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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시초부터 한국 힙합이 대중화되기까지

유대감 속에서 태어난 힙합, 한국의 새로운 연대를 형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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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 당시의 사회적 문제들을 이야기하며 대두한 팝아트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팝 아티스트이자 낙서 화가이던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와 키스 해링(Keith Harring, 1958-1990) 등 수많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사회적 도시문제로 대두되던 거리의 낙서들을 역으로 전환하여 사회·문화적 쟁점을 다루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한 부분을 차지한 이 그래피티의 발단이 되었던 수많은 거리 낙서들은 어떻게 확산되었던 것일까? 작은 흠집만을 시작으로 차 전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범죄심리학 법칙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과 같이, 당시 길거리 벽의 낙서들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었다. 그 시발점이 되었던 ‘깨진 유리 흠집’의 범인은 누구였을까? 그 시작은 바로 당시 미국의 슬럼가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의 길거리에서 랩과 춤 등의 힙합 문화를 즐기던 흑인 이주민들이었다. 당시 60년대 산업구조조정을 맞닥뜨렸던 이들은 그 속에서 어떻게 낙서를 남기며 길거리에서 뭉치게 되었을까?

 

▲그래피티(Graffiti)/ 출처: 픽사베이
▲그래피티(Graffiti)/ 출처: 픽사베이

고립과 억압 속 연대와 생존을 위해 등장한 힙합

1950년대 미국 뉴욕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에 일자리를 얻기 위해 흑인, 히스패닉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 온 이들 앞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이로 인해 폐쇄된 수많은 항구, 대형 공장들뿐이었다. 생존을 위해 이주해온 이들은, 일자리를 상실한 채, 슬럼화가 되어버린 브롱스 지역에 잉여인력으로 잔류하며 소외 계층에 머물렀다. 한편, 이러한 고립과 시련 속에서 꽃피우게 된 하나의 문화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힙합이다. 당시 뉴욕의 슬럼지역에서 흑인, 스페인계 청년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힙합은 그저 음악이나 춤 양식에 그치지 않고 당시 그들만의 유대감이자 문화적 연결망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즈(T. Rose)는 힙합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흑인들은 탈 식민지적 도시 지역에 뿌리를 둔 새로운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발전시켰으며 그 중심에는 힙합 음악과 문화가 내재되어 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이처럼 생존적 차원에서 나타난 힙합 문화는 점차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2년 10월 힙합그룹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의 앨범 <The Message>(1982)의 발매를 시작으로, 힙합은 정식 음악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앨범은 당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노래에 담아 힙합 음악의 정치·사회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어 1984년 릭 루빈(Rick Rubbin)과 러셀 시몬스(Russell Simmons)가 설립한 음반 레이블 ‘데프잼 레코딩스(Def Jam Recordings)’는 1986년 백인 3인조 그룹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데뷔 앨범 <Licensed To III>(1986)를 발매하며 힙합 음악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석권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팝 음악계에서 힙합 음악의 가능성을 입증하였으며 동시에 백인 래퍼들에 대한 흑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완화시키기도 했다.

 

