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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홍대 학예술상소설부문

 

홍대신문사 주최 제42회 홍대 학·예술상 부문별 당선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소설부문 최우수>

행운목
김형우
 

 

1
그녀는 늘 일어나던 대로 일어났다. 해가 뜰 무렵이었고, 몇 시인지는 몰랐다. 눈이 어두워 시계를 보려면 눈에 힘을 주고 한동안 응시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일이 아니면 시계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해가 뜨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날이 쌀쌀해지고, 추워지면 일어나고 한참 뒤에 해가 뜰 것이다. 그녀의 몸은 이 시간들에 익숙했다. 그녀는 70대 초반이었고, 호리호리한 몸에 키가 작았으며, 목까지 내려오는 까맣게 물들인 곱슬머리는 억센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작고 갸름한 얼굴에 검갈색 눈동자를 가졌고, 거기엔 칠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와 가족 모두의 이쁨을 한 몸에 받고 자라면서 생긴 막내 특유의 눈빛이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환상과 현실사이에서 살았다. 어떤 현실도 나름대로의 환상 속에서 해석해 낼 줄 알았다. 그녀는 세수를 하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개수대 오른 편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 달걀 4개와 어젯밤에 끓여둔 된장국이 든 냄비를 꺼내, 달걀은 사발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놓고, 냄비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았다. 개수대 밑 선반에서는 스팸을 하나 꺼내—스팸은 아들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반찬이었다. 손주와 손녀도 남편과 아들
을 따라 고기반찬이 없으면 반찬 투정을 했다— 양철통의 뚜껑을 열어 갈린 채로 뒤엉켜있는 살색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꺼내 8등분으로 썰어두고, 어젯밤 미리 준비해둔 쌀이 들어있는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렀다. 20분쯤 지나면 밥솥 위에 있는 증기배출구로 증기가 솟아오르며 구멍을 막고 있는 압력추를 이리저리 흔들어댈 것이다. 그녀는 잠시 식탁에 앉았다. 거실에 깔려있는 장판의 흐릿해진 대리석 무늬 위로는 여기저기 종이박스들이 열린 채 놓여있었다. 이제 6살이 된, 제 아빠와 할아버지에게서 동그란 얼굴과 생머리를 물려받았고, 제 엄마의 것과 같은 갈색의 눈동자로 매일같이 그녀를 호기심이 가득 찬 눈길로 쳐다보는 손주 녀
석은 로봇으로 변하는 자동차,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들어놓은 레고 같은 것을 손에 집히는 대로 박스에 넣었고, 사춘기가 시작된 손녀는 12살이었고, 말없이 자신의 방에 있던 인형들을 한데 모아 박스에 담아 방문 앞에 내놓았다. 그녀는 손녀딸에게 이제 인형은 필요 없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꼭 가져가야 한다며 얼굴을 찡그리며 짧게 대꾸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또 다른 박스를 쌌다.

2
“못 가져가.” 평소 말수가 적은 그녀의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남편은 이제 80대였고, 달걀형 얼굴에, 옅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졌고 너그러워보이는 인상을 가졌다. 머리색은 회색과 흰색이 섞여있었고, 남아있는 머리칼이 드러난 두상을 가리고 있었다. 20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며 받았던 퇴직금으로 슈퍼마켓을 열었는데, 슈퍼마켓에 들러 일해주는 사람이 딴청을 피우는지 확인하러 오가는 것과 끼니때 나와 식사를 하는 것 외에는 거의 줄곧 방 안에만 있었다. 그녀는 그가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없었다. 책을 읽는 것도, 라디오를 듣는 것도, 티브이를 보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쨌거나 무언가는 하고 있을 터였다. 시간이 그에게만 정지된 것은 아닐 테니까. “30년도 더 된 걸 뭐 하시려고요. 기름값도 안 나올거에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러 방에서 나온 아들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30년도 더 돼서 이런 건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구할 텐데… 이걸 아까워서 어째….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그녀는 아쉬워하며 대답했다. “새로 가는 곳은 집이 좁아서 가져가도 놓을 데도 없어.”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아들은 이미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행운목은 물고기 대신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진 어항 옆에서 그것들의 시선을 받으며 어제와 다른 것 없이 서있었다. 언젠가 집어 들었던 거실에 있는 장식장 안의 미니어처들, 그녀는 그것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장식장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어딘가 갔다 오며 사다 준 기념품들이 있었다. 태국에서 온 코끼리, 일본에서 온 여우와 고양이, 중국서 온 팬다 인형… 그런 것들을 받으면 그녀는 거실의 장식장 속에 넣어 두었다. 처음에는 눈이 갔지
만 시간이 지나면 잊혔고, 그녀는 어느 날 미니어처들 위로 한층 두텁게 쌓인 먼지를 먼저 발견했었다. 행운목도 한동안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애지중지하던 것이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왜 그랬던 걸까. 별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건지도 혹은 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행운목은 무성히 자라 천장에 가닿아있었고,  몸통에는 가지가 전보다 많아져 있었다. 가지마다 뻗어 나온 잎들은 이전보다 가늘고 길어져, 두텁게 서로를 움켜쥐는 듯했던 모양새는 사라지고 가지 끝에 겨우 매달려 있는 듯했다.

