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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누아르의 시작과 확장, 부흥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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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필름 누아르’는 ‘검은 영화’라는 뜻으로 특정한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 전반에 어두운 분위기를 차용한 장르를 지칭한다. 필름 누아르는 주로 명암의 대조를 강조하는 조명과 실루엣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며, 특히 ‘홍콩 누아르’는 이러한 장르적 특성과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1980년대의 허무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되어 탄생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화려한 도시, 그리고 그러한 도시와 대조되는 무기력하고 그늘진 홍콩인들의 삶을 조명했던 홍콩 누아르는 영화계에서의 강렬한 인상과 함께 현재까지도 홍콩 영화의 대표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홍콩 누아르의 효시’라고 불리는 <성항기병(Long Arm Of The Law)>(1984)은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홍콩 자본주의 체제로 도망쳐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공과 욕망의 환상을 품고 도망쳐온 이들에게 홍콩은 물질적인 쾌락의 땅이지만 이들의 욕망이 억제되는 현실과 대비되어 무기력한 인간 군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오히려 중국 내륙이라는 ‘출신적 한계’에 가로막힌 ‘그들’의 삶이 ‘수저 담론’으로 침체된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성항기병>의 문제의식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심도 깊은 사회적 문제의식이 녹아든 <성항기병>은 이후 홍콩 누아르 장르에 여러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홍콩 누아르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추앙받는 <영웅본색(A Better Tomorrow)>(1986)은 당시 홍콩영화의 주류를 이루던 무협영화의 강호(?豪)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그것의 ‘의리’와 ‘멋’을 누아르 장르에 재현했다. 이 때문에 <영웅본색>에서는 쌍권총을 들고 다수의 적을 제압하는 등 비현실적인 액션들이 자주 등장하며 이는 이후 홍콩 누아르의 장르적인 관습으로 남았다. 또한 <영웅본색>은 이러한 요소에만 치중하지 않고 본래의 삶을 버리고 홍콩에서 새롭게 살아가려는 ‘송자호’와 홍콩을 떠나려는 ‘마크’의 모습을 통해 홍콩의 반환을 앞두고 잔류했던 홍콩인들과 제3국으로 떠난 홍콩인들의 모습을 투영시키면서 당대 홍콩 반환 직전의 홍콩인들의 불안 심리를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영웅본색>의 성공은 홍콩 누아르 영화를 홍콩 영화계의 중심으로 급부상시켰지만, 이후의 홍콩 누아르 영화계는 <영웅본색>과 비슷한 플롯과 인물들이 등장하는 아류작들로 점철되었다. 이로 인해 홍콩 반환 이후 홍콩 누아르는 장르적 생명을 상실하고 <무간도(Infernal Affairs)>(2002)가 나오기 전까지 10여년 가까이 외면당해왔다. <무간도>는 이전까지의 홍콩 누아르적 관습들을 부정하고 절제된 연출과 미장센을 이용해 정통 필름누아르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무간도>에서는 홍콩반환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 심리를 다루지 않고, 대신 경찰과 폭력조직 사이에서 위장한 인물들의 ‘무간지옥(無間地獄)’과도 같은 심리적 고통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이러한 <무간도>의 콘셉트는 할리우드의 <디파티드(The Departed)>(2006)와 우리나라의 <신세계>(2012)에 차용되기도 하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단 몇 십 개의 장르들로 분류되며 각 장르마다 플롯과 등장인물, 촬영 기법과 소재 등에서 특징적 요소들이 무언의 관습처럼 반복된다. 이로 인해 클리셰와 오마주, 표절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있을 장르 영화들은, 그럼에도 각각의 주제와 철학을 표방하며 영화적 관습들의 지속적인 확장과 전환을 통해 생존한다. 이처럼 홍콩 누아르는 <성항기병>과 <영웅본색>이 남긴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형식에 <무간도>의 변용을 통해 부흥했으며, 홍콩이라는 지역적 특색과 역사를 이용한 새로운 누아르 장르라는 점에서 영화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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