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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지도를 여는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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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리포터』시리즈에서는 다양한 마법 도구들이 등장한다. 그중 ‘호그와트 비밀 지도’는 주인공 ‘해리’가 마법 학교인 호그와트 3학년 시절 ‘위즐리 쌍둥이’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작중 쌍둥이는 투명망토를 쓴 채 몰래 외출을 시도하는 해리를 보고, 그를 붙잡아 비밀 지도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처음 비밀 지도를 본 해리는 “이 쓰레기는 뭐야”라고 말한다. 쌍둥이는 그 말에 “이건 우리 보물이야”라고 반박하며 비밀 지도를 여는 주문을 가르쳐준다. 해리 말대로 쓰레기에 가까운 지도에 마법지팡이를 대고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라고 쌍둥이가 말하자, 종이에는 호그와트 전체가 나타난다. 별것 아닌 한마디는 학교 전체에서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순식간에 보여준다. 동물로 변신해도, 해리처럼 투명망토를 써도 지도를 속일 순 없다. 이 지도 덕분에 해리는 부모님을 죽인 진짜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고, 대부인 시리우스라는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된다. 만약 쌍둥이 또는 해리가 자신을 멍텅구리라고 말하기 싫어했다면 소설의 전개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아마 해리는 영원히 진실을 몰랐을 것이고, 시리우스는 남은 생을 내내 감옥에서 비참하게 보내야 했을 것이다.

심리학자 페스팅거(Leon Festinger, 1919~1989)는 ‘태도는 각자의 행동을 따른다’라고 주장하며 ‘인지 부조화 이론’을 제시했다. 개인이 가진 둘 이상의 행동, 태도, 신념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심리적인 불편함을 느낀다. 이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태도나 행동, 신념을 변경해 일관성을 회복하려 한다. 흔히 말하는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우리 자신을 심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방어 기제의 일종이다. 『이솝 우화』 속 나무에 열려있는 포도를 따 먹으려다 실패한 여우가 돌아가며 ‘저 포도는 분명히 실 거야’라고 자신에게 되뇌었던 말이 대표적인 예시다. 

지난 3월 3일(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반한 사람들>은 공개 직후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이비를 가장 뜨거운 화제로 만들었다. 교주들의 기이하고도 끔찍한 온갖 범죄 행각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진, 녹취록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중들은 같은 인간인지 의심될 정도로 역겨운 범죄 내용과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사이비의 존재에 경악했다. 그와 동시에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믿고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사이비 피해자들과 탈교자들은 입을 모아 “그동안 사이비를 믿어 왔던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사이비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입교자들은 자신이 일구어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는 이러한 강요의 이유가 우리의 자기 합리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사이비에 바친 이후, 의구심이 들 때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했는데. 여기서 나가면 아무것도 없는데’라는 자기 합리화가 빠져나오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사이비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쓰레기처럼 보이는 마법 지도에 대고 자신을 ‘멍텅구리’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비밀 지도를 여는 주문은 자신이 멍텅구리임을 인정해야 하는, 심리적인 불편함을 일으키는 한 마디다. 세상에 자기 자신을 멍텅구리라고 지칭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위즐리 쌍둥이와 해리는 불편함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친구들과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비밀통로는 물론, 작중 아무도 알지 못했던 진실에도 가장 먼저 다가간 사람이 됐다. 여우가 포도를 따 먹으려는 시도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이비에서 빠져나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용감히 진실을 밝히고 있는 피해자들도, 그동안 교주를 믿어왔던 자신을 ‘멍텅구리’로 인정하는 불편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심리적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자는 신문사가 완벽히 돌아가도록 이끌기엔 부족한 편집국장이다. 오히려 수습해야 할 사고를 치는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능력 있는 사람이 편집국장을 맡아도 부족한 이 판국에, 같은 연차 중 가장 사고뭉치였던 기자가 리더의 자리에 앉아서 더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키보드 위 손을 떨게 만든다. 그리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회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주문을 외쳐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려는 자기 합리화를 버리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할 때 말이다. 투명망토를 써도, 다른 존재로 변신해도 지도를 속일 방법은 없으니까. 속 쓰리지만 해리와 쌍둥이처럼 유쾌하고 즐겁게, 독자들 앞에서 외치겠다.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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