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토르 E. 프랭클 지음, 청아출판사, 2005

<미학입문> 임지연 교수가 추천하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나 한번쯤 물어보았을 법한 진지한 물음이지만, 안락하거나 만족스러운 일상 속에서는 별로 생각나지 않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생에 대한 권태가 자신을 엄습해 올 때, 혹은 차마 인정하기 힘든 생의 끔찍한 민낯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삶의 고유한 의미와 방향을 묻는 가운데 자기 내면의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힘을 얻는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 정신의학자인 프랭클 박사(Viktor Frank, 1905-1997)는 2차 대전 중 3년 간 아우슈비츠에 수용된다. 끔찍하다는 말조차 한가하게 들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수용소에서 겪었던 체험과 인간 내면에 대한 치밀한 성찰을 바탕으로, 마침내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요법인 ‘의미치료기법(Logotherapy)’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1부)을 비롯하여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2부), 그리고 ‘비극 속에서의 낙관’(3부)으로 구성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고통 앞에 선 인간을 향한 프랭클 박사의 연민어린 시선과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그의 현실적인 노력을 총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로고테라피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론도 흥미롭지만, 이 책에서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수용소 생활 중 다른 사람이 아니라 프랭클 자신의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 겨울 신발도 없이 노동한 탓에 동상으로 발이 온통 썩어 들어가는 12살 소년에게 그나마 어른들이 행한 ‘치료’는 녹이 슨 핀센으로 발의 뼈가 보이도록 썩은 살을 발라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어느 누구도 (프랭클 자신을 포함하여) 눈살을 찌푸리거나 소년이 느꼈을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용소에서 그 정도의 고통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불과 2시간 전에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갑자기 시체가 되어 형편없이 버려지고 처리되어도, 프랭클은 그 죽은 자의 ‘동태 같은 눈’을 한 번 힐끔 바라볼 뿐, 이내 아까운 듯 수프를 먹기 시작한다.
끔찍한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터득한 것은 무감각과 무관심, 무표정이다.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세계 및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한다. 그리고 외부세계와의 단절은 곧 자기가 자신에게 맺는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 안에서 과거와 미래를 완전히 상실하여, 자기 자신을 갑자기 떨어져 나온 물질적 덩어리 혹은 희망 없는 존재로 대한다. 그에게는 기억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자기 밖에서든 자기 안에서든 말을 거는 사람도, 또 말을 들으려는 사람도 없다. 말과 대화가 사라진 자리엔 생경한 시체-쓰레기와 외마디 비명만이 남는다.


그런데 왜일까, 수용소에서의 생활과 그것을 채우는 정서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의 불안과 고통의 지점을 직시하고, 이를 의미 추구의 방법으로 타개해 나가고자 하는 프랭클의 작업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우리의 문제에 한 가지 길을 제시해 준다. ‘우리 함께 아파하자, 의미는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거야, 우리의 상처를 두고 우리가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파아란 무언가가 피어나듯 그렇게.’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