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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목소리로 세상에 꿈을 전하다.

성우 홍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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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우 홍범기
▲ 성우 홍범기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던 저녁, 주말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목욕탕을 다녀오던 열 살 무렵의 기자에겐 느지막하게 방영하던 <아따맘마>(투니버스)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자라 바쁜 일상을 보내는 기자는 그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만화들을 보며 고된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자의, 그리고 우리의 동심을 책임지던 성우 홍범기를 만나봤다.

 

Q.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던 만화 속 캐릭터를 연기하는 성우로서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A. 먼저 직접적으로는 어린 친구들이나 학부모님의 반응을 접했을 때가 가장 신기하고, 와닿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영어 학습 테이프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성우가 될 거란 생각도 안 하고 있었기에 인지를 못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테이프의 안내 멘트도 다 성우들이 녹음했던 거였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그분들 성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엄청난 대선배님들인데다가 이제는 활동을 안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 성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기억 속에 성우라는 직업이 파고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왼쪽 상단부터) '은혼'의 시무라 신파치, '짱구는 못말려'의 정훈, '나루토'의 록 리, '라바'의 레드와 옐로우
▲(왼쪽 상단부터) '은혼'의 시무라 신파치, '짱구는 못말려'의 정훈, '나루토'의 록 리, '라바'의 레드와 옐로우

 

Q.성우는 시청자의 몰입을 위해 목소리만으로 연기해야 한다. 녹음할 때 감정을 잡는 특별한 방법이나 해당 캐릭터에 이입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궁금하다

A. 배우들이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하면서 자신을 등장인물에 투영시키는 과정들을 성우는 목소리에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캐릭터의 모습이 목소리에만 얹어지는 거라서 더 많은 꾸밈이 필요하다. 캐릭터가 보여준 행동이나 외적인 특징들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목소리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점을 신경 써서 녹음한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캐릭터와 친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성우 녹음에는 그런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들은 녹음 시작과 동시에 해당 캐릭터에 빠르게 이입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어색한데 밖에서 연출하시는 분들과 조율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녹음을 하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Q. 극 분위기와 캐릭터의 해석은 연기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원작이 존재하는 외화나 외국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더빙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이런 경우 어떤 점에 집중해 연기를 펼치는지 궁금하다.

A. 일차적으로 원작의 느낌을 살려서 캐스팅하기는 한다. 그게 조금 더 안전한 것도 있고, 더 캐릭터에 잘 붙으니까 일반적으로 그런 캐스팅을 한다. 원작 역시 이미 여러 과정을 거쳐 조율하며 완성된 만큼,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원작과 비슷하게 연기해야 이질감을 줄일 수 있다. 거기에 더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원작 목소리가 연출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등의 경우 전혀 다른 목소리를 캐스팅해서 해당 성우의 개성을 살리기도 한다.

 

Q.올해로 20년째 성우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인지, 특색있는 목소리 말고 성우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오래 활동하는 건 사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본인의 컨디션이나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는 책임감, 부지런함,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오랫동안 한 직종에서 일하다 보면 슬럼프도 오고 뭔가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 프리랜서 직종이다 보니 그런 일들이 더욱 많다. 그걸 견뎌낼 수 있는 안정감 있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우가 된 후에도 오디션이 계속되고, 녹음하러 가면 처음 보는 사람들, 처음 보는 글과 대본에 부딪혀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테스트받는 기분도 든다. 그렇기에 본인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목소리 말고 성우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감 능력과 순발력이다. 우선 공감 능력이 크면 클수록 좋다. 듣는 사람이 뭘 원하는지,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지금 뭘 표현하는지를 빨리 캐치하면 할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그걸 빨리 밖으로 뺄 수 있는 순발력과 판단력이 어쩌면 목소리보다 더 중요하다. 녹음을 하다보면 까다로운 경우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헤쳐 나갈 수 있는 순발력과 판단력이 부족하면 일을 하는 게 힘들어진다. 세상에 목소리가 좋은 사람은 너무 많은데, 그걸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Q.한 작품을 오랜 기간 연기할 때 해당 캐릭터와 자신이 닮아갈 것 같다. 특히 <아따맘마>와 같이 일상 만화를 연기하고 나면, 자신의 일상에서 캐릭터의 말투, 행동, 표정 등이 무심코 나오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A. 그걸 직접적으로 인지하고 놀라거나 깨닫거나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근데 ‘동동이’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외모도, 성향도 비슷하다 보니 연기할 때도 목소리를 많이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얼마 전에도 카페에서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후배가 너무 동동이 같다고 한 적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사이사이에 비치는 그런 모습들이 있는 것 같다.

