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모방을 초월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다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시장 입구
▲전시장 입구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태어난 페터 바이벨(Peter Weibel, 1944~2023)의 어린 시절은 오스트리아 내 미군 캠프의 난민 이었다. 이후 그는 빈 대학교(University of Vienna)에서 의학과 수리논리학을 전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미디어 아트 분야 작업에 발을 들인다. 그는 미디어 아트 작업과 동시에 큐레이터, 이론가, 기획자, 교육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특히 1999년부터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 미디어 센터(ZKM)의 센터장 및 CEO를 맡아 ZKM을 세계적 수준의 미디어아트 기관으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의 유고전이 된 이번 전시는 지난 2019년 ZKM에서 개최했던 동명의 전시를 아시아 최초로 선보이는 것으로, 우리가 기존에 세상을 바라보던 인식을 거부한 바이벨 만의 새로운 세계를 느낄 수 있다.

▲〈탭 앤 터치 시네마〉(1968)의 장면
▲〈탭 앤 터치 시네마〉(1968)의 장면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닿을 듯한 벽에 영상 작품들이 각 장면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그중 두 번째 벽에서 관람할 수 있는 <탭 앤 터치 시네마(Tap and Touch Cinema)>(1968)는 2분 32초 분량의 흑백 비디오다. 작품은 바이벨과 동료 예술가 발리 엑스포트(Valie Export, 1942~)가 도심 속을 걸어 다니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엑스포트는 가슴 부분에 구멍이 뚫린 상자를 묶은 채 바이벨과 뮌헨 거리를 활보한다. 옆에서 바이벨은 확성기를 들고 탭 앤 터치 시네마를 경험해보라고 행인들에게 권유한다. 이 말뜻은 상자에 손을 넣고 엑스포트의 가슴을 만져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바이벨은 “이 탭 앤 터치 시네마는 매일 상영돼야 한다. 공공성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협박하는 자와 다름없다”라고 외친다. 이 작품을 통해 바이벨은 영화가 단순히 필름을 통해 시각적으로만 인식되는 이미지가 아닌, 직접적인 촉각으로 인식되도록 한다. 또한 단절되어 있던 관객과 스크린의 관계를 허물어 관객의 지각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초창기 확장 영화의 예시를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속 여성이라는 오브제를 관객이 시각적으로 느끼고자 하는 것에서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전환해 페미니스트 행동주의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인포메이션 유닛〉(1967)
▲〈인포메이션 유닛〉(1967)

 

앞서 설명했다시피 바이벨은 의학과 수리논리학을 전공한 만큼 과학 분야를 접목한 작업물도 많이 남겼다. 그 중<인포메이션 유닛(Information Unit)>(1967)은 과학과 예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이벨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제품 상상도다. 바이벨은 전자면도기와 비슷한 크기의 라디오가 카메라, 스피커, 비디오카메라, 전화기와 TV 등 모든 전자기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꿈꿨다. 지금이야 스마트폰과 실시간 정보 공유가 당연한 시대이니 별로 놀라울 게 없지만, 이 작품의 창작 연도가 1967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TV가 컬러 화면도 아니었던 과거에 바이벨은 현재의 스마트폰과 거의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꿈꾸었다. 기능이 접목되길 바라는 것에 더해 바이벨은 각 기기의 사진을 모아 제품의 디자인까지 제시했다.

▲〈YOU:R:CODE〉(2017). 각 화면에 다가갈 때마다 기자는 다른 형태로 인식된다.
▲〈YOU:R:CODE〉(2017). 각 화면에 다가갈 때마다 기자는 다른 형태로 인식된다.

 

전시장 위층 맨 오른쪽으로 가면 전신과 비슷한 크기의 화면 5개가 있다. 바로 <YOU:R:CODE>(2017) 다. 첫 번째는 일반 거울이다. 거울은 빛의 기하학적 현상과 광학 법칙이라는 물리학의 코드를 따른다. 이를 통해 인간에게 거의 완벽에 가까운 2차원의 가상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 옆의 아날로그 TV는 관람객이 화면 앞에 다가서면, 빛줄기를 통해 관람객의 몸을 3차원으로 스캔한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관람객의 움직임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화면 속 독립된 관람객의 몸은 마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Alice Through the Looking Glass)』처럼 평행세계 속 별개의 존재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화면은 소셜 미디어다. 인터넷과 SNS가 고도로 발달해 우리의 흔적을 온라인으로 남기는 것이 더 익숙한 지금, 이것들은 네트워크 곳곳에 영원히 남을 전자적 발자국이 된다. 이전 화면과 같이 관객이 앞으로 다가서면, 화면 위의 카메라가 관객을 인식하고 몸체 부분을 각종 소셜 미디어 아이콘과 프로그램 로고의 콜라주로 구현한다. 그 옆의 화면으로 다가서면 이번엔 게놈 형태로 구현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인간은 몸을 구성하는 소스 코드인 게놈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는 DNA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소스 코드는 외모 등 외부적 특성뿐만 아니라 성격과 질병까지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화면은 바코드다. 화면은 관람객의 그림자를 바코드로 변환해 보여준다. 따라서 관람객은 신원 확인의 수단으로 변모한다. 지금 우리는 데이터를 사냥하는 동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가 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트랜스 휴머니즘(Transhumanism)은 시작된다.

소개한 작품 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장치를 이용한 바이벨의 작품 70여 점을 관람할 수 있다. 우리의 인식 과정을 비판하는 것에서부터 언어와 미디어, 최종적으로는 실재에 대해 비판하는 바이벨만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세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기간: 2023년 2월 3일(금)~5월 14일(일)

전시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1층, MMCA 다원공간 및 중층공간

관람시간: 월, 화, 목, 금, 일 10:00~18:00 수, 토 10:00~21:00

관람요금: 4,000원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