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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기, '무제', 1980년, 돌, 금속, 90x120cm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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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기, '무제', 1980년, 돌, 금속, 90x120cm
▲ 박현기, '무제', 1980년, 돌, 금속, 90x120cm

박현기는 백남준을 이어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1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평가 받는다.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박현기는, 1961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지만 이후 건축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한다. 그는 회화라는 매체가 가진 평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건축을 택했다고 말한다. 그는 비디오라는 조형 매체를 토대로 소위 건축적 설치 작업을 보여주며, 회화와 분리되는 독특한 자신의 조형 세계를 구축했다. 

박현기는 1970년대 초반 서울의 미술계를 떠나 대전으로 내려간 직후, 미술잡지를 통해 초창기의 비디오 아트를 접한다. 그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동양적 정신을 창작의 기저에 놓았다. 대표적으로 박현기의 작품은 비디오라는 서양적 매체와 돌 등의 동양적 매체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는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을 서양의 포스트모던적 형식언어와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탐구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박현기의 동양적 정신문화에 대한 관심은 비디오 작업뿐 아니라, 돌을 소재로 제작한 그의 초기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78년 서울 화랑에서 선보인 <무제>(1978)라는 작업을 시작으로, 인공소재로 제작한 돌과 자연의 돌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돌탑을 제작했다. 작가는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각자 손에 돌을 들고 소원을 기원하는 돌탑을 쌓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는 그가 이후 돌이라는 자연적 재질을 쌓는 행위와 결합한 돌탑 작업에 천착하는 계기가 된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무제>(1980)도 앞서 언급한 돌탑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돌이 하나의 금속판 위에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은 TV와 돌을 금속 널빤지 위에 위치시킨 박현기의 상징적인 비디오 작업 <무제(TV 시소)>(1984)를 연상하게 한다. 4년의 시간 차이와 장르 차이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이러한 공통점은 박현기가 “나는 돌은 아니지만 돌로 표상되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전달자”라고 말했던 것처럼, 돌이라는 소재에 대한 일관적인 작가 의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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