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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 경험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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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교 신문 사설을 청탁 받으며 과거에 내가 모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것을 떠올렸다. 사실 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것에는 많은 나의 인생의 굴곡이 뒤얽히면서 부터였다. 나는 원래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1986년 3월에 입학하여 첫 시작은 중국어와의 씨름에서부터였다. 내가 중어중문학과를 입학하게 된 것은 대학 입학 직전인 1985년 12월 모종의 소스를 통해 당시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 간의 극비리의 왕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였다. 1985년 말만 해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당시의 중국의 위상은 현재와 비교해 매우 별 볼일이 없었지만, 중국에 정통한 전문가들에게는 중국이 앞으로 경제․정치․사회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급부상하리라는 의견들이 중론이었다. 이런 모종(?)의 정보를 기반으로 당시 영문학과나 독문학과를 지원하려던 꿈을 접고 중어중문학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중어중문학과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해서 당시 문과대 전체 수석을 세 번 하였으며, 졸업 시 학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졸업 후 바로 군에 입대해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였으며, 군 복무를 마친 직후 미국 보스턴으로 떠나 미국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과정을 가졌다. 미국에 있던 중 미국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국제변호사가 되어도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는 정보를 접한 나는 과감히 계획을 바꾸어 귀국하였다.

귀국 후 나는 인생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중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언론사에 입사해 기자로서 사회의 비리를 파해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꿈을 갖게 되었다. 내가 언론사에 입사할 꿈을 갖게 된데 가장 큰 원동력은 나의 모친이셨다. 나의 모친은 당시 중앙일보에서 기자를 하고 있던 나의 사촌형을 예로 드시며 남자는 큰 꿈을 갖고 사회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언론고시를 볼 것을 권유하셨다.

나는 일 년 동안 다양한 언론사들의 입사시험을 보며 몇 차례의 좌절을 거쳐 당시만 해도 신문사 중 판매부수 및 월급 등에서 일 위를 차지하고 있던 B신문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당시 국내 모든 신문사에서는 6개월간 수습기자 과정을 거치는데 나도 수습기자로서 마포구 외 3개구를 맡아서 그 4개구에 있는 모든 경찰서, 법원, 병원 등을 하루 거의 두 세 시간뿐이 못 자고 온종일 취재를 다녔다. 나는 당시 이진기자라서 일진 기자들 같이 좋은 숙소에서 자지도 못하고 조그만 경찰서의 이진기자실에서 달동네보다도 못한 환경에서 쪽잠을 잤으며, 일주일에 단 하루만 집에 들어가 잘 수 있었다.

또한 언론사간 특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상상할 수 있는 무리한 취재도 과감히 하였다. 그 후 육 개월 간의 수습을 마치고 일진 기자가 되어 역대 모든 대통령들의 비리 중 하나였던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취재를 하였다. 당시 대통령의 측근들이 공기업들에 낙하산 인사로 들어간 것을 취재하면서 취재원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압박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런 기사가 나가면 취재원들이 피해를 볼 것을 뻔히 알면서였다.

신문사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이차대전 당시 중국 남경에 있던 일본군의 마루타 부대의 부대원에 관한 것이다. 내가 마루타 부대원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은 일본의 신문에 사상 최초로 마루타 부대원이 남긴 장문의 일기와 유언이 담긴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고서였다. 당시 우리 신문사 동경특파원이 이 사실을 우리 신문에 간략히 실은 것을 보고 취재를 하면 상당히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문제는 내가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점이였다. 그래서 나의 신문사 입사동기 중 일본어에 능통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연락을 해 내가 직접 일본에 가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마루타 부대의 실상을 우리나라에서 보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오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것은, 기자 생활을 하며 내가 취재한 취재원들이 나의 기사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것이 나의 본성인 맑은 도덕성에 위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살인을 한다든가 강도질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법을 저지르거나 비리를 저지른 사람도 그들의 삶의 권리가 있다. 언론인들은 특종 경쟁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의 기사가 취재원을 생매장시켜 극단적인 경우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이제는 내가 기자가 아닌 교수가 되어 신문 및 방송 뉴스를 보며 과거의 나를 회상하게 된다. 이제는 모든 것이 추억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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