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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zip=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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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젯거리인 인물, 패션, 디자인, 색깔이 궁금하다면 서점의 잡지 판매대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표지를 주목하길 바란다. 잡지의 표지 디자인은 곧 잡지의 특징이자 유행을 말해준다. 표지는 판매대에 깔린 수많은 잡지 중 독자의 눈에 띄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잡지’라 하면 떠올리는 패션 잡지인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마리끌레르(Marie Claire)》, 《엘르(ELLE)》 외에도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잡지가 존재한다. 국어사전에서 잡지는 신문 이외의 정기 간행물을 뜻한다. 본래 창고를 의미하던 ‘매거진(Magazine)’은 네덜란드어 ‘Magazien’에서 탄생했다. 최초의 정기간행물이자 잡지는 1731년 영국의 에드워드 케이브(Edward Cave, 1691~1754)가 발행한 《Gentleman’s Magazine》으로 지식인에게 정보와 오락을 책으로 묶어 제공하며 신문과 구별되는 잡지의 성격을 정립했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마주한 잡지

▲『보그 코리아(VOGUE KOREA)』/출처:디스패치
▲『보그 코리아(VOGUE KOREA)』/출처:디스패치

 

잡지는 우리 역사 속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1896년 11월 30일 국내에서 최초로 발행된 『대조선독립협회 회보』,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등이 잇달아 창간되며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잡지가 등장했다. 이어 1908년 11월 최남선이 『소년』을 창간함으로써 본격적인 종합잡지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의 잡지 발달과 변천은 크게 해방 전과 해방 후로 구분할 수 있다. 해방 전인 1896년부터 1910년에는 주로 협회와 학회라는 이름의 민간 단체와 종교단체에서 문명개화를 향한 새로운 사조와 문물을 소개하는 형태의 잡지를 간행하며 계몽과 개화의 역할을 담당했다. 근대 계몽기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는 통로였던 ‘학회지’가 이에 해당한다. 1905년 이후 출신 지역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학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술잡지가 등장했고, 신문과 구별되는 담론장을 형성했다. 을사늑약 이후 국권 피탈 직전의 통감부 시대인 1907년 공포된 「신문지법」과 1909년 공포된 「출판법」이라는 언론 검열의 악법은 식민지 시기 한국근대언론의 변곡점이 됐다. 해당 법이 공포된 시기에 대부분의 신문과 잡지가 일제에 의해 폐간됐다. 이런 탄압 상황에서 창간된 잡지들은 대부분이 정치색을 삭제당한 종교 잡지였다. 1919년 3·1 운동은 일제의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꿔놓는 큰 역할을 했다. 이때 『개벽』 창간을 시작으로 식민지 시대 중 가장 활발하고 다양한 잡지 발간이 이뤄졌다. 이는 사회주의와 같은 정치적 시사 분야 문제부터 유흥과 오락 등 근대 잡지의 다양성과 깊이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일제의 검열이라는 제도적 한계에도 굴하지 않고 한글이라는 피식민 언어를 통해 정기간행물을 발간한 것은 세계 언론사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인 1945년부터 1960년대는 ‘잡지 르네상스기’로 불릴 정도로 잡지 문화가 매우 발달한다. 정론, 교양지, 오락지, 문예지 등 다양한 형태로 발행됐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는 잡지가 본격적으로 다양화·전문화됐으며, 전문적인 잡지 경영인들이 등장하며 특색 있는 정기간행물이 탄생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는 잡지 자유화 시기이다. 언론 자율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2000년도 말에는 6,000여 종에 이르는 잡지가 쏟아져 나올 만큼 시장의 규모가 매우 커졌다. 21세기는 온·오프라인 잡지 공생 시기로 대중은 자신의 취미, 기호에 맞는 잡지를 직접,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대중이 있기에 존재해 온 잡지

▲ 잡지 『대조선독립협회 회보』/ 출처: 책 『의열투쟁의 선구자 전명운』
▲ 잡지 『대조선독립협회 회보』/ 출처: 책 『의열투쟁의 선구자 전명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잡지는 외적 특성과 내적 특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외적 특성으로는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같은 제목하에 발행된다는 정기성과 여러 읽을거리를 게재하는 내용의 다양성, 책과 같이 꿰매어놓은 제책성을 들 수 있다. 내적 특성으로는 기능상 신문이나 방송에 비해 장기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장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오락 면에서 신문보다 다양한 기사를 통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있다. 근대식 잡지의 출현은 ‘앎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신호탄으로, 한국 교양의 역사이자 지식을 통한 사회개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잡지마다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주된 내용은 계몽적이었다. 1920~30년대 민중은 지식과 교양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았고, 재밌는 읽을거리를 갈망했다. 이 시기에는 인간의 삶 전반의 모든 형상을 다루는 ‘망라주의’가 잡지의 이념이 되고, 문화를 이어주는 활로가 됐다. 50년대까지 잡지는 각자 독특한 색깔을 유지하며 특정 독자층을 공략했다. 즉, 당시에 잡지는 인터넷을 대신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다양해진 잡지는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needs)를 충족시켰고 대중은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잡지의 오늘

