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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입과 코를 즐겁게 한 작은 잎

향신료(香辛料), 독특한 맛과 향으로 세계를 뒤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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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음식은? 많은 사람이 김치를 떠올릴 것이다. 그중에서도 빨간 고춧가루가 들어간 배추김치. 그러나 고려시대,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김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김치와는 색부터 다르다. 하얗고 맵지 않은 김치에서 지금의 빨갛고 매운 김치가 탄생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들어온 고추 때문이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자라고 나는 고추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후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고, 포르투갈 상인을 거쳐 일본을 통해 조선에도 유입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매운 음식을 내는 주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고추는 가지과에 속하는 풀 종류인데, 이처럼 식물의 열매나 씨앗에서 나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는 것을 향신료라고 한다. 향신료는 그 독특한 맛과 향으로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으나, 재배 조건이 까다로워, 특정 지역 사람들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맛과 향을 알아버린 사람들은 향신료를 포기하는 대신, 이를 얻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엉뚱하게도 세계사를 변화하게 한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자! 이제 향신료에 대한 인류의 관심사(史)를 들여다보자.

인류의 향신료 사용사(史)

인류의 향신료 사용은 선사시대부터 그 흔적이 발견되는데,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수메르인의 점토판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계피, 허브 등의 향신료를 사용했는데, 무엇보다 향신료의 독특한 향을 제의용으로 활용하곤 했다. 또한, 이집트인은 미라를 만들기 위해 향신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까지 향신료는 주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만 났기 때문에 유럽 지역에서는 향신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당시 로마에서 작은 병 하나에 든 향신료가 노예 한 명의 값이었으니, 향신료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향신료 중에서도 특히 후추(Pepper)의 매력의 빠졌는데, 쌉싸름하면서 뒤에는 단맛을 내는 이 작은 알갱이는 당시 귀족 음식에 빠짐없이 들어가곤 했다. 한편, 유럽의 향신료 부족 현상은 동·서양의 무역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중국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뿐만 아니라 인도양을 따라 로마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길은 ‘스파이스 로드(Spice Road)’, 즉 향신료 길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시 향신료 거래가 얼마만큼 활발했는지 알려준다. 인류의 향신료에 대한 열망은 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되는데, 당시 무역 중계를 독점하던 페르시아인에게 반발한 서로마가 향신료 무역 독점과 성지 정복을 빌미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데에서 알 수 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에는 후추, 육두구(Nutmeg) 등의 향신료가 다량 유입되며 그들의 식문화는 점차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향신료에 대한 열망은 단순히 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향신료가 돈인 사회에서 향신료를 얼마나 사용하느냐는 그들의 지위를 가늠하는 척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축제 요리법을 살펴보면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향신료가 첨가되어 있었다.

향신료, 세계를 잇다

중세를 지나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등 서유럽 국가는 당시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던 페르시아인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상인에 반발하여, 직접 향신료의 원산지인 인도를 찾기 위해 항해를 떠난다. 당시 유럽인들은 동양을 신비의 나라이자 부유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도를 찾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지나 인도로 향했고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인도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그들은 인도의 향신료를 얻지 못하는 대신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나는 또 다른 향신료를 얻게 되는데, 바로 톡 쏘는 매운맛이 일품인 고추(Chili pepper)였다. 이는 훗날 동아시아로 번져나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처럼 그들은 우연찮게 신대륙을 발견한 덕분에 새로운 향신료와 각종 무역 이익을 얻게 된다. 이후 무역의 중심지가 이탈리아와 페르시아에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서유럽으로 옮겨지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 삼아 인도, 중국에서 생산되는 향신료를 심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이는 서유럽 각국의 식민지 쟁탈로 이어지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 열강의 시대가 도래하며, 식민지 지배를 통한 자본주의 국가 형성의 계기로 이어진다. 한편, 신대륙 발견 덕분에 17세기 유럽에서는 향신료 공급이 증가했고, 자신의 재력을 뽐내기 위해 사용되었던 향신료가 서민들에게도 유입되면서 더욱 다양하게 향신료를 활용하게 된다. 그 이전까지 약재로 쓰였던 향신료는 요리의 재료로 쓰이게 되며 유럽의 식문화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각종 향신료를 혼합하기 시작하는데, 기존 자연에서 재배되었던 향신료의 향과 맛을 뛰어넘는 색다른 향신료가 등장하게 된다. 또한, 최근에는 향신료의 향을 이용하여 화장품을 개발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향신료는 그 활용의 변이를 통해 전 세계인의 코와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한국의 향신료 문화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향신료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티면 사람이 된다는 단군신화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의 향신료 사용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원을 갖는다. 다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문헌에는 향신료를 썼다는 기록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향신료가 많이 나는 중국과 인접해있던 한국은 비교적 일찍이 향신료를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사람들은 향신료를 물료(物料)나 요물(料物)이라고 부르곤 했다. 조선시대 조리서 중 가장 오래된 『산가요록(山家要錄)』을 보면 후추, 생강, 마늘, 파 등이 꿩고기와 소고기를 만들 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향신료는 음식뿐만 아니라 약재로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동의보감』에서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체한 것을 낫게 하기 위해 후추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의 향신료 문화는 앞서 본 다른 나라의 문화와 같이 식재료와 약재로 모두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현재 우리 식문화의 주재료로 사용되는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 유입되면서 음식에 향신료를 많이 첨가하게 된다. 한편, 고추, 마늘과 같이 맵고 자극적인 향신료가 자주 사용되면서 그 이전까지 슴슴하고 담백한 우리 식문화를 바꿨다는 비판이 있지만, 향신료가 한국의 식문화를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향신료의 원산지인 중국, 인도 음식이 한국에서 많이 소개되며 고수, 강황, 계피 등의 향신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제, 집에 있는 향신료를 살펴보자. 후추, 고춧가루, 마늘…. 작은 잎이나 알갱이에서 나는 맛과 향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사로잡았다. 이제는 향신료 없는 음식을 상상하기 어렵다. 고추가 없었다면, 김치는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즐겨먹는 음식이었을까. 또 우리가 고기나 스프 의 간을 위해 찬장에 늘 구비해두고 있는 후추가 고대 로마인들에게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귀한 재료였다면 믿겠는가. 그리고 이 작은 잎들이 세상의 판도를 바꿨다면 믿겠는가. 향신료. 그 안에 담겨 있는 인류의 관심은 지대했고, 지금까지도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

 

참고문헌

정한진, 『향신료 이야기 달콤한 미각의 역사』, 살림, 2006.

프레드 차라, 강경이 역, 『향신료의 지구사』, 휴머니스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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