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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수많은 처음, 수많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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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인생의 여정 앞에 우리에겐 수많은 ‘처음’이 주어진다. 처음은 언제나 걱정이 앞서고, 두렵기 마련이다. 그러나 떨림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다. 입학 첫날의 두근거림을 기억하는가? 아직은 쌀쌀하고 공기마저 들뜨는 3월, 갓 성인이 된 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에 나가 바라본 세상은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새롭다. 첫 술자리, 첫 조별 과제, 처음으로 가보는 MT와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첫사랑. 정신없이 흘러가다 어느샌가 끝나버린 새내기 시절은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8), <브루클린(Brooklyn)>(2016), <보이후드(Boyhood)>(2014)를 통해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처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1983년 여름 북부 이탈리아, 17살의 ‘엘리오’가 지내고 있는 가족 별장에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올리버’가 찾아온다. 올리버에게 계속 시선이 머무는 엘리오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며 올리버를 향한 태도가 자꾸만 삐딱해진다. 올리버가 어깨를 풀어준다며 주무르자 몸을 틀며 벗어나 버리고, 올리버가 피아노 연주를 청하자 짓궂게 장난을 치기도 한다. 여러 사건을 거치며 엘리오는 자신이 올리버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고 올리버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지만, 올리버는 엘리오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올리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엘리오에게 자신은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엘리오를 피해버린다. 결국 깊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이 같음을 확인한 올리버와 엘리오의 관계는 진전된다. 하지만 올리버는 다시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부모님의 배려로 이별 여행을 마치고 온 엘리오는 처음으로 상실감과 슬픔을 겪게 되고, 엘리오의 아버지는 그러한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느끼라고 알려준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에 엘리오의 집에 올리버의 전화가 걸려 온다. 올리버는 자신의 결혼 소식을 엘리오에게 알리지만, 여름날의 추억은 모두 잊지 않았다며 얘기한다. 전화를 끊고 엘리오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잊고 있던 감정들에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여름날 사춘기 소년의 사랑에 빠진 감정을 섬세하고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처음 느껴보는 자신의 감정에 자꾸만 어색해지고, 상대의 눈에 띄고 싶어 괜히 바보처럼 행동했다가 후회하는 어린 날의 행동 하나하나가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엘리오는 단순히 좋음을 넘어 새롭게 느끼는 사랑, 그리고 동성에게서 느껴지는 이 사랑이 과연 맞는 일인가 계속해서 자신을 의심하고 망설인다. 그럼에도 올리버를 향한 감정이 더욱 커서 주체할 수 없게 된다. 평생에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낸 엘리오는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여름을 맞이할 어른이 됐다. 한 소년의 진심은 영원히 가슴속에 애틋한 추억으로 남겨둘 어리숙했던 우리들의 첫사랑을 떠오르게 한다.

 

새로운 기회, 새로운 인생, 새로운 고향을 찾아서.

 

아일랜드는 경기 침체로 인해 취업하기도 어렵고 살기도 힘들다. ‘에일리스’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동네 상점의 직원으로 일하며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똑똑한 청년이다. 언니의 주선으로 에일리스는 교회의 후원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에일리스는 새로운 삶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한다. 향수병에 의욕 없는 삶을 살던 에일리스에게 ‘토니’라는 사랑이 찾아온다. 토니는 에일리스에게 힘이 돼주고,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그러던 중 언니의 부고 소식을 담은 편지를 받은 에일리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에일리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토니는 에일리스에게 청혼하고, 둘만의 결혼식을 마친 에일리스는 아일랜드로 떠난다. 고향으로 돌아와 긴 시간을 보낸 에일리스는 평안한 아일랜드의 삶과 아일랜드에서 만난 새로운 사랑에 미국으로의 귀환을 고민한다. 그러나 결국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며, 브루클린을 자신의 새로운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낯선 이국땅에서 향수병을 겪으며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보이는 어리숙한 에일리스의 모습은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학창 시절 학년이 바뀔 때, 갓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에 가기 위해 상경했을 때, 취업에 성공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처럼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는 평범한 누구나의 이야기를 담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민을 선택하며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모습은 에일리스가 살던 50년대의 아일랜드나 현재의 한국이나 똑같다. 낯선 땅 브루클린은 새로운 기회가 열려있는 곳이며, 그런 브루클린으로 떠난 에일리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의 첫 인생 영화

 

텍사스에 사는 ‘메이슨’은 부모님의 이혼 후 누나 ‘사만다’와 엄마 이렇게 셋이 살고 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사만다와 메이슨을 놀아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엄마는 더 나은 생활을 좇아 휴스턴의 대학에 다닐 생각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사만다와 달리 메이슨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메이슨은 우연히 엄마를 따라온 대학에서 엄마와 대학교수 ‘빌’의 교제 현장을 목격한다. 엄마는 빌과 재혼하지만 얼마 안 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 폭력성을 드러내는 빌에게서 도망친다.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어려웠지만, 엄마는 바라던 대학교수가 되어 생활이 나아지고 메이슨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어느새 청소년이 된 메이슨은 여자친구도 사귀고 점차 진로의 방향을 고민한다. 엄마는 퇴역 군인과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자 알코올 중독에 빠진 세 번째 남편과도 이혼하게 된다. 그사이 친아버지는 재혼해 자식을 낳았고, 사만다는 대학에 들어갔다. 메이슨도 사진 쪽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한다. 메이슨은 고등학교에서 만나 진지하게 교제한 ‘시나’와 대학 입학을 앞두고 헤어진다. 졸업식 날 메이슨은 모두와 오랜만에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또 아버지와 그간의 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메이슨은 집을 떠나 대학으로 향한다. 메이슨은 대학 친구들과 하이킹 여행을 떠난다. 언덕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다 지금 이 순간을 잡으라는 친구의 말에 이 순간이 우리를 잡는다는 메이슨의 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지나 보면 짧게만 느껴지는 12년 동안 이들은 늘 새로운 사건과 낯선 환경을 마주한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잦은 이사와 전학, 대학과 꿈을 향해 정든 고향을 떠남으로써 메이슨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한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렇게 우리의 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일상이다. 지금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가족들과 무심코 나눈 대화가, 아주 작은 추억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렇기에 당신의 처음을, 새로운 시작을 소중히 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처음은 언제나 두렵기 마련이다. 누구나 시작은 어렵고, 실수투성이인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처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한 단계 성장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어른이 될 나를 그리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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