힙합, 한국 정서로의 도입

앞서 살펴본 힙합 음악은 팝 음악계 뿐만 아닌, 우리나라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힙합이 한국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이야기는 다시 1980-90년대 힙합 음악으로 넘어간다. 초기 흑인의 저항심과 정체성을 이야기하던 힙합 음악은 더 이상 흑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1990년대 힙합계에는 서부 힙합 뮤지션을 중심으로 일명 ‘갱스터 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갱스터 랩은 실제 갱스터들의 거친 표현과 욕설들을 힙합 음악에 끌어들인 랩 방식으로, 이는 당시 힙합 음악의 색감과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러한 힙합이 한국에 비공식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시기 또한 당시 90년대였다. 그러나 이 시기 힙합 앨범들은 갱스터 랩의 영향으로 가사와 앨범 커버에 과격한 욕설과 성적 표현이 난무해 당시 엄격한 한국의 사전 심의제도에 규제되었다. 따라서 당시 국내로 유입되었던 앨범들은 모두 개별 상인들의 해외 구매나 CD, 비디오의 소량 반입을 통한 것이어야만 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힙합은 정식 힙합 음악이 아니었던 홍서범의 <김삿갓>(1989)이라는 앨범을 시초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앨범은 당시 랩과 유사한 보컬 방식을 최초로 선보였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에는 힙합 스타일을 빌려 곡을 만드는 뮤지션들이 증가하였다. 또한 1996년에 사전 심의제도가 폐지되며 외국의 힙합 앨범들도 ‘19세 미만 청취 불가’라는 딱지만 붙이면 어디서든 판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흑인들의 정서가 기저에 깔려있던 힙합문화는 한국인에게 생소하게 다가왔고, 우리 사회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힙합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게 된 것은 한국 힙합 음악들에 우리 사회의 반영이 담긴 덕분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힙합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3인조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은 <컴백홈(Come Back Home)>(1995)이라는 곡으로 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권태, 사회적 억압에 대해 다루며 가출 청소년들에게 집으로 돌아오라는 등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와 함께 초기 한국 힙합 음악은 대중가요의 일반적 주제로 쓰이던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와 당시 사회적 문제였던 청년 실업,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 가출 문제에 대해 다루었다.

 

한국을 집어삼킨 힙합, 자기 생각의 표현인가 존중 없는 표현인가

이처럼 한국인들의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 한국 힙합은, 점차 기하급수적인 인기를 얻어 가며 음악적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양식과 의식으로까지 영향력을 뻗쳤다. 한국 힙합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와 ‘언프리티 랩스타’, ‘고등래퍼’ 등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2012년 방영을 시작한 ‘쇼미더머니1’은 시즌을 이어가며 매년 뜨거운 인기로 대한민국을 힙합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반면 이런 열광을 불러일으킨 힙합 곡의 주제는 남에 대한 비방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성적 판타지, 부에 대한 욕망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90년대의 갱스터 랩에서 시작된 욕설과 폭력적인 속내들이 대중화되면서 외설적인 성적 표현과 욕설은 랩 가사의 필수 요소가 되어갔다. 심지어 이런 가사들은 청년들에게 으스댈만한 ‘멋’인 스웨그(Swag)로 인식되기도 했다. 따라서 최근에는 욕설이 담긴 힙합 음악들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심각한 폭력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블랙넛(왼쪽)과 키디비/ 출처: 스타뉴스
▲블랙넛(왼쪽)과 키디비/ 출처: 스타뉴스

실제로 지난 9월 4일(월) 저스트 뮤직의 소속 래퍼 블랙넛은 래퍼 키디비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이는 과거 블랙넛이 랩 가사를 통해 래퍼 키디비를 겨냥한 성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일에 대한 키디비의 법적 대응 결과였다. 이외에도 힙합 관련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많은 래퍼들이 폭력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가사 등으로 잦은 논란을 겪고 있다. 또한 힙합으로부터 잘못 파생된 욕설과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은 미성년자들에게 또한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하나의 문화로 발전한 힙합은 그동안 한국 사회 내의 고충을 담아내어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악용되어 문제점들을 발생시키기도 하였다. 흑인 이주민들의 유대와 생존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힙합 문화는 이외의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담으며 다방면으로 변형, 확산되었다. 힙합은 단순히 음악 장르만이 아닌 종합적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이렇듯 힙합은 우리의 의식과 사회 모습을 반영한 문화인 만큼, 좀 더 조심스럽고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규탁, 「한국 힙합 음악 장르의 형성을 통해 본 대중문화의 세계화와 토착화」,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1)

이아람, 「한국 힙합음악의 주제 및 소재에 관한 고찰」,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학위논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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