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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인간

되돌아보자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3년 동안 기자는 고무줄 같은 사람이었다. 마감 날은 물론이거니와 마감이 아닌 날에도 원고를 붙들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헤드를 맡은 주에는 1면이니까, 보도를 맡은 주에는 제때 취재를 나가야 하니까, 인터뷰를 맡은 주에는 인터뷰이의 의도를 해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이번처럼 S동 211호를 맡은 주에는 후회 없는 글을 써야 하니까. 더불어 이번 주 기사를 쓰면서도 다음 주 기사를 위한 학내 이슈에 온 신경을 곤두서고 있어야 하니까. (하여튼) 이유는 많았다. 취재처에서 기자를 ‘기자님’이라고 대해주느냐 ‘성가신 사람’으로 대하느냐에 따라서 기자는 한껏 어깨를 펴다가도,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방아쇠도 아닌 것이 월, 화, 수, 목, 금, 토, 날이 갈수록 한계치까지 팽팽히 늘어났다가 토요일 저녁이 되면 ‘탁’하고 풀어져 기자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도 종종 ‘잘 읽었다’리는 짧지만 강력한 격려 덕분에 기분 좋은 탄력을 받고 기운을 차린 적도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매주 기자의 고무줄은 이렇게 늘어났다가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기자로서 하는 모든 일이 기자 의지대로 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물론 긴장하며 보냈던 시간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비록 그것이 기자의 저질 체력을 고려해주진 않았을지라도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종종 이 고무줄이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처음으로 큰 기사를 맡았을 때, 기사가 아닌 인간관계가 회의감을 느끼게 할 때, 고달픈 방학 중 기획 회의가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주어진 일을 과연 기자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가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만 더 당기면 끊어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무줄은 조금씩 유연해졌던가 보다. 어디로 튕겨나가지 않고 어김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니 말이다. 늘어난 고무줄 틈 사이에는 기자가 느끼고 배웠던 짧은 생각들이 끼어있다. ‘내’가 혼나지 않기 위해 한 자 한 자 신경 써서 써갔던 기사는 이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글이 되었고, ‘나’만을 위해 뱉었던 말 한마디는 이제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말이 되어 오래도록 입안을 맴돌았다. 기자에게 지난 시간은 기사보다 기사 한 줄에 얽힌 사람들이 더 기억날 순간들이다.


손목에 머리끈 꽤나 차고 다녀봤다는 여자들은 안다. 새 머리끈을 손목에 끼우면 처음 몇 주 동안은 고무줄이 너무 쬐어서 불편하다. 머리끈을 두 번, 세 번 돌려 묶다 보면 조금씩 고무줄이 늘어나 이내 손목에 끼워도 불편하지 않은 적당한 때가 찾아온다. 그렇게 밥 먹을 때, 세수할 때, 공부할 때마다 부지런히 머리끈을 쓰다 보면 어느덧 그 적당한 때를 지나 죽- 늘어난 머리끈이 손목에 헐렁해지는 때가 온다. 새 머리끈을 꺼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3년 동안 기자는 이 신문사에서 실컷, 원 없이, 수시로 머리끈을 질끈 조여 맸다. 늘어난 머리끈만큼 기자도 성장한 것이라 믿고 싶다. 좋게 말하면 익숙해진, 냉정하게 말하면 조금 느슨해진 이 머리끈은 이제 그만 내려놓고 다시 한껏 기자를 긴장하게 만들 새 고무줄을 찾아갈 때가 왔다. 


 

윤예본 기자  yoon9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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