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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가치 있는 과거는 다시 현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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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다시 돌아온다” 여러 매체와 상품 업계에 복고적 요소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새로운 상품이지만 과거에 유행하던 디자인을 차용하거나 일부러 오래된 느낌을 입힌 제품을 선보이는 기업도 다수다. 곳곳에서 빈티지 제품을 판매하고, ‘빈티지 감성’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이 빈티지에 열광하고있다. 빈티지는 이제 하나의 장르다. 과거의 흔적을 오늘날로 다시금 불러오며 매우 활발히 소비되고 있는 ‘빈티지’. 본 기획에서는 빈티지 의류 시장을 중점으로 하여 빈티지의 의미를 이해하는 동시에 빈티지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빈티지에 담긴 시간의 깊이만큼, 빈티지의 가치와 매력을 탐구해보자.

 

 

 

과거의 삶에서 힌트를 얻다

빈티지(Vintage)의 본래 뜻은 와인과 관련이 있다. 와인병에는 해당 와인의 재료가 된 포도를 수확한 연도가 적혀있는데, 그 연도가 바로 빈티지다. 일반적으로 고급 와인은 숙성할수록 풍미가 사는데, 빈티지 역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빈티지 제품이란 몇십 년 전 특정한 시기의 고유한 특징이 보존돼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물품을 의미한다. 주관적인 취향이나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제품별 가치는 다양하게 측정될 수 있다. 그래서 빈티지에 관심 없는 손님이 보면 그저 낡은 청바지인 것을 빈티지 마니아가 봤을 땐 “어, 이거 80년대에 단종된 모델이네!”하며 만족하고 비싼 값에 사기도 한다. 이처럼 빈티지의 경우, 몇십 년 전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있거나 지금은 단종된 브랜드 제품의 수요가 높은 편이다. 

구제와 빈티지라는 단어는 모호하게 섞여 쓰이기도 한다. 구제가 단순히 옛날에 제작된 물건을 의미한다면 빈티지는 그 의미를 포함하는 동시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더 오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낡았거나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 덕분에 빈티지의 수요가 늘어났다. 

빈티지가 주목받으면서, ‘빈티지 스타일’이 유행했다. 빈티지 스타일은 옛 제품에 영감을 얻어 새롭게 디자인한 다양한 스타일을 말한다. 그 예로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실용복 스타일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아메카지(アメカジ)’가 있다. 군복과 공장, 어선 노동자들의 옷에서 영감을 받아 현재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으며 많은 아메카지 전문 브랜드가 생겨났다. 그래니 룩(Granny Look) 역시 예로 들 수 있다. ‘할머니 패션’이라는 의미로 아가일 패턴, 두툼한 손뜨개 짜임, 퀼팅 패턴, 꽃무늬, 체크 트위드와 같은 소재, 패턴을 활용한 스타일을 일컫는다. 이런 스타일들은 대부분 과거에 입던 옷이 가진 가치를 살려 현대식으로 풀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빈티지가 사랑받는 이유

빈티지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를 추려보자면, 우선 첫 번째는 희소성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점, 즉 흔하지 않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구제 특성상 중고 의류기 때문에 똑같은 옷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소위 ‘보물찾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듯 빈티지 시장에서는 몇 없는 독특한 디자인의 상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옷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원하는 고객들은 빈티지 가게를 찾는다.

두 번째 이유는 가격이다. 구제 의류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초반에는 많은 이들이 유명 브랜드를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따라 시장을 찾았다. 버버리(Burberry) 코트, 샤넬(CHANEL) 트위드 재킷, 구찌(GUCCI) 블라우스 등 명품 옷부터, 리바이스(Levi’s) 청바지, 아디다스(Adidas) 바지까지. 기존 원가보다 몇 배는 저렴하게 유명 브랜드를 경험하려는 고객들 덕에 빈티지 시장은 주목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마니아층이 빈티지에 부여하는 ‘가치’에 있다. 특정 브랜드의 *올드스쿨 디자인에 열광하는 고객은 과거의 디자인을 찾고, 소비하여 다시 소장할 기회를 충족시킨다. 과거 특정 브랜드의 고유한 디자인을 다시 경험하고 소장할 수 있다는 재미 때문이다. 현재 이런 가치가 있는 빈티지 상품은 오히려 가격이 매우 비쌈에도 수요가 넘쳐 구하기 어렵다.

 

홍대 빈티지 세계

홍대 주변에는 빈티지 매장이 정말 많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기자는 홍대의 여러 빈티지 샵을 찾아다녔고, 총 10여 곳을 방문했다. 

▲'A' 매장 내부
▲'A' 매장 내부

그중 본교 홍문관(R동)에서 3분 거리의 ‘A’ 매장에 들어가 근무 중이던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빈티지 산타는 홍대에서 10년 넘게 운영 중인 빈티지 매장이다. 상권이 죽었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빈티지 가게들은 SNS나 온라인 사이트를 많이 활용했고, 빈티지 산타 역시 그랬다고 한다. 온라인 구매는 피팅 사진을 보고 간편하게 구매할 순 있지만, 직접 입어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매장에 방문하면 사이즈가 본인에게 맞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고, 직원분들의 추천을 받아 빈티지에 입문하기 쉽다고 했다. 덧붙여 “‘누가 버린 옷을 왜 입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세월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특별한 현상이다”라며 빈티지의 매력을 짚었다.

▲'S' 매장 내부. 트위드 자켓이 진열돼있다.
▲'S' 매장 내부. 트위드 자켓이 진열돼있다.

홍대 버스킹 거리에 위치한 ‘S’ 매장은 여성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옷들이 많았다. 트위드 재킷, 브랜드 모자와 같은 상품이 쇼룸처럼 깔끔히 정리돼있어서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매장에서 직접 커스텀한 브랜드 셔츠도 색깔별로 걸려있었다. 

