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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이 주는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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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의 사전적 정의란 ‘어떠한 작용을 주어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함.’이다. 모든 인간은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 독자와 필자가 소통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기사의 특정 부분에 반응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유연한 글 흐름에 반응을 보이지만, 어떤 이들은 참신한 소재에 이끌리기도 한다. 그러나, 글에 자극받는다고 해서 결과가 항상 긍정적이진 않다. 글의 부정적 측면만을 찾기 위해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제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기사의 작성자는 독자에게 만족감을 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자는 어떤 소양을 갖추어야 독자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을까.

본지의 경우 기사가 신문에 올라가기까지 여러 번의 점검을 거친다. 동료 기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교수님까지, 순수했던 초고는 여러 차례의 보수 공사를 마친 후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어떤 글은 최소한의 수정을 해야 하는 반면 어떤 글은 대대적 공사를 걸쳐 최종 완성된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피드백 과정을 통해 수정된 기사에 기자 자신의 이름을 작성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수정 과정에서 본래의 의미가 변질돼 작성되거나, 심지어는 삭제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기자는 살면서 무언가에 열렬히 집중해본 적이 없었다. 시도하면 금방 제풀에 지치기 마련이었다. 지치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대부분 열정이 식어서였다고 생각한다. 야구 선수의 꿈을 그만둔 것도,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고 마음만 먹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못한 것도 열정의 부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문사에 들어온 후 태도가 변했다. 한 학기 동안의 수습 기간 동안 제법 지쳤으나 이전과는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더욱 열정적으로 임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여러 고정란 기사 작성에 주저하지 않고 열중했던 것 같다. 

초심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 먹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과거 기자가 기자실에 처음 들어갔던 날이 떠오른다. 당시 기자는 기대에 부푼 마음을 이끌고 기자실에 방문했다. 정성스레 작성한 지원서를 바탕으로, 논술 시험 역시 자신 있다는 마음이었다. 면접을 볼땐 긴장감이 돌긴 했지만, 부담 없이 응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워 보이겠지만, 기자는 현재도 면접 때 느꼈던 선선한 공기를 잊지 못한다. 강당(S동)을 찾지 못해 캠퍼스를 돌면서 헤매던 모습, 강당 2층을 올라가는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초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모든 사람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즉, 초심을 망각하는 것이다. 즉, 내가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 해왔던 모든 것들은 일정한 자극만을 주었기에 초심을 잃었던 것 같다. 이번 일을 기점으로, 앞으로 초심을 기억하며 모든 일을 열정적으로 임하고 싶다.

기자 생활이 어언 2년차가 돼간다. 배우는 기간이 아닌 남들을 가르쳐야 할 시기다. 기자가 강조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초심’을 지키는 것이다. 물론 기자도 이를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보고 배운 것을 글에 담아내기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자의 인식이 신문사 입사 전후로 바뀌었기에 자극과 반응, 일정한 초심 유지와 같이 느낀 점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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