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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권력: 펜트하우스는 왜 비싼가?(1)펜트하우스와 펜옵티콘
  •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7.11.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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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국내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가장 비싼 아파트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갤러리아 포레로 조사됐다. 건물 면적이 271㎡(82평)에 이르는 아파트 실거래 금액이 54억9913만원으로 평당(3.3㎡) 6700만원에 달했다. 갤러리아포레는 성수동 서울숲 바로 앞에 있는 45층짜리 아파트다. 아마도 이 아파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최상층의 펜트하우스일 것이다. 펜트 하우스가 비싼 이유는 주변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이유 뿐 아니다. 펜트 하우스는 부자들이 파워를 가진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공간 형태다.

'공간은 권력을 만들어낸다'라는 명제를 팬옵티콘(Panopticon)처럼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팬옵티콘'이라는 단어를 분석해보면, 전체를 뜻하는 'pan'과 바라본다는 뜻의 'opticon'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로서 번역하면 '모두 본다'라는 뜻이 된다. 건축가가 아닌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르미 벤담'(Jeremy Bentham)이 1791년 죄수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할 목적으로 설계하였다. 설계된 당시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5년 프랑스의 철학자 '미쉘 푸코'(Michel Foucault)가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에서 이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는 계속해서 감시를 당한 다는 점에서 팬옵티콘의 디자인과 우리가 사는 사회구조가 비슷하다고 이야기 하면서 유명해진 계획안이다.

 

감옥과 파리의 도로망

팬옵티콘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정말 섬뜩하다. 평면의 구성은 단순하다. 원형평면의 중심에 감시탑을 설치해 놓고 약간 거리를 두고 주변으로 빙 둘러서 죄수들의 방이 배치되어있다. 이때 감시탑의 내부는 어둡게 되어있고 죄수들의 방은 밝아서 간수들은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반대로 간수를 바라볼 수가 없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제 부터다. 처음에는 간수가 죄수를 감시하면서 죄수가 잘못했을 때 몇 번의 처벌을 가한다. 그렇게 수차례의 처벌이 있게 되면 실제로 간수가 자리에 없을 때조차도 죄수들은 어두운 탑속에 숨어있는 간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공포감에 의해서 죄수들은 자신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감시탑에 간수가 없어도 죄수들은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이쯤 되면 죄수를 감시하는 것이 간수가 아니라 팬옵티콘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디자인된 도시가 우리가 좋아하는 '파리'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있은 후에 정부는 시민들이 봉기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권력이 전복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이후 19세기에 파리를 재개발 할 때에 시민을 통제하기 쉬운 공간구조로 파리를 재구성하게 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파리를 방사형의 도로망으로 만들어서 모든 길들은 주요 간선도로로 연결되고 그 도로는 다시 개선문광장을 향해서 방사형으로 모이게 되어있다. 만약에 시민들이 봉기를 해서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간선도로로 모이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개선문 광장에 대포 몇 개만 설치해 놓아도 간단하게 모든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도시 디자인덕분에 아주 적은 수의 군대로 큰 무리의 사람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방사형 도시구조는 방사상의 중심점에 서 있느냐, 반대로 주변부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권력을 차등적으로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그리드형 도로망은 모든 코너가 동일한 권력의 위계를 주기 때문에 방사형 도시구조에 비해서 평등한 민주적인 공간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로 방사형을 선호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체험하는 사람이 어느 한곳에만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형태가 다양한 공간의 체험을 하는 것이 좋아서일 것이다. 그 외에도 권력의 구조상으로도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심리적으로도 다양한 체험을 하기 때문에 방사형을 더 선호한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그리드로 되어있는 도시 속에서는 어느 코너를 가던지 공간의 권력 위계상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이 그리드로 되어있는 도시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뉴욕 같은 경우에는 이 같은 그리드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브로드웨이가 디자인 되어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공공간은 그리드와 대각선이 만나는 결절점 부분에 위치해 있다.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팬옵티콘과 파리의 도시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떠한 공간 디자인은 서 있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권력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아파트 단지에서 건너편 동을 바라보는 경우가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되면 아파트 동간이 가까운 단지라면 자연스럽게 건너편의 동에 있는 집의 거실이나 침실의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이때 한층이라도 높은 층의 사람이 그 보다 낮은 층의 사람을 바라보기가 쉽고, 반대로 낮은 층의 사람들은 자신들 보다 높은 층의 집들은 잘 볼 수 가 없다. 보는 것과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높은 층에 사는 사람이 더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변경관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고 본인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파워를 가진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구조를 확실히 보여주는 주거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재력으로 펜트하우스 공간이 가진 권력을 사는 것이다. 볼 수 있는 사람은 파워를 가지게 되고, 보지 못하고 보이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받는 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듯 남이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다른 말로 관음증 혹은 보이어리즘(Voyeurism)이라고 하는데, 관음증하면 보통 변태성욕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지만 실상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이 같은 보이어리즘이 넘쳐난다. 예를 들자면 극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은 어두운 곳에서 화면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활과 이야기를 훔쳐보는 것이다. 연극 같은 경우는 관객이 있는 줄 알면서도 배우들은 없는 '척'하면서 연기를 한다. 배우가 관객에게 돈을 받고 일정 시간동안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인터넷에서 극치에 달한다. 웹서핑을 하고, 다른 사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익명으로 리플을 다는 행위는 보이어리즘이 팽배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때로는 악플로 개인이나 사회에 대해서 밴덜리즘(vandalism)을 하기도 한다. 역사 이래 어느 때 보다도 보이어리즘이 넘쳐나는 이 사회는, 그 만큼 역사상 유래 없이 보통사람들이 이전에는 없었던 권력을 만들고 공유하는 풍요로운 사회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푸코의 말대로 감시를 받는 사회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둘 다 맞는 말일까?

(다음 호에서 이어집니다.)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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