좀 더 걸어가 ‘U’ 매장에 방문했다. 한쪽에 걸려있는 특별한 디자인의 옷에 눈길이 갔다. 빈티지 가게임에도 새 옷처럼 보여 여쭤보았다. 훼손이 심한 구제 의류를 입을 수 있게 수선한 후 다시 디자인해 판매하는 브랜드의 디자이너 작품이었다. 택에 적힌 ‘UTA SEOUL’을 보고 브랜드 대표에게 연락하여 브랜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UTA.SEOUL 이야기

▲ UTA.SEOUL 이정환 대표
▲ UTA.SEOUL 이정환 대표

Q. 손상된 구제 의류를 재제작하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10년 넘게 음악을 했었는데 코로나19로 크게 휘청이고, 관심 분야였던 의류 사업을 준비했다. 빈티지 의류 사업을 해보니, 구제 의류를 대량 수입해와서 보면 30% 이상 하자가 있고 하자가 있는 제품은 아무리 가치 있고 좋은 옷이어도 매장에다 그냥 걸면 계속 재고로 남아 다시 버려지는 게 마음이 쓰였다. 그즈음 함께 일하는 직원분이 타투이스트란 걸 알게 되었는데, 작품에서 느껴지는 개성을 한번 훼손된 옷에 적용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제품 하나를 수선하고 디자인해서 매장에 걸어뒀다. 그런데 그 옷이 반나절 만에 팔렸다. 또 몇 벌 걸었는데 걸리는 족족 팔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업으로 확장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브랜드를 준비하게 됐다.

 

Q.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환경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A. 사업을 준비하면서 의류 폐기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체감했다. 근데 여기서 큰 모순을 하나 느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명 브랜드들은 옛것에 매료된 사람들을 위해 새 옷에 빈티지 워싱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 문제는 그 작업에서 또 환경오염 물질이 배출된다는 것이다. 버려지는 옷들로 환경이 오염되는데 새로 만든 옷에 빈티지 느낌을 주려고 또 환경오염을 시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겠다 싶었다. 

지금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영역에서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옷들을 최대한 찾아 작업하고 있다. 얼룩이나 오염이 있으면 그 오염이 자연스러운 패턴이 되도록 디자인한다. 환경에 부담이 덜한 방법으로 직접 물감을 조색하고 그려서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작업 공간이 갖춰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한 공간에서 작업 할 수 있게 사무실을 갖춰놓았다. 

▲ UTA.SEOUL 사이트. 재제작한 옷이 판매되고 있다.
▲ UTA.SEOUL 사이트. 재제작한 옷이 판매되고 있다.

 

Q. 앞으로의 브랜드 방향성이 궁금하다. 브랜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A. 우선 예술가들이 마음껏 본인의 작품세계를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린 버려진 옷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예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영감을 주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 

또 홍대에 놀러 오신 외국인 관광객분들, 내한 공연한 해외 가수분도 저희 제품을 찾아주신 적이 있는데 좋은 피드백을 주셨다. 외국에 홍대 예술, **서브컬처의 모습을 알릴 하나의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옷 폐기물을 줄여 환경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다. 세 가지 부분에서 이 브랜드가 하나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인터뷰를 끝낸 기자는 이정환 대표의 브랜드 이야기에 매료된 채 밖으로 나왔다. 빈티지는 이제 ‘가치가 있는 구제품’이라는 의미를 넘어 지속 가능한 환경과 예술의 표현 수단으로 기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빈티지 세계는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빈티지 세계의 무궁무진함

짧았던 홍대 빈티지 탐방은 매장에서 시작해 브랜드 사무실에서 그 여정을 끝마쳤다. 탐방하면서, 버려진 것에서 가치를 창출해내는 모습을 끊임없이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긴 구제 의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빈티지 가게 사장님의 모습, 구겨진 부분을 스팀 처리하여 깨끗하게 만드는 직원들의 모습, 얼룩을 디자인으로 살려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모습. 그리고 방문한 빈티지 가게의 대부분은 구제 의류 여러 벌의 패턴을 오려 붙여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거나, 커다란 사이즈의 브랜드 셔츠를 짧게 잘라 다른 모양새로 재탄생 시키는 등 가게만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덕분에 누가 쓰지 않는 물건에 가격을 붙여 판매하기까지, 그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의 열정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빈티지는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거래되고 있다. 과거 빈티지 시장은 단순히 골동품을 가져다 파는 곳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황학동이나 동묘 등 서울 곳곳에 가전제품, 의류, 고서, 레코드판 등 안 쓰는 물품을 파는 상권이 형성됐고, 그곳에서부터 서서히 성장한 빈티지의 인기는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 시장의 성행으로 최근 몇 년 새 한층 높아졌다. 중고 거래의 주 무대가 온라인으로까지 확장되면서 빈티지 소비층 역시 더욱 탄탄해졌으며 인스타그램이나 라이브 방송을 통한 판매 등 복잡한 절차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온라인 상점 역시 흔해진 현황이다. 온라인으로 더욱 쉽게 스타일을 참고하고, 매장에 자유롭게 방문해 새로운 스타일을 발굴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제는 환경을 위한 사업,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더욱 성장할 빈티지의 앞날을 기대해 볼 시점이 아닐까 싶다.

 

*올드스쿨 : ‘구식의’, ‘전통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로, 흔히 브랜드 초창기, 또는 나온 지 오래된 브랜드의 클래식 디자인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서브컬처 : 하위문화. 한 사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관, 행동양식을 전체 문화(otal culture)라 할 때, 그 문화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독자적인 특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를 말한다.

 

황서영 기자(michellehi22@g.hongik.ac.kr)

김민규 기자(alomio1224@g.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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