3
행운목은 30년 전,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조카가 선물로 보내준 것이었다. “행운목에 꽃이 피면 집안에 행운이 찾아온대요”라고 조카는 수화기 너머에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카는 늘 말쑥하게 차려입었고, 자신을 수수하게 꾸밀 줄 알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똑 부러지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조카는 선을 보러 서울에 올라와 그녀의 집에서 신세를 졌었는데, 그때 선을 봤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역업에 종사하던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영국으로 발령받자, 그를 따라 영국으로 갔다. 행운목은 그녀보다 작았었다. 나무의 몸통은 그녀가 쥔 주먹보다 약간 두터웠고, 몸통의 윗부분과 한 뼘 반쯤 밑에 짧게 자란 큰 가지들이 나 있었고, 가지에 난 넓은 잎 들은 청록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색이 좋았다. 해가 뜰 무렵, 아무도 깨지 않은 때에, 점점 선명해지는 잎
들의 색을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잊고 있었던 꿈이 떠올랐다. 그녀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녀 앞에는 작은 책걸상이 줄 맞추어 나란히 놓여있고 거기엔 아이들이 있다. 얼굴색이 뽀얗고 통통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그녀를 선생님 이라고 부른다. 생각만으로도 흡족했다. 아버지가 깨주던 알사탕도 떠올랐고, 자신의 둘째 오빠와 집 근처 시냇가에서 놀던 기억도 났다. 그때의 달콤함과 물장구의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과 눈을 마주치던 때도 기억했다. 남편을 닮아 동그란 얼굴에, 까만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봤다. 그때 그녀는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푸르던 청록색은 갈맷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끔뻑이고 다시 한 번 무성한 잎들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시야가 어두워진 것인지 잎들의 색이 어두워진 건지, 햇볕이 충분히 들어오지 못한 건지, 여전히 잎들은 갈맷 빛을 띠었다.

