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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기록하다.

영화 속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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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일종의 기록물이다. 그 순간의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그날의 날씨, 분위기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영상으로 남는다. 물론 ‘계절’도 말이다. 계절을 담아낸 영화들이 있다. 그 영화들이 표현하는 계절은 벚꽃 비가 흩날리기도, 지겨운 매미 소리가 들리기도 하며, 금빛 은행잎들이 깔려있기도, 흰 눈이 펑펑 내리기도 한다. 눈여겨볼 건 그 계절을 어떻게 담아냈느냐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가 정해지기도 한다는 것.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잘 담아낸 4편의 영화, <빅 피쉬(Big Fish)>(2004), <남매의 여름밤>(2020), <인생은 아름다워>(2022), <윤희에게>(2019)를 소개하고자 한다.

 

[봄 한 송이]

평생을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남자, ‘에드워드 불룸’은 그의 아들 ‘윌’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 에드워드는 어느 자리에 가든 자신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사람들에게 얘기해준다.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자신의 결혼반지를 미끼로 삼았던 일, 마녀의 눈을 통해 죽음을 봤던 일, 행복과 즐거움만 가득한 유령 마을에 갔던 일 등, 그의 이야기는 몹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윌은 그런 아버지의 ‘거짓말’에 지친 지 오래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졌다는 소식을 듣곤 아내와 함께 본가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지겹도록 반복했던 자신의 모험담을 마지막으로 며느리에게 들려주게 된다.

영화 속에서 젊은 에드워드는 운명의 사랑 ‘산드라’를 만난다. 산드라에게 한눈에 반한 에드워드는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사랑 고백을 멈추지 않는다. 관객들은 에드워드의 시선으로 산드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그녀는 마치 봄날의 햇살을 닮았다. 산드라가 좋아하는 꽃인 황수선화를 그녀의 집 앞에 가득 심어 놓은 장면은 이미 유명하다. 단순히 말로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랑. 봄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영화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담아낸다.

 

[여름 한 컵]

‘옥주’는 여름 방학 동안 동생 ‘동주’,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된다. 아빠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다만 옥주의 가족은 당장 갈 곳이 없다. 며칠 후 캐리어를 끌고 온 고모까지 합세하면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게 된다.

영화가 담아낸 여름은 마냥 무더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청량한 색감과 여름의 소리, 집 안으로 들어오는 여름날 오후의 햇살은 여름의 기억을 미화시킨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옥주와 가족들. 옥주에게 있어서 이번 여름은 왠지 서늘하다. 영화에서 배경 음악처럼 흐르는 풀벌레와 매미 소리, 마당에 가득한 초록색 식물들, 꼼꼼하게 쳐둔 모기장은 지금이 여름의 절정임을 묘사하지만 여러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옥주는 이 여름을 느낄 여유가 없어 보인다.

여름은 미화의 계절로도 불린다. 옥주에게 있어 이번 여름 방학은 기억하기 싫은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안 좋은 기억보단 다섯 식구가 모여 밥을 먹었던 일, 오래된 재봉틀을 사용해 본 일, 고모와 모기장 안에서 함께 잠을 잔 일 등 좋은 기억만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옥주에게 있어 이번 여름은 어떤 여름으로 남게 될까.

 

[가을 한 장]

동사무소 직원인 남편 ‘진봉’은 병원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아내 ‘세연’에게 화를 낸다. 세연은 버스를 잘못 타 급하게 내린 서울 극장에서 조조할인으로 데이트를 즐기던 추억을 그리며 서둘러 병원으로 향한다. 진료 시간을 한참이나 넘긴 탓에 진봉이 혼자 그녀의 병명을 듣게 된다. 폐암 전이. 앞으로 두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로 영화는 시작한다. 세연은 시한부가 됐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가족들에 자신의 생일날 이혼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진봉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목포에 있는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 달라고. 함께 가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면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국에서 흔치 않은 뮤지컬 영화다. 영화에서 세연이 이문세의 ‘Solo예찬’을 부르는 장면이 있다. 잔뜩 들뜬 그녀는 은행나무 길 속 떨어지는 꽃가루를 마음껏 누린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금빛 은행나무 잎들은 가을의 향취를 물씬 느끼게 해 준다. 완연한 가을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로 어린 세연이 떨리는 마음으로 첫사랑과 떠난 서울 나들이도 가을, 진봉과 함께 첫사랑을 찾아 떠난 그녀의 마지막 여행도 가을이다. 아마 그녀에게 가을이란 가슴 설레는 사랑의 계절이었지 않을까. 모든 나무와 풀들이 다시 피어나기를 고대하며 쉬어감을 준비하는 계절인 가을. 세연이 그들처럼 다시 피어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마지막 가을은 아마 금빛 은행나무잎처럼 빛났을 것이다.

 

[겨울 한 숨]

여기 딸 ‘새봄’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윤희’가 있다. 첫 해외여행에 잔뜩 신난 새봄과 달리 윤희는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이들의 여행은 일본에서 온 편지 한 통으로부터 시작됐다. 편지의 발신인은 윤희의 옛 연인인 ‘쥰’이다. 편지를 읽은 건 새봄. 엄마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진 새봄은 고민 끝에 대학교에 가기 전 엄마와 단둘이 해외여행을 가자며 제안한다. 처음엔 거절했던 윤희는 다음 날 일본에서 온 또 다른 편지를 읽게 된다. 그리곤 일본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영화는 겨울을 배경으로 한다. 눈이 잔뜩 내린 일본의 모습을 잔잔하게 보여줌으로써 겨울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윤희는 그리워하던 쥰을 보러 일본까지 왔지만 정작 그녀를 보러 가진 않는다. 내쉬는 한숨을 숨길 수 없는 계절인 겨울, 겨울은 윤희의 쓸쓸함과 고독을 더욱 강조한다.

윤희를 보면 겨울이 연상된다. 여행을 마친 그녀는 여전히 겨울처럼 쓸쓸하지만 마냥 춥지만은 않아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윤희는 쥰에게 보내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는다. 아직은 망설이는 윤희, 언젠간 부치지 못한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새봄에게 쥰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각 문단의 소제목은 가수 아이유의 노래, <겨울잠>에서 인용한 것이다. 사계절은 흔히 자연의 선물이라고도 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의 모습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아름답다. 영화에 담긴 사계절 역시 그렇다. 슬프게도 점점 사계절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시대가 온 듯하다. 그래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 동안 사계절의 축복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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