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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와 마주친 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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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늦은 신문 마감을 끝내고 귀가한 기자는 불편한 존재와 마주했다. 불을 켜지 않아 깜깜했음에도 그 존재의 실루엣은 단번에 보였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는 작년에도 집 근처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현관 바깥이었다. 내 방 안에 있는 건 아니었으니 소리 한번 지르고 현관문을 쾅 닫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 영역 안에 있었다. 기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문을 닫고 도망가느냐, 방 안에 들어가 못 본 척 지내느냐, 움직이는 그것을 찾아 죽이느냐.

우선 방에 들어가지 않고 피할 경우, 당장은 편하지만 내 영역을 잃는다. 방 안에 들어가 못 본 척 그냥 지낼 경우, 언제 어디서 다시 마주칠지 모른 채 불안해 해야 한다. 만약 죽이기로 했어도 실패하거나 잘못 건드려 알을 낳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자는 우선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기자’가 되는 걸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던 새내기 시절, 당시 기자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곳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마침 기회가 생겨 작년에 진행됐던 새내기 인터뷰에 인터뷰이로 참여하게 됐다. 그때 기자를 인터뷰해준 선배 기자분 덕에 본지에서 수습기자를 모집 중이란 걸 알게 됐다. 신문사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기자실 사용권과 글쓰기 특강,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 등에 마음이 갔다. 그렇게 기자는 수습 기자가 됐다. 신문사에 갓 들어왔을 땐 마냥 신기했고, 새로운 세계를 배우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기자의 서툰 글을 피드백 해준 선배 기자님의 칭찬에 한나절을 기분 좋게 보낸 기억도 있다.

하지만 갈수록 기자에게 신문사라는 존재는 조금씩 흑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잡힌 신문사 업무에 기존 일정을 취소하기도 하고, 전공 시험 3일 전 세종캠퍼스에 다녀오기도 했다. 수업 중에도 신문사 업무 확인에 진도를 놓친 적도 여럿 있고, 방학에 세워둔 계획들은 신문사 업무를 먼저 생각하다 미뤄지기까지 했다. 묵묵히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조그만 실수라도 한 날엔 엄청 눈치가 보였다. 기자가 간절히 원해서 들어온 신문사였는데, 점점 ‘이게 내가 원하던 걸까?, 과연 내게 도움이 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최근까지 그렇게 지내던 기자는 문득 S동에서 바퀴벌레를 마주한 듯했다. 바퀴벌레와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불편하고 무서웠다. 대학 4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최소 임기, 신문사에선 당연하다는 듯 ‘최소’라고 부르는 그 시간이 너무 불편했다. 하지만 피드백 체계 유지와 부족한 인력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임기일 뿐더러, 신문사 활동은 기자가 직접 선택한 것이기에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자는 S동에서 본 바퀴벌레, 다시 말해 기자 개인의 불편함을 ‘기절’ 정도 시키기로 했다. 문을 닫고 나가지도 않고, 못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죽이지도 않을 거다. 신문사에서의 3학기를 정기자이자, 팀장 기자로 보내며 책임질 선을 지키고 이번에 들어올 수습 기자분들이 더욱 편안히 활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것을 꼼꼼히 알려주고 싶다.

본인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은 기자가, 그래도 신문사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돌아보면 스무 살에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우선 혼자 찾아보고, 해결할 기회가 많았기에 마주한 문제를 스스로 풀어볼 수 있는 능력이 조금은 생겼고, 초반엔 어색했던 빨간 교정 글씨와 열정 담아 썼던 미숙한 기획서에 내려진 가차 없는 기각 통보가 이제는 마음 아프지 않다는 것. 의견을 제시하고 문제 사안을 요구, 토론하는 시간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물론 지금도 많이 어리지만 신문사를 통해서 스스로 느낄 만큼 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얻었단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건 배려해주고, 예쁘게 말해주고, 반갑게 인사해주시던 작년 선배 기자분들과 동료들이다. 덕분에 회의감이 들다가도 마음을 잡고 재밌게 지낼 수 있었다.

새로 오실 수습 기자분들도 언젠가 비슷한 고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가장 걱정이 된다. 기자가 바퀴벌레를 기절시켰듯이 자신만의 타협점을 찾고, 성장 과정을 밟으며 열정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진심 가득 담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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