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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주의 변천 과정부터 우리의 술 문화까지

소주, 그 투명함 속에 녹아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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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리얼 푸드
출처: 리얼 푸드

우리의 친구, 초록 병! 소주는 어느새 한국사회에서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어있다. 즐겁게 해외여행을 가서 아무리 맛 좋은 맥주와 양주를 마셔댄들, 소주가 아니라면 가시지 않는 느끼함이 있다. 캐리어에 고추장과 함께 바리바리 챙겨가는 소주는 흡사 한국인에게 김치, 된장찌개에 맞먹을 정도의 국민 식량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주가 한반도에서 발생한 우리 고유의 술이 아니라면, 또한 조상들이 마시던 소주가 우리가 지금 접하는 소주와는 다른 것이라면? 과거 조상들의 소주와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소주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그 변천 과정을 지나 국민 술, 소주가 한국에서 꽃피우게 된 현장을 파헤쳐 보자.

조상들의 소주는 지금의 소주가 아니다?

흔히, 소주의 한자어에 대해 질문 받는다면 ‘불사를 소(燒)’ 자에 ‘술 주(酒)’ 자로 이루어진 소주(燒酒)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조상들의 증류식 소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이와 다른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초록색 소주 유리병의 라벨을 잘 보면 ‘희석식 소주(稀釋式 燒酎)’라고 명시되어 있고, ‘술 주(酒)’ 자를 쓰지 않고 ‘전국술 주(酎)’ 자를 사용하고 있다. 명확히 구분하자면 현재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燒酎)이고 과거 조상들이 마시던 소주는 증류식 소주(燒酒)로, 이 둘은 각자의 증류 방법에서 그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우선 조상들이 즐기던 증류식 소주는 단식증류기를 이용해 증류한 것이다. 전분이 많이 들어 있는 쌀보리, 옥수수 등의 곡류를 원료로 하여 이를 삶거나 쪄서 소화시킨 후, 곰팡이 효소를 이용한 발효과정을 거쳐 술덧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덧을 단식증류기에 넣고 한두 번 증류해 받아낸 것이 증류식 소주이다. 반면, 희석식 소주는 단식이 아닌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하며 주정(酒精)을 물에 희석시킨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주정은 술의 정수(精髓)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순수 에틸알코올을 뜻한다. 이렇게 연속식 증류기를 통해 만든 순도 95%의 에틸알코올을 물에 희석해 알코올 20%가량의 액체로 만들면 현재 우리가 접하는 희석식 소주가 된다.

출처: 네이버 포스트
출처: 네이버 포스트

소주의 한국 도입과 그 변천

그렇다면 현재의 소주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증류식 소주가 한반도에 도입되었던 사연부터 살펴보자. 몽골의 칭기즈칸(成吉思汗, 1167-1227)은 서역원정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며 소주의 기원인 아라비아의 ‘아라크(arak)’를 접하게 되어 이를 동방으로 전파하게 된다. 13세기 몽골제국 쿠빌라이 칸(Хубилай хаан, 1215-1274) 시대에, 몽골군은 일본 정벌을 위해 한반도에 주둔하게 되었고, 당시 몽골군들은 허리에 ‘아락주(소주)’를 넣은 가죽 부대를 차고 다니곤 했다. 당시의 아락주, 즉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 쉽게 상하지 않고, 몸의 온도를 높여주는 기능을 했기 때문에 유목민족이던 몽골족에게는 제격인 식량이었던 것이다. 이들을 계기로 소주는 한반도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당시 증류식 소주는 귀한 곡식을 원료로 했기 때문에 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고려 말에 이어 조선까지 고가의 사치품으로 전해내려오던 소주는, 일제강점기 이후 제조법의 급진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19년 평양을 시작으로 인천, 부산 등에 알코올 기계 소주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1920년부터 일본의 양조기술이 보급되면서 쌀, 보리, 수수, 조 등으로 술덧을 발효시키는 ‘흑국소주’가 등장하였다. 이로 인해 점차 귀한 곡식을 원료로 하던 증류식 순곡주는 사라져갔고, 이후 1965년에는 식량 확보를 위한 정부의 식량정책, 양곡관리법의 시행에 따라 곡식이 아닌 고구마, 당밀, 타피오카 등 값싼 원료를 사용하는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게 된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대한민국의 ‘음주 의례’

