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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국뽕’은 어떻게 소비되는가

국뽕, 애국심과 국가주의 사이에서의 아찔한 줄타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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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는 국뽕 영화가 아니다.” 이는 류승완 감독이 지난 7월 개봉한 자신의 영화<군함도>(2017)에 대해 애국심을 자극하여 흥행을 노리는 국뽕 영화가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한 말이다.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국뽕 영화가 아니라고 미리 못 박을 정도로 ‘국뽕 영화’라는 꼬리표는 어느새 대중들과 예술가에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자 ‘작품성을 배제하고 애국주의에 치중한 영화’라는 뜻으로 인식되기 시작됐다. 비슷한 예로 1,700만 명의 관객이라는 한국 영화사상 최고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명량>(2014)은 명량해전의 승리를 민족적 카타르시스로 전이시킨 ‘국뽕’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선수들이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는 기사에 ‘국뽕에 취한다.’라는 댓글이 달리는 등 국뽕은 대중매체와 경제, 사회분야를 가리지 않고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뽕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국뽕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신조어일 뿐 아니라‘무엇이 국뽕이고 무엇이 국뽕이 아닌지’에 대한 정확한 기준조차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애국주의가 만들어낸 국뽕의 어원과 개념을 정리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대립과 해결책을 짚어보고자 한다.

 

 

두유 노(Do you know)~? 한국의 국뽕을 아십니까

국뽕의 기원과 확산을 짚어보다

국뽕은 ‘국가’와 마약의 일종인 ‘히로뽕(필로폰)’의 합성어로 국수주의나 자국우월주의, 극단적인 형태의 민족주의를 의미한다. 또한 히로뽕을 맞은 것처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만 도취되어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한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이다. 국뽕은 2000년대 후반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역사갤러리’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한민족이 세계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수메르 왕궁을 세웠다.”라거나“명나라 황제 주원장조차 조선의군사력을 두려워했다.”라는 등 주로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한국사를 미화하는 행태를 비난하기위 해 쓰였다. 이후 대중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국뽕 논란이 확산된 것은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국의 통신사 기자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아느냐?”라고 묻는 장면이 인터넷에 퍼지면서였다. 이 질문에 대해 대중들은 미 국무부 브리핑이라는 자리에서 굳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언급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국인들을 향해 ‘두유 노(Do you know) 김치’나 ‘두유 노 싸이’를 연발하는 모습을 국뽕이라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국뽕을 방어하는 방법’이라며 티셔츠에 ‘나는 싸이, 강남스타일, 독도, 김치, 박지성, 김연아를 알고 있다.’라고 적힌 합성사진까지 등장해실소를 자아냈다. 국뽕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화 영역에까지 침투했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D-war)>(2007)의 엔딩장면에서 아리랑이 나오자 대중들은“영화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애국심만을 자극한다.”라며 영화 속 국뽕 요소에 비판을 가했다. 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과 <연평해전>(2015)과 같은 한국영화를 두고 영화의 작품성보다 과도한 애국주의에 경도되었다는 국뽕 논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국뽕 현상은 점차 역사 뿐 아니라 정치, 문화 등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어느새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정되어 소비되는 유머소재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 그중에서도 극단적인 국수주의나 애국주의를 비판하는 용어로써 자리 잡았다.

 

 

 

집단적 환각 상태, ‘국뽕’의 뿌리와 이면을 파헤치다

복합적 요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약물

국뽕 현상은 언뜻 보면 인터넷상에서 유행을 타고 확 타오른 불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뿌리를 면밀히 관찰해보면, 그동안 우리사회가 지속적으로 이 국뽕 현상에 자양분을 공급해온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 사회에는 ‘국가경제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국가주의가 만연했다.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시키는 사상원리나 정책’으로 정의되는 이 사상은, 경제발전과 전후(戰後)국가재건이라는 시급한 목표를 향해 국민들을 독려하고 이끌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 당시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은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 등이 포함되어 국가주의 이념을 개인에게 내면화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렇게 과거 정권은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자유성을 제한시키고, 이를 통해 온 국민의 역량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집중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대중들에게 개인주의를 퇴폐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시키는 한편,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되는 ‘집단주의’ 또한 뿌리내리게 하였다. 이렇게 심어진 사회적 인식은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가 당도하기 전까지 우리 경제 발전에 유의미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인들의 찬사는 집단 속에서 개인을 희생한 우리 국민들에게 보상으로 돌아왔다. ‘국가주의’의 씨앗은 어느새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 내렸고, 우리 사회 속의 개인들은 그들이 속한 집단, 나아가 그들이 살고 있는 국가를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 결과 집단과 국가가 일구어낸 성과는 개인이 이뤄낸 성과와 동일시되어 국가의 자랑은 곧 ‘나’의 자랑이 되었다. 당시는 군사독재로 인한 민주주의의 미성숙으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은 미비했던 시기였기에, 일방적인 국가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해 비판이나 자성의 목소리는 커지기 힘들었으며 소수의견으로 묻히곤 했다.

 

우리 사회가 이룬 경제적, 정치적 상황의 발전도 국뽕 현상이 뿌리내리는데 한 몫 했다. 한국전쟁 이후 온 국민이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 ‘엽전은 안돼’라는 말이 세간에 성행한 때가 있었다. 이는 우리 민족이 오랜 기간 사용해 오던 엽전에 스스로를 빗대 힘든 처지를 자조하던 표현이었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내며 전 세계를 상대로 한편의 ‘기적’을 선보이면서, 자조감에 빠져있던 국민들은 어느덧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된다. 특히나 국민들의 이러한 자긍심이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계기로 김태식 논설위원(조선일보)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꼽는다. 전후(戰後) 이 땅을 참혹한 폐허로만 기억하고 있던 세계인들에게 당시 TV에 비친 한국의 번영은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이러한 반응은 국내에도 전해지게 된다. 더불어 오랜 저항을 통한 정치적 민주화까지 수반되면서 국민들은 스스로 ‘엽전’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일부 지나친 자기도취로까지 이어져 국뽕 현상의 탄생에 일조하게 된다.

