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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담아, 〈사랑하기 때문에〉(2017)

그 사람을 사랑했다고 자신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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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기 때문에 포스터/ 출처:(주)AD406
▲ 사랑하기 때문에 포스터/ 출처:(주)AD406

중학생일 때, 기자는 교내 백일장에 소설을 써내 장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가 국어 선생님께 그 소설의 주제가 뭐냐고 여쭤봤다. 선생님께선 인간의 폭력성을 다룬 내용이라고 하셨다. 옆에서 기자는 선생님의 답변을 들었고, 당시 받은 신선한 충격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기자가 표현하려던 주제는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해석하는 이에 따라 원래와 다른 의미로 존재하기도, 때론 아예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사랑 표현과 닮았다. 진심으로 사랑해서 한 말이 상대에게는 그저 그런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국어 선생님께서 해석하신 기자의 소설이 처음 기자의 생각 속에서 피어난 모습관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기자가 이 작품을 보고, 따라가고 싶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심을 원래 모양 그대로 전달하는 법을 깨닫게 해줬기에, <사랑하기 때문에>(2017)는 기자에게 의미 있게 남았다.

이 영화는 ‘작곡가’ 이형이 사랑하는 이에게 프러포즈를 하러 가다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기억을 잃은 이형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데, 임신한 전교 1등 여고생, 이혼 직전의 형사, 남편을 옆에 두고 첫사랑만 찾는 치매 할머니, 모태솔로인 고등학교 선생님의 몸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랑에 서툰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지 못하는 것만큼 답답한 것은 없다. 이 영화에선 당사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던 해결책을 제3자가 대신 보고 문제를 해결해주는데, 그 제3자에 해당하는 인물이 바로 이형인 것이다. 이형은 그들의 꼬여있던 진심이 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본인의 기억을 찾기 시작한다. 

 

▲ 서울공업고등학교. 극 중 스컬리와 말희가 다니는 고등학교다.
▲ 서울공업고등학교. 극 중 스컬리와 말희가 다니는 고등학교다.

 

기자는 우선 이형이 사고가 난 뒤 처음 정신을 차린 장소인 고등학교로 찾아갔다. 이형의 조력자로 나오는 ‘스컬리’와 임신한 여고생 ‘말희’, 그리고 모태솔로 선생님 ‘여돈’ 모두 이 고등학교에 다녀서, 영화를 봤다면 익숙히 느껴질 공간이다. 보라매역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붉은 갈색의 벽돌담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기자는 이형과 스컬리를 찾아 넓은 고등학교를 돌아다녔다. 이형은 현재 자기 몸인 말희가 임신한 상태라는 걸 안 뒤 아이를 지우려고 산부인과를 찾는다. 하지만 이형의 생각과는 달리 말희와 말희의 남자친구는 아이를 키우기로 굳은 결심을 한 상태였고, 수술대에 들어가기 전 이형의 영혼은 그 몸에서 나온다. 이 고등학생 커플은, 이형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간절함을 느끼게 했고 이를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이형의 ‘사랑의 큐피트’ 행보는 시작된다.

이형이 두 번째로 들어간 몸은 형사 ‘찬일’이었다. 찬일과 그의 아내는 눈만 마주쳐도 정색하고 대화도 메신저로만 하는 사이다. 상처만 남은 부부 사이를 정리하기 위해 이혼하러 법원에 가던 중 열려있던 맨홀에 빠진다. 둘은 의지할 곳 없는 낯선 공간에 갇혀 그간의 설움을 나눈다.

 

찬일의 아내: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거 같고 애는 계속 울어대기만 하는데 나 정말 죽고 싶었어. 당신이 정말 얄밉고 미웠어.

(중략)

찬일 안의 이형: 정민이 엄마랑 같이 살면서 되게 미안해했을 거예요. 그래서 더 말도 못 했을 거고.

찬일의 아내: 당신 왜 그래, 하던 대로 해. 당신답지 않게 왜 그래.

찬일 안의 이형: 정민 엄마, 미안해. 사과할게.

 

찬일을 죽일 듯이 쳐다보던 찬일의 아내는 이형에게 이해와 사과를 받고 눈물을 흘린다. 깊어 보이는 골도 메우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하고, 본인의 잘못이든 뭐든 진심을 표현한 말 한마디면 소중한 관계가 꼬였던 부분은 금방 풀릴 수 있다. 사실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상처도 깊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번 상처를 받으면 매우 아프다. 그리고 상처가 난 상태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특별한 때가 아니면 대부분 닫혀있는 맨홀 뚜껑처럼 더 견고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서로를 향한 비난만 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 무거운 맨홀 뚜껑을 열어주기만 해도, 꾹 갇혀있던 응어리는 녹는다. 뚜껑을 드는 것, 다시 말해 관계를 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누군가의 그 용기가 날 향한 순간 그 안은 고마움으로 가득 채워진다. 기자 역시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들 부부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을 푸는 법을 곰곰이 고민해볼 수 있었다.