남북분단 직후, 정부는 전쟁 상황 등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식품 사업을 유사시 방위산업으로 전환하는 ‘전시 임무고지 생산품목’을 지정했다. 이때 소주 또한 이 품목에 지정되어 소주 업체는 소주 생산량의 일정량을 국가에 공급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이 전쟁 시에도 우리의 곁을 지킬 식량으로 손꼽힌 소주는, 값싼 원료의 희석식 소주로 변모하며 저렴한 가격의 친근한 국민주류로 서민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 소주업계에서는 알코올의 도수를 낮추고 향과 맛을 가미한 소주를 선보이며 젊은 층, 여성층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에 현재 한국의 소주는 모든 연령층과 성별을 아우르는 ‘국민 술’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소주의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소비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은 분명 소주를 한국의 대표 주류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소주가 이렇게 ‘국민 술’로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게 된 것은 소주의 독자적 공로라고 할 수만은 없다. 이와 더불어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기존의 ‘술 문화’ 또한 존재하는데 이 문화적 뿌리가 소주를 이토록 성장할 수 있게 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주가 대표하는 우리 술 문화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렇게 말한다. “술은 입을 경쾌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을 털어놓게 한다.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다.” 우리는 피로를 풀거나 위로를 원할 때, 혹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이유로 소주를 마신다. 고된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의 피로를 씻는 ‘한 잔’, 친구들과 신변잡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마시는 ‘한 잔’, 딱딱한 관계의 사람들끼리 긴장을 풀기 위해 마시는 ‘한 잔’, 또한 왁자지껄하게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한 잔’. 한국에서 음주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음식 섭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나 서양에 비해 조직 내의 집단성과 조직 구성원의 통합·소통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음주는 마치 사회적 의례와도 같이 느껴진다. 조직, 집단 내의 화합도모를 위해, 사람 간의 심리적 배타심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동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술로 일종의 장(場)을 만든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회사의 ‘회식’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회식의 주된 목적은 사내 집단성의 고취와 집단내의 소통 증대이다. 이런 목표들에 있어, 사람의 감정을 이완시키고 경계심을 완화시키는 교류의 촉매제로서 작용하는 술은 회식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술의 기능을 목적으로 한 술자리 회식은 한국 사회 내에서 많은 진화와 변색을 겪어왔고, 그 결과 ‘술’이라는 요소는 한국의 회식 문화가 악명 높은 이유 중 하나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직장인들이 술자리 회식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앞서 말한 회식의 이상적 목표와는 괴리가 있다. 고용노동부 취업포탈 워크넷의 직장인 3,3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는, ‘가장 피하게 되는 회식’이라는 조항에서, ‘음주가 주가 되는 술자리 회식’이라는 선지의 답변이 69.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동시에, ‘현재 직장에서 어떤 회식을 주로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또한 ‘음주 위주의 술자리 회식’이라는 동일한 선지가 67.32%의 득표를 얻으며 또다시 압도적인 1위를 했다. 이렇게 회식자리가 술자리와 동일시되고, 그와 관련한 구성원들의 반감은 회식 자체의 개념에 결부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은 회식의 반강제성과 맹목성을 바탕으로 파생된 한국 술 문화의 안타까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술인 소주의 명칭과 한국사회 내에서의 그 변천사, 한국사회 공동체 속 술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쁠 때든 슬플 때든, 한 잔 깔끔하게 털어 마실 그 밤까지, 그 소주 한 잔이 점점 더 맛있어질 때까지, 우리는 고된 피로를 쌓고 일상을 반복한다. 오늘 밤은 초록색 병에 회오리를 만들어 볼까나.

 

<참고 문헌>

문지현, 「소주, 소통과 일탈의 즐거움」,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박재환, 『술의 사회학』, 한울, 1999.

김지룡/갈릴레오SNC, 『사물의 민낯』,애플북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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