4
행운목을 키운지 17년쯤 되었을 때, 꽃이 피었다. 그녀는 행운목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심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매일 꽃대가 올라왔나 가지들의 끄트머리부터 살폈고, 흙이 마르지는 않았나 손가락으로 흙을 파보고 말랐다 싶으면 물을 줬다. 잎에 분무기로 물을 흩뿌려주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거실에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주었다. 덕분에 해가 갈수록 행운목은 키가 자라고 새 가지들이 뻗어 나왔다. 새로 난 가지 끝에 난 어린잎들도 금세 자라 잎을 길게 늘어뜨렸다. 꽃대를 처음 발견했던 날, 그녀는 아들에게 꽃대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아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오며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며 투덜대면서도 꽃대를 보면서는 신기한 듯 한참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꽃대는 나무 가장 위에 있던 가지에서 나오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길게 뻗어 나와 손마디 정도마다 다발을 이룬 꽃봉오리가 져있었다. 꽃은 밤에 피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집안에서 진한 꽃향기가 났다. 하지만 꽃은 보이지 않았다. 꽃은 밤마다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아침마다 진한 향을 가득 남겨놓더니, 보름 남짓이 지나자 색을 잃고 하나둘 떨어졌다. 이내 한동안 집안을 가득 채웠던 꽃향기도 사라졌다.
생각이 그쯤 이르자, 어딘가에서 행운목 꽃향기가 희미하게 나는 것 같았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아들이 일어났나 보다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전기밥솥의 압력 추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불을 켜 약하게 조절하면서, “일찍 일어났구나” 하고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들은 화장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물에 젖은 머리칼을 털며 “응, 오늘은 좀 빨리 나가봐야 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곤 제 방으로 들어가며 귀찮게 됐다고 생각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갑작스러운 모친상을 당해 그가
동료 대신 오늘 유통되어야 하는 업체를 확인하고 물건을 싣어 보내야 했다. 그는 동료의 모친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동료의 탐탁지 않던 행동들을 떠올렸다. 동료는 회사 사람들과 말도 잘 안 섞었고, 자기 일이 끝나면 바로 퇴근해버렸다. 그래서 다른 회사 사람들과는 별
로 친하지 않았고, 그 만이 동료를 일방적으로 챙기고 말을 텄다. 그는 동료에게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회사 사람들과 잘 어울려보라고 이야기해봤지만 허사였다. 동료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했다. 그래도 성실하고 모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동료를 이해하면서도 묘한 답답함
을 느꼈다. 답답함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느낀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늘 묵묵부답이었다. 말을 하더라도 늘 짧고 느릿하게 말을 했다. 그는 그것만큼은 닮지 않겠다고 살아오는 내내 자신에게 되뇌었다. 덕분에 아버지만큼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말이 많은 사람에 비하면 그의 언변도 짧은 편이었다. 그녀는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기름의 온도가 올라가기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팬 위로 꺼내둔 계란 하나를 깨뜨렸다. 계란 옆으로 스팸 두 조각을 올려놓았다. 올려뒀던 냄비에도 가스불을 켰다. 아들은 이제 40대였고, 검은색 생머리에 여전히 둥근달걀형 얼굴에 까만 눈동자로 세상을 봤다. 얼굴은 잿빛
을 띠었는데, 시간마다 피워대는 담배 때문이었다. 그는 어딘가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서, 정장 차림보다는 면으로 된 티와 바지를 입는 것을 좋아했고, 돈을 적게 받더라도 관료적인 분위기보다는 수평적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분위기는 전해졌다. 그는 관계를 늘 열어두었고 누군가에게 매달리거나 매달리려 하지도 않았고, 어떤 요구를 받거나 요구를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방에서 나갈 채비를 마치고, 식탁으로 갔다. 어머니는 이미 식탁 위에 방금 지은 밥과 데워진 된장국, 계란 프라이와 스팸 그리고 깻잎 장아찌와 김치를 차려놓
고는 거실에서 늘어놓은 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7월 31일 전에 이사를 마쳐야 한다고 쓰여있어요.” 세 달 전,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의 통보 몇 달 전부터 이미 주변의
전셋값은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너무 골목 깊숙이 있다. 애들이 걱정이다. 집은 너무 좁고 어둡다. 그녀는 그렇게 남편에게 말했지만, 남편은 그 집을 보러 갔던 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강단 있었고, 그것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올 때에도 그랬었다. 그녀는 도심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 아무것도 없고 너무 삭막하다. 이런 곳에서 무서워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여차여차한 이유들을 늘어놓으며 고민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결과적으로 이 오래된 아파트는 지역이 발전하면서 아파트 가격은 곱절이 되었고, 재개발이 결정됨에 따라 그들은 심심치 않은 혜택을 볼 터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군소리 없이 남편의 결정에 따랐다. 이삿날은 7월 30일로 정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빠져나갔고, 그들이 이사 가며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들만 이곳저곳에 남아있었다. 동 앞에 꾸며진 작은 뜰에 심어진 사철나무 앞에는 골드스타 냉장고, 오래된 전기밥솥, 나전 칠기로 장식된 장롱의 문짝 같은 것들이 버려져있었고, 놀이터 시소 옆, 아이들이 놀던 작은 모래사장에는 쓰레기로 가득 찬 포대 자루들이 한데 모여 아이들의 키보다 큰 산을 만들었다. 그녀의 가족은 마지막 남은 몇 안되는 세대 중 하나였다. 그들이 이사를 가면 이제 아파트엔 거의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5층짜리 아파트보다 더 높이 자란 조경수들만 그 자리에서 아무도 없는 집들 바라보고 서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여기저기 놓여있던 박스들을 닫아 테이프를 붙인 뒤 한쪽으로 옮겨놓았다. 행운목이 다시 눈에 띄었다. 말라비틀어진 긴 꽃대가 보였다. 그녀는 꽃대를 가위로 잘라내려고 했었지만 가위로는 잘리지 않았다. “오늘은 좀 늦을 거예요.” 아들은 식사를 마치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세 달 전부터 만나기 시작한 여자와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볼 거라고, 속시원히 말하고싶었지만 무언가가 아직은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스스로를 억제했다. 그 여자는 키가 그의 목까지 왔고, 그보다 5살 아래였다. 늘 선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고, 작고 살짝 위로 올라간 입꼬리는 어딘가 그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그의 어머니는 알겠다며 잘 다녀오라고 대꾸해줬다. 아들이 요즘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었다. 계절은 여러 번 바뀌었고, 이제 지난 시간들은 그 자리에 두어도 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3년 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 아내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아들은 아이 둘을 데리고 아파트로 왔다. 결혼할 때 그녀가 마련해줬던 집은 전세를 주려고 부동산에 내놓았고, 가전제품들은 시댁에서 이미 모두 가져갔다고 했다. 손주들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몫이 되었다. 행운목에 꽃이 폈던 이듬해, 아들은 결혼을 했다. 세
살 어린 여자를 데려왔었다. 20대 후반이었고, 긴 밤색생머리에, 볼살이 조금 있었고, 쌍꺼풀이 있는 크고 동그란 눈에, 왼쪽 눈 아래에는 희미한 점이 하나 있었다. 생기 있고 야무져 보였다. 아들은 자기 옆에 있는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며느리의 뱃속에 이미 아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이 아이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편은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승낙했고, 그녀도 아들이 그런 식으로 급히 결혼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때를 놓치지 않고 결혼을 한 것에 만족했다.

