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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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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달콤쌉싸름’ 코너 필자에 기자의 이름이 적히는 날이 와버렸다. 본지가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을 이름 석 자 앞에 달고 쓰는 이 칼럼은 그동안 기자가 작성했던 다른 어느 기사보다 어렵고 부담스럽다. 이건 아마 ‘홍대신문 편집국장’과 ‘달콤쌉싸름’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지금 온전히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모든 존재에겐 ‘이름’이 있다. 그것이 다른 존재가 붙여준 것이든, 스스로 부여한 것이든지 말이다. 그 이름은 저마다 의미가 있다. 이름마다 의미가 다르듯이 똑같은 이름에 대해서도 각 존재가 생각하는 의미는 다르다. 예를 들어 ‘홍대신문’이라는 이름을 기자는 ‘홍익대학교를 대표하는, 대학 사회의 언론사’라고 생각하지만, 동료 기자들이나 독자들은 다른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름이 가지는 힘은 이런 ‘의미의 차이’에서 시작한다. 

지난 2월 24일(금)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를 임명했다. 하지만 임명 소식이 보도되자마자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정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2017년 유명 자율형사립고등학교에 다니며 기숙사 같은 방을 쓰는 학생들에게 “더러우니까 꺼져라”, “좌파 빨갱이” 등의 폭언을 셀 수 없이 퍼부었다. 학교폭력위원회 조사 과정에서도 폭언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으며, 부모인 정 변호사와 아내 또한 진술서 작성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등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강제 전학 처분이 내려진 이후에도 징계처분 취소를 내려달라는 행정소송에 대해 대법원 상고까지 했다. 피해자들이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할 동안, 정 변호사의 아들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해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분노의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하루 만에 임명은 취소됐다.

비슷한 사건은 스포츠계에서도 일어났다. 이번 호 ‘시사파수꾼’에서도 다룬 야구선수 안우진의 학교폭력 가해 이력이다. 안 선수는 2017년 고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학교폭력을 저질렀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SBA)는 3년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이는 지금 부메랑이 되어 안 선수의 아시안 게임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 결격 사유로 돌아왔다. 안 선수는 의견문을 발표하고 법률대리인을 통해 당시 피해자 중 현재 군 복무 중인 1명을 제외한 3명의 진술 조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대한체육회로부터 재심 청구가 기각당한 상황에서 징계를 없앨 방법은 유효한 방법은 법원을 통한 징계 취소 가처분신청 정도다. 

이들에게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였을까? ‘친구들 사이 장난이었다’라는 정 변호사 아들의 진술처럼 한없이 가벼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이었을까. ‘선배로서의 훈계 차원에서 한 작은 행동’이라는 안 선수의 의견문처럼 불성실한 후배를 타이르려는 바람직한 선배의 모습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두 사람이 의미가 만드는 이름의 힘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미래에 부여받고자 했던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똑같은 행동에 똑같은 이름을 붙여도 각자가 느끼는 의미는 다르다. 모두가 ‘봄’이라고 부르는 지금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일 테고, 누군가는 끝을 맞이할 때가 다가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겐 단순히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겐 지옥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홍대신문 편집국장’과 ‘달콤쌉싸름’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홍대신문 편집국장’으로서 기자가 느끼는 부담감과 책임, 그리고 자긍심이 이 자리를 거쳐 갔던 선배들과는 다를 것이다. ‘달콤쌉싸름’이라는 코너명 또한 각자 생각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인 기자에게는 이번 학기 동안 10번이나 작성해야 하는 머리 아픈 기사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또 신문사의 다른 구성원들에겐 별 게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의미의 차이가 곧 이름이 가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혼자 책임감에 짓눌린 채 고뇌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너무 가볍고 간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자들이 생각하는 기사의 의미가 무엇일지, 동료 기자들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생각하는 본지의 의미가 무엇일지 계속 고민해보려 한다. 이름이 가지는 힘을 감내하면서, 그렇다고 발목 잡히진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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