 

▲ 여돈과 다인이 만난 카페
▲ 여돈과 다인이 만난 카페

 

이후 모태솔로 선생 여돈의 몸으로 들어간 이형은 약속 문자를 한 통 받는다. 그 문자를 따라 기자는 이형이 나간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숲역에서 가까운 한 카페였다. 영화에서는 통창도 활짝 열려있고, 울창한 식물들에 야외 테이블도 있었지만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6년 전이라 그런지 화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창문도 닫혀있고 정원에는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대부분이라 조금 아쉬웠지만 카페 내부에 걸린 식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장소에서 이형은 여돈의 대학 친구인 ‘다인’을 만난다. 다인은 굉장한 미모의 소유자이고, 계속해서 여돈과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한다. 배가 볼록한 선생의 모습을 보며 이형은 둘이 무슨 사이인 건지 의아해한다. 결국 함께 여돈의 집까지 왔고 다인이 피곤해서 잠든 사이, 이형은 다인의 가방에서 여돈의 이름이 적힌 영업 고객 리스트를 보게 된다. 이형은 여돈이 갑자기 안쓰러워 보였을 거다. 이형은 ‘여돈이라면 다인에게 어떻게 했을까?’ 고민하다, 다음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뜻한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로 아침을 차려준다.

 

다인: 다 변해. 세월이 지나니까 다 변해. 나 정말 욕심 많았었는데. 내가 이렇게 책이나 팔러 다니게 될 줄 정말 몰랐어. 흉하지? 흉하게 변했어. 모든게 다. 그런데 오빠 순정 그거 하나는 여전하네.

 

묻지 않고 오히려 잘해주는 여돈의 모습에 다인은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는다. 다인이 좋았을 순박한 여돈은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이형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너를 얼마나 진심으로 생각했는데!”라는 식으로 다인에게 화를 냈다면 여돈의 진심은, 진심일지라도 아프게 전달됐을 것이다. 그리고 둘은 서로 문을 닫았을 거다. 하지만 부드러운 아침밥은 다인의 진심에 닿았고 오래된 인연을 잃지 않게 해줬다. 

치매에 걸려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 ‘갑순’의 몸으로 들어갔을 때도 이형은 이 부부의 가슴아픈 사연을 돕는다. 남편을 과거의 첫사랑 ‘춘호 오빠’라고 부르는 갑순을 보고, 그녀의 남편인 할아버지는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춘호와 갑순 사이의 편지를 숨기고 전달하지 않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갑순의 첫사랑을 방해했구나, 하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이형은 그런 할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일기장을 본다. ‘나를 춘호 오빠로 알아봐도 갑순의 남은 생 즐거우면 족하지만, 미련이 남네. 한번만 나를 알아봐주면 안되겠는가?’ 이형은 둘 사이의 오가지 못한, 못 다한 말을 대신 전한다.

 

갑순 안의 이형: 내가 누구예요?

할아버지: 김갑순이지.

갑순 안의 이형: 그럼 자기는 누구예요?

할아버지: 아, 나 춘호 오빠지. 김갑순이 첫사랑 춘호.

갑순 안의 이형: 자기가 무슨 춘호 오빠야, 사기꾼. 당신은 내 남편이잖아요. ···(중략)··· 우리가 인연이어서 여기까지 온 거지, 당신 탓이 아니에요.

 

▲ 이형과 스컬리가 걸었던 버스킹 거리. 영화 속 6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 이형과 스컬리가 걸었던 버스킹 거리. 영화 속 6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갑순과 진심이 통한 후 할아버지는 미련을 푼 듯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기자는 문득 이형과 스컬리가 걸었던 버스킹 거리의 정확한 위치를 찾고 싶어서 영화를 여러 번 돌려가며 단서를 찾았다. 마침내 찾은 음식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봤지만 없는 번호라고 떴다. 벌써 6년이 지난 영화다. 없는 번호라는 음성을 들으며 조금은 슬펐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사라진다. 그래서 진심은 전할 수 있을 때 전해야 한다.

가수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노래를 알 것이다. 영화의 배경 음악이기도 한 이 노래의 가사 속 화자는 소중했던 사람이 자신을 떠났지만, 그 사람을 원망할 수가 없어서 자신을 미워한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랑을 해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사랑에 서툴러 상처받은 내 입장만 생각하거나, 내 딴엔 이게 최선이라며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을 실수할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자존심 상해서 진심을 내보이지 못하겠다면 그건 어쩌면 자신만을 위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기자도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 말로 정리하는 것도 아직 서툴고, 마음과 현실도 자꾸 충돌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이후 감정적인 문제가 생겨 아플 땐 왜 그 문제가 생겼는지 되짚어본다. 그러면 가장 마지막 결론은 늘 이거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론을 마주한 순간 모든 갈등은 다 의미 없게 느껴진다. 기자가 사랑하지 않는 것에서 받은 감정적 상처는 너무 얕아 금방 아무렇지 않아지더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소중하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정말 애틋하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선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배려를 아끼지 말고, 재고 따지지 말고, 늘 진심을 온전히 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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