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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섭(경영10)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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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50m 달리기를 위해 출발 선상에 서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준비~ 시작!”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무언가를 하려면 50m 달리기처럼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50m 달리기를 위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준비’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잘 달릴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있다. 우리는 준비하니까 시작을 못 한다. 인내심과 결단력이 한없이 크다면 우리는 이러한 역설을 만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준비만 하다가 끝이 난다. 외국인과 영어로 잘 대화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우리는 영어책을 편다.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책은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우리의 목표는 미완결의 상태로 끝이 나게 된다.


후배들이 내가 공모전에서 어떻게 여러 번 수상했느냐고 물어온다. 어떤 책을 보고 누군가를 만나서 조언을 듣고 어떤 공부를 하였느냐고 묻는다. 나는 단박에 알아챈다. 준비를 하려 하는구나.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준비는 끝이 났다. 그냥 해라” 사실 무언가를 시작해보고자 찾아온 후배들의 대부분은 벌써 꽤 준비되어있다. 그리고 설령 정말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한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면서 미흡한 부분은 그때 보강하면 된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사실, 준비는 가치중립적이다. 나쁜 대상이 아니다. 좀 더 잘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이 어떻게 나쁠 수가 있을까. 문제가 있는 건 오히려 사람, 즉 우리다. 시작을 위해 준비를 한다. 그냥 ‘준비’가 아니다. 큰 성공을 위한 ‘큰 준비’를 한다. 하지만 ‘거대한 준비’와 맞닥뜨리면 정말 크고 빛났던 우리의 꿈과 목표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사라진다.


50m 달리기를 위해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시작’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작’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이다. 연초에는 피트니스클럽이 붐빈다. 우리는 ‘시작’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문턱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된다. 지금 목표와 꿈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이 있다고 보자. 그런데 깔끔한 새해는 즉, 2018년의 시작은 아직도 며칠이나 남았다. 그 사이 우리의 열정은 또 사라지게 된다. 


몇 년 전 내가 처음으로 창업을 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팀원으로 모으고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서비스 플로우까지 완성되었다. 그때가 3월이었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진행이 되지 않았다. 다들 무언가 열심히 하는데 아무것도 나아가는 것이 없었다. 실제로 진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준비해야만 했다. ‘시작’의 벽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시작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자그마치 4개월을 끌었다. 그나마 4개월 후라도 사업을 하게 된 것이 사실 기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좋은 팀원들이 옆에 함께 했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나의 결단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시작이. 


준비와 시작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 큰 것 같다. 이제 우리는 ‘행복’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행복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전에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은 시작해야만 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시작을 없애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이미 행복의 길 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준비가 없어도, 시작이 초라해도 이미 행복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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