다. 이 같은 이유는 건물의 입면은 좁았지만 결국 한 개의 점포가 입구와 쇼윈도우를 가지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점유해야하는 최소 폭(약 5미터)은 거리에 상관없이 비슷했기 때문에 비슷한 점포입구의 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명동거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조사한 5개의 거리 중 유일하게 보행자전용 거리(폭 10m)를 형성하고 있어서 건너편 쪽 상업가로와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걷고 싶은 거리는 결국에는 얼마나 자주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느냐의 물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도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대형 콤플렉스 건물을 만들더라도 거리와 접한 면은 작은 소규모 가게들과 입구가 놓이게 디자인 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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