▲'아따맘마'의 오동동
▲'아따맘마'의 오동동

 

Q. 앳된 목소리와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일인다역에 능하고, 까칠하거나 쿨한 이미지 혹은 노인 캐릭터 등에도 능하다. 평소 알려진 이미지가 아닌 새롭게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사실 웬만한 캐릭터들은 다 연기해봤다. 그런데도 좀 더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악역인 것 같다. 완전히 순수한 악의 결정체 말이다. 연기자들도 악역에 대한 로망이 있듯이, 무자비하고 성질 나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

 

Q. 최근 장편 판타지 『드래곤 라자』 오디오 북의 제작이 끝났다. 오디오 북과 오디오 드라마의 인기가 증가하는 만큼 녹음 일정이 많을 것이다. 영상에 맞춰 더빙하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과 달리 오디오 북과 오디오 드라마의 녹음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왼쪽부터)오디오 북 『드래곤 라자』,오디오 드라마 '울어봐, 빌어도 좋고'
▲(왼쪽부터)오디오 북 『드래곤 라자』,오디오 드라마 '울어봐, 빌어도 좋고'

A. 일단 오디오 북과 드라마가 좀 다르다. 오디오 북은 제작 초창기 때 한 성우가 남자, 여자부터 아이, 노인 할 거 없이 혼자서 녹음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에는 성우를 다양하게 투입하기도 한다. 또 오디오 북은 그냥 책 한 권을 토시 하나 바꾸지도 않고 원본 대로 녹음한다. 작가의 의도를 살려서 활자 그대로 전달해줘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문어체를 구어체스럽게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오디오 드라마는 각색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오디오 드라마는 워낙 긴 작품들을 하다 보니까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하기도 하고 대사를 고치는 등의 각색을 통해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비교적 연기하기 쉽고, 성우진이 더 다양하게 투입돼서 극처럼 제작된다.

 

 

Q. 성우 활동에 있어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또 음식에 더빙하는 ‘맛있는 앙~마! 들’처럼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하다.

A. 성우 팬분들이 성우들과의 소통 창구가 부족하는 불편함을 항상 느끼고 계셨고, 그걸 해소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유튜브가 성우 일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팬분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고, 문득 떠오르는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만들어보는 재미가 있다. ‘맛있는 앙~마! 들’ 콘텐츠 같은 경우에는 제작하면서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애니메이션상에서 음식들이 얘기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는 음식이 움직이지도 않고, 눈코입도 없으니까 대중분들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진 것 같다. 주변 성우들로부터도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다.

 

Q. 성우가 되기 전 라디오 DJ를 꿈꿨다고 들었다. 성우 신용우와 함께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오버 더 라디오>를 8년 동안 진행하며 깊은 애정을 자랑할 것 같다. 오버 더 라디오만의 특색과 재밌었던 비하인드 일화 등이 궁금하다.

A. 녹음을 보통 밤에 진행한다. 신용우 성우와 나는 낮에 다른 녹음을 하고 오고, 스태프분들도 각자의 직장에 출근했다가 오시는 거라 다들 텐션이 떨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는 없는 에너지를 억지로 끌어올려서 방송을 하는데, 그게 진짜 텐션이 되는 방송들이 많다. 그런 날은 팬분들 반응도 재밌고, 끝나고 나서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순간마다 나를 놔버릴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원래는 공개 방송도 주기적으로 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계획이 많이 틀어졌다. 공개 방송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면 팬분들이 많은 반응을 해주신다. 그 횟수는 몇 번 안 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버 더 라디오'
▲'오버 더 라디오'

 

Q. 마지막으로 성우를 꿈꾸는 본교 학우들와 청춘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A.  꼭 지망생분들이나 말하는 직종을 원하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평소에 신경을 쓰면서 말을 하셨으면 좋겠다. 목소리만 조금 좋게 내고, 말을 정확하게만 해도 일상생활에 좋은 점들이 많아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 가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데에 목소리를 꾸미는 것은 외모를 꾸미는 것 만큼이나 효과적이다. 어쩌면 목소리의 힘이 주는 효과는 훨씬 클 수 있다. 외모를 꾸미는 건 시간도, 돈도 많이 들지만 목소리를 꾸미는 건 평소에 작은 신경만 쓰면 된다. 그런데 그 쉬운 일을 잘 안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그 힘을 믿고, 평소에 말하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말을 예쁘게, 듣기 좋게 하는 건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분명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좋은 말하기는 좋은 세상에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분명히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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