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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위한 자국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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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면서 무심코 라디오를 틀었다. 노래가 끝나더니 DJ의 말은 없고 다시 3~4곡이 반복된다. 아, 참! 파업했지. 이리저리 생각이 많아진다.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1789년,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추포가 울렸다.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감옥을 습격하며, 자신들을 지배하던 전제왕정 체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바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혁명’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이후 7월 혁명, 2월 혁명을 거쳐 ‘프랑스 대혁명’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기존 사회를 지배해왔던 왕 위주의 세계를 점차 시민 위주의 세계로 바꾸어나갔다.


2017년 현재, 우리는 2016년의 촛불 ‘혁명’을 거쳐,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비춘 촛불 하나하나가 밝혀져 거리를 채웠고, 광화문에 모였으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촛불은 이어져 올해 초 탄핵이 이루어져 부패한 정권은 내려갔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우리는 정말 ‘혁명’ 속에서 살고 있을까?


지난 4일(월), KBS와 MBC 노조가 함께 총파업에 돌입했다. 두 방송사 노조의 구성원들 거의 대부분이 모인 파업은 약 3500명이 참여하며 대규모 파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목소리는 간단하지만 어려웠다. 그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9년이라는 시기 동안 발생했던 언론 적폐를 청산하고, 언론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투쟁에 돌입한다면서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대한민국 언론의 총체적 개혁을 외쳤다. 촛불 혁명이라 칭했고, 실제로 최상위 세력을 끌어내렸지만 아직까지 그 자국이 남아 얼룩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언론인들은 그리고 이를 지지하고 응원한 이들은 현재도 그 자국을 지우기 위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의 파업에 대한 두 방송사의 대응은 씁쓸하다. KBS 사측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사태가 발생하자 성명서를 통해 “KBS의 모든 기자들은 국가안보 위기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북한의 핵실험 관련 뉴스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공영방송의 기자가 가져야 하는 책임이란 가치가 기저에 깔려있겠지만, 단편적인 성명서 전달만 이루어졌다는 점은 회사가 대화의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MBC 사측의 대응은 더욱 씁쓸하다. MBC 사측은 보도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성명 낭독을 이어가고 있다. MBC는 ‘강력 규탄, 억압에도 방송 독립 지킬 것’이라는 보도를 통해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방송 장악을 위한 현 정권의 만행이라며 강력히 규탄한다는 MBC의 성명을 1분 41초간 그대로 읽었다. 또한 사장이 국가기관의 법 집행을 존중해 조사에 성실히 임해왔다면서 사측의 주장만을 계속 호소했다. 이러한 보도는 언론의 공정성에도 적절하지 못하며, 실제 방송심의규정 - 방송심의규정 제9조 공정성 조항 : 방송은 당의 사업자 또는 그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를 오도하여서는 아니된다. - 에 위배되는 행위이기도 해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보도에서는 이러한 사측의 입장이 지속적으로 표출되었지만, 노조 측의 주장은 실리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다시 돌아오자. 혁명이 발발하자 안타깝게도 루이 16세는 자신의 세력을 놓고 싶지 않았다. 새로 구성된 국민의회가 교회정책으로 갈등하고 있는 무렵, 루이 16세는 외국의 지원을 받으면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혁명세력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 하에 그는 헌법을 지키지 않고 네케르를 재해임하는 등 독단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후 그는 의회의 압박에 대항해 군대에 동원령을 내려 국민의회를 전복시키려 했다. 하지만 파리 시민 대부분이 의회의 편에 서 전복 시도는 좌절되었다. 급기야 그는 본인의 궁전을 버리고, 프랑스 동부에 있는 근위 부대로 도망치려하다 중간에 붙잡혔고, 이후 시작된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와 내통한 혐의로 처형되었다.


역사는 인간의 활동을 전제로 하며, 각 인간은 특수한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역사는 동일하게 반복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현재 프랑스 혁명과 현 사태를 동등한 위치에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루이 16세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고, 이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위기를 맞았다. 루이 16세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생각은 각자 달랐겠지만, 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꿈꾸었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그렇다면 소위 혁명의 시대인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언론 개혁과 이전 정부의 언론 적폐에 대한 올바른 청산 없이는 온전한 혁명이 될 수 없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촛불을 들었던 ‘혁명’을 제대로 성공시키려면 우리 모두 혁명 이후에 발생하는 그림자 제거에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 라디오를 들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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