5
매일 밤늦게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에게는 커녕 집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왔다고 하더라도 가정사는 전혀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았다. 처음에는 가정이 생긴 탓에 책임감이 무거워 겪는 잠시간의 방황인 줄 알았지만, 첫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고 둘째가 태어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자신에게도 무언가 풀어져야 할 앙금 같은 것이 쌓였고, 그래서 쓸데없는 명품을 사기 시작했고, 집 안의 잡동사니들을 늘려갔다. 언제부터인가 유방에서 멍울 같은 것이 만져졌다. 통증은 없었다. 별일 아니겠지 싶어 그냥 두었다. 신체검
사를 했는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유방암 4기였다. 며느리는 병상에서 그렇게 말했다. 며느리의 피부는 항암 치료 탓에 색을 잃어버려 검은 빛을 띠었고, 이전의 긴 생머리가 있던 자리에는 회색 털 모자가 씌어져 있었다. 며느리의 친정집에서는 딸의 병이 아들 탓이라고 이혼 소송을 내어 위자료를 청구했지만, 소송이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어쩔 수 없었더라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처음에 그 여자랑 결혼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 애가 날 좋아해 나랑 만나자고 했어요. 그래서 만났죠. 그런데 어느 날 애가 생겼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와 결혼해야 한다는 거예요. 나이도 나이였고, 그래서 결혼을 했어요. 매일같이 같은 날이 반복됐어요. 돈을 벌어야 했고, 매일같이 회사의 재고를 파악하는 일을 했고, 물건들이 유통되고 나면 새로운 것이 들어와 그 자리를 채웠어요. 매일같이 확인해도 같은 일이 나를 기다렸어요……. 집에 가도 별 것 없었죠. 아내도 아이들도 나를 보챘어요. 술 뿐이었어요. 퇴근하고 잘 아는 술집으로 가면 친한 사장이 내가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내줬어요. 때로는 친구 녀석들을 부르기도 했고, 사장이 내가 외로워 보인다고 여자를 붙여주기도 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면 답답했어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아들은 한동안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 여러 번 되풀이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듣든 말든, 누가 앞에 있든 없든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할머니, 화장실..” 하고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주가 깨 소파 앞에 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 그녀는 아이 손을 붙잡고 화장실로 가 오줌을 누도록 도와주었다. 아이는 아직 혼자 소변을 가릴 줄 몰랐다. 아이의 소변을 누이고 그녀는 남편을 깨워 아이를 좀 봐달라고 했다. 남편은 거실로 나와 아이 옆에 앉아 신문을 펼쳐들었다. 아이 손에는 이미 장난감 자동차가 쥐어져있었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다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프라이팬에 남은 계란을 깨뜨리고, 스팸을 굽고, 국도 데웠다. 그리곤 손녀딸을 깨우러 아이 방으로 가서 등을 두들겨 일으켜 세워놓고 부엌으로 가 아침상을 차렸다. 손
주 녀석은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아침을 먹었고, 남편은 아무 말없이 식탁에 앉아 밥 한 그릇을 비우곤 방으로 들어갔다. 손녀딸은 한참 뒤에야 느지막이 나와 남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먹더니 방으로 들어가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잠시 동안 분주하게 시간이 흘렀다. 손녀딸은 가방
을 메고 재빨리 나갔다. 지각을 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했다. 남편도 옷을 갈아입고 나와 손주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갔다.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분주한 시간을 보낸 집을 정돈했다. 손주의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고, 남편이 보던 신문을 접어 신문을 모아두는 곳에 가져다 놓았다. 손녀딸의 방에 가 이불을 정리하고, 이불 위에 잠옷을 개켜 올려놓았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는 잠시간 그녀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하루에 얼마 주어지지 않는 잠깐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다시 행운목을 보며, 무언가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
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직 싸야 할 이삿짐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버릴 것은 한데 모아 내다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오늘도 금방 하루가 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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