▲『월간사진』 23년도 3월호/ 출처: 월간사진
▲『월간사진』 23년도 3월호/ 출처: 월간사진

 

오늘날 각 분야를 대표해 깊고 유익한 정보가 담겨있는 잡지들에 대해 알아보자. 건축 분야 잡지로는 『SPACE(스페이스)』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잡지로서 1966년 11월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창간했다. 처음엔 건축, 미술, 무용, 음악을 다루는 종합 문화 예술지 『空間(공간)』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1997년 11월 영문으로 이름을 바꾸고 표지에는 현대 건축물 사진을 소개하며 건축 전문 잡지로 자리매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유명 건축물과 건축가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국내 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영화 전문 잡지로는 『씨네 21』이 있다. 창간 직후부터 영화 전문 기자들과 스타급 영화평론가의 수준 높고 신뢰감을 주는 글로 영화 팬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외 유명 감독의 심도 있는 인터뷰와 세계적인 영화제의 소식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1966년부터 발행된 『월간사진』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 전문지다. 발행 당시부터 2004년까지는 아마추어적인 사진들을 주로 실었다. 그러다 2004년부터 유명 예술사진가와 다큐멘터리 작가 작품을 소개하며 전문적인 사진 잡지가 됐다. 가족여행 전문 교양 잡지로는 『여행스케치』가 있다. 『여행스케치』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여 국내 여행지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국내 유일 월간 잡지다. 드라이브 코스, 맛집, 숙박 정보 등을 알려주며 독자 맞춤형 콘텐츠를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IT 전문 잡지 『앱스토리』이다. 최신 스마트폰 동향과 각종 기기, 어플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그동안 PC나 게임 관련 월간지는 있었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IT 기기를 다룬 잡지는 『앱스토리』가 최초이다. 또한 일체의 지면 광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중립적이고 신뢰성 있는 기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잡지의 내일

▲잡지의 디지털화/출처:더블유 코리아(W Korea)
▲잡지의 디지털화/출처:더블유 코리아(W Korea)

1950년대 후반 텔레비전의 출현으로 잡지계는 큰 위기를 맞닥뜨린다. 잡지의 역할을 훨씬 혁신적으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잡지가 극복하지 못하며 사라졌지만 그런데도 재무장하여 살아난 잡지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심각한 위기는 팬데믹과 디지털화가 덮친 현재이다. 비대면을 강제했던 코로나19 사태는 종이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가속했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미디어로 손꼽히던 잡지는 다른 미디어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점차 주목받지 못했고, 이에 따라 수익 모델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일본 출판 시장에서는 이미 전자출판물 매출이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각각의 미디어의 특징과 그 경계가 흐려지면서 잡지 사업자들도 인터넷 홈페이지는 물론 동영상과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콘텐츠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월정액제로 전자책 기반 잡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오디오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밀리의 서재’는 디지털 미디어 성공 사례로서 잡지업계가 향후 방향을 잡는데 참고할만한 사례다.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의 해외 사례로는 디지털 구독제 런칭에 성공한 미국의 《TIME》이 있다. 그리고 영국의 《모노클(Monocle)》은 종이 잡지 프리미엄 모델로 소개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굿즈 사업과 디지털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잡지 구독자 수 확대 등의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외 사례에서 나온 뉴미디어와 디지털 전환 성공사례들은 ‘전문영역을 발굴해서 그쪽의 독자 커뮤니티와 호흡하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강제로 활성화된 비대면, 재택근무, 온라인 전환 등으로 인한 파급 효과가 서서히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디지털화로 ‘잡지=책’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온라인잡지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많은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큰 발전이 생겨날 수도 있다. 무조건 코로나 이전으로의 복귀를 논하는 포스트 코로나보다는 포용과 협력으로 한층 더 발전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신문과 함께 언론의 발전을 이끌어 온 잡지가 정보와 오락 제공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고 우리 곁에 계속 함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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