한편, 우리나라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에서 비롯된 국뽕을 역설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우리나라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자긍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이를 외부에 지속적으로 각인시켜 그 정당성을 확인받고자 하는 욕구가 국뽕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Do you know~?’라는 물음으로 우리의 우수성을 뽐내고자 하는 행위에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가진 것을 주변에 알리고 강조하면서 스스로의 불안감을 지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택광 교수(경희대)는 “우리는 김치 같은 브랜드를 통해 스스로 우월한 사회적 유전자를 가졌다는 걸 끊임없이 타자로부터 확인받으려는 경향이 있고, 이 타자는 대개 강대국 또는 강대국에서 온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국뽕은 여러 사회적 문제로 인해 현실적인 한계와 마주한 개인이 애국을 강조하며 자신의 행동을 국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 자위하는 현상이라는 분석 또한 존재한다.

 

 

 

국뽕은 이미 우리와 맞닿아 있었다

조작된 문화예술의 감동과 빗나가버린 국가 단합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전 세계 0.07%에 불과한 땅을 가졌지만, 이제는 전 세계인을 팬으로 가진, 이토록 큰 자부심을 주는 나라가 우리의 나라, 대한민국임을.’ 한국의 주요 투자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공익 광고, ‘프리미엄 코리아(Premium Korea)’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듣는 순간 꽤나 가슴을 찡하게 만들 법한 내용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찡한 감동의 출처는 어디일까?’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국가적 소재들은 언젠가부터 점점 확산되었다. <명량>(2014), <국제시장>(2014)에 이어 <덕혜옹주>(2016)와 <인천상륙작전>(2017)까지, 애국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하면서 전국 극장의 상영관을 대폭 차지했다. 이는 마치 ‘애국’이라는 코드를 영화계의 주된 장르이자 유행인 듯 보이게 했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애국 영화의 등장과 상영관 지배는 영화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지난 10일(일) 언론매체인 「한겨레21」과 「씨네21」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이른바 ‘국뽕 영화’ 제작 기획에 대해 단독 보도했다. 최근 영화계 인사 수십 명의 증언을 토대로 취재한 결과, 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계 인사들을 사찰하고 이를 통해 제작·투자·배급 등 영화산업 전반에 개입했던 국정원 엔터테인먼트팀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러한 국정원의 영화계 개입은 그동안 국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던 일부 영화들의 제작 목적과 가치를 무너뜨렸다. 이와 같이 대중매체에서 국뽕이 대두했던 것은 특정 정권의 의도와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었으며, 대중매체의 특성과 애국 정서를 악용한 대중 마케터들의 주입적 국뽕이었다.

본질적으로 이 국뽕 사건은, 영화매체가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반영의 기능을 억압했던 특정 강제 주체의 악의였다. 하지만 그 ‘뽕’에 심취해있던 객체들, 즉 대중들의 책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그간 이어지던 국뽕 영화에 대중들은 감동했으며, 애국주의적 자긍심에 심취해있었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소재로 일제의 핍박과 민족의 고통을 담아낸 <덕혜옹주>(2016)는 역사 왜곡의 논란 속에서도 관객 522만 명을 모으며 일찍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애국 영화를 통한 대중들의 국가, 민족에 대한 심취가 거짓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이러한 민족적 감동은 ‘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과도한 애국 영화에 대한 심취는 대중들의 객관성을 떨어뜨리는데 한몫을 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국민들로 하여금 왜곡된 애국에 다가가게 하였다.

이와 같은 국뽕의 부작용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도 두드러진다. 지난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의 김연아 선수 은메달 편파판정 논란 당시, 대중들의 애국심은 들끓다 못해 넘쳐흐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네티즌들의 반응뿐만 아니라 공식 언론까지 가세할 정도였다. KBS는 폐막식 생중계 중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에 대해 ‘(실제로는 금메달인) 은’이라는 이례적인 자막을 내보냈으며, 당시 금메달을 획득했던 러시아 피겨선수 소트니코바의 갈라쇼 연기를 희화화하는 해설과 기사는 연일 언론을 도배했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경기는 경쟁을 통한 각 국가의 단합과 애국심 고취라는 목적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잘못된 판정이나 오류에 대해 국민들이 철저히 반응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파생된 타국 선수에 대한 공식적인 희화화와 조롱,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자국 선수에 대한 국민들의 맹렬한 비난, 특정 선수에 대한 지나친 환호와 함께 선수 개인에 대한 국가성 주입은 분명히 드러난 문제점들이었다. 소치올림픽 당시 LPG 업체 E1은 소치 동계올림픽을 겨냥해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대한민국이다.’라는 문구로 광고를 방영한 결과, ‘억지 애국심에 호소한다.’라는 대중들의 비난을 받으며 이를 중단했다. 이러한 스포츠 국가주의에 대한 논란은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되어, 억지스러운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국뽕에 대한 비난에서 파생된 국가혐오주의에 대한 우려 또한 가중되었다. 스포츠와 올림픽의 본 목적은 상실되어버렸고, 그 결과 자국 선수에 대한 순수한 응원조차 힘들어진 것이다. 다가오는 평창 올림픽에 있어서 또한, 국뽕은 지나간 과거도, 먼 나라의 이야기도 아닌 우리의 현재이고 미래이다.

 

김정운 기자(rhra011@mail.hongik.ac.kr)

홍준영 기자(mgs0503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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