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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가고, 시간은 지나간다.

함께이기에 현실이 두렵지 않은 네 남자의 이야기, 『망원동 브라더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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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일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한다. 바로 여기, 인생이라는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네 명의 남자가 있다. 20대 만년 고시생 ‘삼척동자’, 30대 무명 만화가 ‘나’, 40대 기러기 아빠 ‘김 부장’, 50대 황혼이혼남 ‘싸부’까지. 『망원동 브라더스』는 소설 속 구절 그대로 ‘인생이 연체된’ 네 남자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고 좌절, 재기, 우정, 사랑 등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낸다. 실패하면 좀 어떤가. 어두운 현실이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더디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출발을 향해 힘차게 도약한다. ‘브라더스’들과 함께라면 인생 속 실패도 씁쓸하지는 않아 보인다. 기자는 하얀 종이 위 새겨진 그들의 희망과 함께 망원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백수들의 놀이터가 된 나의 옥탑방. 어쩌다 일이 이렇게 까지 됐을까. 더 이상 고요한 옥탑의 아침은 사라지고 없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일제의 침략에 점령된 뒤 겪은 식민지 백성의 슬픔이 이러했을 터. 실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택시에서 내리자 망원역 2번 출구가 보인다. 소설은 ‘나’가 캐나다에 가족을 둔 채 한국으로 귀국한 ‘김 부장’과 망원역 2번 출구에서 만나며 시작된다. 기묘한 동거의 시작이다. 김 부장과의 불편한 만남을 시작으로 이내 ‘나’의 옥탑방은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 백수 만화가인 ‘나’는 자존심을 접고 학습만화라도 그리기 위해 만화계 마당발인 선배의 돌잔치에 참석한다. 돌잔치 한 구석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싸움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나’는 10년 전 그에게 만화를 가르쳐 주었던 ‘싸부’를 만나게 된다. 이후 집을 나왔다는 싸부도 망원동의 옥탑방에 합류하고, 여기에 20대 고시생 ‘삼척동자’까지 종종 그의 집을 찾는다. 좁디좁은 옥탑방의 인구밀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낯선 망원역의 모습을 뒤로하고 기자는 그들이 살고 있다는 망원2동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리를 따라 빽빽이 들어서 있는 상점에선 무언가 분주한 소리가 들려오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넘친다. 이런 곳이라면 왜 그들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붉은 색의 벽돌과 비슷한 모습들의 빌라가 기자를 반겼다. 옥상 위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옥탑방이 줄을 지어 서있다. 이 옥탑방 하나하나에도 각각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응원이라도 하는 양 기자는 빌라 사이에서 한동안 서성이다 점점 저물어가는 해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말없이 한강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본다. 곳곳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들은 다 어디에 직장이 있고, 어디에 집이 있는 걸까?

길을 걷던 기자는 어느덧,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설 속 구절처럼, 한강 둔치 곳곳에는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는 사람, 한강변을 따라 걸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 풍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소설 속 브라더스들은 우울한 이야기를 했다 하면 끝은 항상 술로 맺었다. 기자도 그들처럼 맥주 한 캔을 사서 한강 둔치에 앉았다. 목 뒤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손에는 시원한 맥주가 들려있다. 어느덧 한강 다리에는 불그스름해진 해가 걸려 눈부셨다. 완벽한 풍경이다. 한강엔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해질녘 한강에 홀로 앉아 맥주를 들이켜니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한강을 바라보며 훌훌 털어버렸을 것이다. 한강에 저물고 있는 검붉은 해와 같이 저무는 인생이지만 다음 날 다시 빨갛게 떠오르는 해처럼 다시 떠오를 것이란 믿음.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슬픔을 삼켰고, 좌절을 강 속으로 버렸고, 어둡기만 해 보였던 강 속 깊은 곳에서 희망을 보았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 부장과 포탄 크기의 카스를 세 병째 비우고 있는데, 제니스 조플린의 <서머타임(Summertime)>이 흘러나온다. 주인장은 나를 기억한다. 이곳에 올 때마다 이 노래를 신청했고, 주인장도 제니스 조플린을 좋아했던지, 언제부턴가 내가 오면 알아서 이 노래를 틀어주곤 했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사랑을 한다. 하지만 험난하기만 한 사랑이다. 주인공이 찾는 술집 ‘올드 앤 와이즈’는 그의 러브 스토리를 그대로 담아낸 공간이다. 그는 사랑을 할 때면 항상 버릇처럼 이곳을 들린다. 전 여자 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곳도 이곳이고,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주연’씨와도 이곳을 찾았으며, 집을 구하던 중 우연히 인연이 된 ‘선화’와도 이곳을 찾았다. 노래도 항상 같은 곡. 작품 속에선 서교동에 위치한 술집이라고 소개되지만, 실제로 ‘올드 앤 와이즈’는 종로 언저리에 위치해있었다. ‘나’의 발자취를 따라 기자도 종로를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벽을 타고 기분 좋은 재즈 리듬이 흘러들어온다. 20대의 취향과는 사뭇 맞지 않는 듯한 벽장의 LP판들이 기자를 반겼다. 기자는 소설 속 ‘나’처럼 제니스 조플린의 ‘summertime’을 신청했다. 이내 잔잔한 기타선율과 얇은듯 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제니스 조플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비록 좁은 옥탑이지만, 제가 형제들처럼 재워드리고 먹여드렸지 않습니까? 그러니 브라더스죠.” (중략) “가만 옥탑방은 좀 뻔하네요. 여기가 망원동이니까··· 망원동 브라더스 어때요?” “안 쫓아낼테니 망원동 브라더스 건배합시다!”

다시 망원동으로 돌아왔다. 이제 망원동은 낯설기 보단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진다. 소설의 마지막에 망원동 브라더스는 해산된다. 하지만 슬픈 일만은 아니다. 인생의 실패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망원동으로 모여들었던 그들이 다시 각자의 길을 걷는다는 신호다. 김 부장은 삼척동자와 함께 해장국 집을 열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고, 싸부는 이별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나’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느새 여자 친구가 된 선화와 함께 웹툰 작가를 꿈꾸고 있다. 


어느새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창작의 길이라 믿는다. 그렇다. 돈이 안 벌리건, 인기를 얻지 못하건, 지구온난화로 빙산이 녹건, 그녀가 내 만화를 좋아한다면 다른 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시 돌아온 망원동에서 기자는 숨을 크게 들이셔본다. 밤공기가 가볍다. 이 곳 어딘가에 유쾌하게 재기를 꿈꾸는 그들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 실패에 좌절하면 어떻고, 무기력한 세월 좀 보내면 어떤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가고, 시간은 지나간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전진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언제든 망원동의 옥탑방으로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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