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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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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시대를 호가했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スラムダンク)>(TV 아사히)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THE FIRST SLAMDUNK)>(2023)의 관객 수가 381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중 최고 흥행 기록이다.

기자 역시 지난 겨울 ‘슬램덩크 열풍’에 일조했던 사람 중 하나이다. 처음 극장판 개봉 소식을 접하고 극장으로 향했을 때, ‘슬램덩크’ 하면 떠올랐던 대사는 “왼손은 거들 뿐” 같은 유명한 대사뿐이었다. 그러나 124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난 뒤 기자의 머릿속에 박힌 대사는 ‘만화에도 이런 대사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지 않았던 대사였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게 된 대사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강백호’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된다. 주인공이 속한 ‘북산고등학교(이하 북산고)’는 고교 농구 최강자라 불리는 ‘산왕공업고등학교(이하 산왕공고)’와 *인터하이 2차 전에서 맞붙는다. 3학년 선수들의 입학 이래 무패 전승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산왕공고와의 격돌에서 북산고의 주전 다섯 명은 고군분투한다. 4쿼터 내내 가로 28미터, 세로 15미터의 농구 코트를 바쁘게 뛰어다니던 주인공은 경기 도중, 코트 밖으로 나가는 공을 잡으려다 등에 부상을 입게 된다. 농구를 시작한 지 채 반 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지만 누구보다 경기를 뛰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던 주인공은 아픔을 참고 계속해서 경기에 임한다. 결국 등의 부상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감독이 그를 교체시키지만, 가만히 누워 동료들이 뛰는 소리를 듣던 주인공은 벌떡 몸을 일으킨다. 등이 아파 움찔대면서도 용케 감독에게까지 성큼성큼 걸어간 주인공은 그때 이렇게 말한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바로 지금이라구요!”

감독의 어깨를 붙잡고 또박또박 말을 뱉은 주인공은 그 완강한 의지로 인해 곧바로 교체 투입되고, 결국 결승골을 만들어 내 북산고를 승리로 견인해낸다. 최종 스코어는 북산고 79점, 산왕공고 78점이다.

온전히 끈기 하나로 불가능해 보이던 팀의 승리를 만들어 낸 주인공의 대사를 계속해서 곱씹어 보았다. 자신의 영광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그저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으로 일어선 강백호. 주인공은 산왕전 이후 심해진 부상으로 인해 재활에 돌입하게 되지만, 만화책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까지 그의 얼굴에서는 후회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자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일까’ 하고 생각을 해 보았다. 기자는 아직 어리고,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 이루어냈다고 할 만한 일이 없다. ‘아직 내 영광의 시대는 오지 않았구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다가도 문득 주인공은 불과 열일곱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당당히 ‘나의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말하던 주인공의 손에는 그 흔한 우승 트로피 하나 들려있지 않았다. 어쩌면 기자의 영광의 시대도 바로 ‘지금’인 것은 아닐까? 이렇게 기자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학교생활을 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적어도 일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는 지금이. 나중에 기자의 스물 두 살을 돌이켜 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을 뿌듯하게 떠올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재활에 성공한 주인공이 더 큰 대회에 나가 더욱 큰 역할을 해내고 마침내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했을 때, 주인공은 그때도 자신의 영광의 시대가 ‘고등학교 시절 산왕전’이라 말할까? 분명 그는 언제나 ‘지금’이 자신의 영광의 시대라 말할 것이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라 할지라도, 기자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보잘것없고 부끄러울지라도.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다면 내일의 나는 분명 더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 순진하고도 진부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이다. 슬램덩크의 주인공이 그러했듯이. 기자는 지금 ‘나의 또 다른 영광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인터하이(inter-high): 일본의 전일제 고교 스포츠 제전의 통칭. 매년 8월을 중심으로 개최되는 스포츠 종합 경기 대회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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