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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꼰대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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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꼰대다. 어느덧 기자 생활 3년 차, 신문사에서 기자는 현재 ‘꼰대’를 담당하고 있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홍대 앞 거리가 아닌 그 누구도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 의문의 건물 S동의 기자실로 향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우산의 대용품일지도 모르는 종이 한 장을 지켜내고자 일주일 내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공강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종강은 학기의 끝보다는 지독한 방학 중 일정의 시작으로 통했다. 3년이라는 시간, 소위 짬이 차버린 기자는 현재 신문사에서 필수불가결한 꼰대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3년 중 근 2년을 꼰대로 근무 중인 기자는 이제 이 직함을 기분 나빠하기에도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풋풋한 수습이었던 기자의 태생을 목격하지 못한 후배기자들은 아마 기자를 천생 꼰대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기자 또한 누군가의 후배기자로 신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현재 기자의 위치에는 다른 선배기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종종 현재의 기자와 같은 꼰대 역할을 수행하고는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에게 이러한 꼰대들의 말은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정보였고, 동기기자들 사이에서는 마치 이것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인 마냥 오르내렸다. 고작 1년 차이이지만 이들의 말이 아직도 기자의 행동에 근거가 되며,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꼰대 역의 선배기자들이 항상 달가웠던 것만은 아니다. 신문사 내부에서 1년이란 상당한 경험과 내공을 의미할지 모르나, 대외적으로 1년의 차이는 큰 존경심을 낳기 어려운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차이는 기자 또한 선배의 위치에 데려다 놓았다. 기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기자는 어느새 항상 달갑지만은 않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처음 후배기자들의 얼굴을 마주하던 날이 떠오른다. 1년 전 기자의 모습 같아 마냥 좋았으며, 뭐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저 좋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간 기자는 그 자리의 기자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비단 기자 자신이기에 겪는 일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기자가 그간 겪었던 어려움을 삭감시켜주지는 못한다. 후배와 선배 모두 각자의 역할이 처음이라 미숙했으며, 출발을 달리한 숙명적인 차이는 그 이해의 간극을 좁힐 수 없게 만드는 듯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엄연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바 명백하지만, 이 ‘다름’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냉철한 듯 대하지만 우리 모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인간인지라 서로의 말들에 필히 울고 웃었을 것이다. 딱딱한 글을 가지고 얘기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철저히 인간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자라는 것이 글만을 만들어내고 수정하는 형식적인 일만은 아닌 것이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간다. 근 2년간 꼰대 역을 맡아온 선배기자들은 하나둘 꿰차고 있던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기자라는 직함과 함께 꼰대의 역할 또한 벗어버릴 때가 왔다. 나름의 책임감과 중압감에 휩싸여 꼰대를 자처한 기자는 드디어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릴 때가 왔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걱정을 지우기가 힘들다. 홍대신문이라는 지면에 남기는 마지막 글로서 3년간의 기자생활을 반추하고 스스로의 다짐을 새기기보다 앞으로 그대들이 마주할 역할과 그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기자는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임이 확실하다. 아마 이 필연적 꼰대는 신문사를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신문을 지켜보며 잠재적 꼰대로 남아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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