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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비리의 악순환, 이젠 끊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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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2월 그동안 잠잠했던 병역 비리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안산 OK 금융그룹 프로 배구단 배구 선수 ‘조재성’은 2021년 브로커를 통해 ‘뇌전증’이라는 간질 질환을 허위로 진단받았다. 한 달 뒤 그는 사회복무요원 대상인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아 현역 판정에서 감면됐다. 이러한 병역 비리는 스포츠 선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가수 ‘라비’가 병역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조재성, 라비 등의 병역 비리를 도운 브로커 일당은 병원에서 허위로 뇌전증 진단을 받게 한 뒤, 이를 근거로 병역 면제나 병역 등급 조정을 받게 하여 1억 원이 넘는 돈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후 지난 3월 13일(월) 검찰과 병무청이 합동수사팀을 꾸려 라비를 포함한 병역 면탈 사범 137명을 적발해 재판에 넘겼으며 허위 뇌전증 병역 비리와 관련해서는 브로커, 라비, 조재성 등 130명을 기소했다.

 

▲병역판정검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출처:부산일보
▲병역판정검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출처:부산일보

 

【병역 비리에 대해 알아보자】

병역 기피는 국가가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병역(징병)을 피하려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이를 위한 비리를 병역 비리라고 부르는데, 병역 비리는 단순한 복무 기피 외에도 복무자로서 현역에서 보충역이 되거나 특정 복무지에서 복무하기 위한 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병역 비리에 사용되는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1990년대에는 해외 이민이나 유학 등 외국 국적을 얻은 다음 고령 사유로 병역이 면제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국내에 영구 귀국하는 방법이 주를 이뤘다. 외국 영주권자인 경우, 사실상 국내에 거주하면서 1년에 한 번 내기 두 번 출국하는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기도 했다. 실제로 가수 스티브 승준 유는 2002년 입영 통지서를 받은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병역 기피 의혹에 휩싸였다. 「출입국관리법」 11조 1항 3호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에 해하는 염려가 있다.”라는 내용에 근거해, 대한민국 입국 금지 대상으로 전락한 그는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을 상대로 사증(비자) 발급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하며 20년가량 법적 대응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2000년대에 들어서는 신체검사 결과를 조작하거나 고의적으로 신체를 훼손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04년 발생한 이른바 ‘병풍’이라고 불리는 대형 병역 비리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각종 수법을 통해 연예인들과 야구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병역을 불법으로 면제받은 사건을 말한다. 이들은 ‘사구체신염’이라는 질병을 조작하여 군 복무를 회피했다. 개인 병원에서 약물과 혈액을 섞은 소변을 제출한 뒤, 소변검사를 통과한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한다. 종합병원에서 소변검사뿐만 아니라 조직검사도 거치기 때문에 이를 통과하기 위해 검사 전날 저녁부터 검사 3시간 전까지 공복 상태에서 짙은 농도의 커피를 다량으로 섭취한다. 이럴 경우 콩팥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진단돼, 사구체신염으로 판정된다. 이러한 사안에 대해 2004년 9월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프로 야구 선수 50명이 불법 병역 면제를 받거나 시도했으며, 이들 중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선수들을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은 야구 선수들을 시작으로 연예인, 스포츠선수, 일반인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여 수사했다. 그리고 2004년 10월 경찰청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중 송승헌, 장혁, 신승환 등 유명 연예인의 이름도 포함됐다. 한편 야구 선수들은 총 51명이 연루됐으며, 이들 모두 2004년 잔여 경기 출장이 금지돼 시즌에서 아웃됐다. 결국 이 사건 이후 병역자원의 신체 등급 책정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지게 됐을 정도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 래퍼 MC몽 또한 군 복무 회피 목적으로 신체를 고의로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10년 입대를 면하기 위해 치아를 고의로 뽑은 사실이 드러났다. 혐의 관련 재판을 받은 끝에 증거 부족으로 2012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두 차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병역 의무를 미룬 것에 관해서는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병역 비리로 인한 피해들】

2022년에 발생한 대규모 병역 비리에는 ‘뇌전증’이라는 질병이 이용되었다. 뇌전증 허위 진단을 통한 병역 면탈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대한뇌전증학회는 이번 사건이 실제 뇌전증 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뇌전증은 전 연령층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드물지 않은 질환이다. 뇌전증 전문 의료진이 임상증상과 뇌파검사, 뇌 영상검사, 혈액검사 등을 고려해 신중히 진단하며 장기적이고 체계적 치료를 통해 대부분의 환자는 정상적 생활을 영위한다. 학회는 “뇌전증 환자들은 이번 병역 비리 사건으로 인해 뇌전증에 대한 부정적 평판이 심해져 사회적 제약과 차별이 강화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뇌전증이란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뇌전증 환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보내야 할 때이다.”라며 의견을 전했다. 학회는 이번 사건이 자칫 병역 면제 기준 강화로 실제 환자에게 불똥이 튀는 결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슈퍼주니어의 멤버 김희철은 2006년 교통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가 분쇄 골절되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했다. 그는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스티브 유의 사례를 들어 보충역으로 가는 것을 권유받아, 결국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했다. 같은 그룹 멤버 규현도 2007년 생명을 잃을 뻔한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는 나흘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고 4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등 심각한 부상을 당해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병역 비리 사례로 인해 보충역으로 군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동안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뇌전증 환자에게는 적절한 기준을 통해 병역 면제가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번 병역 비리와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자칫하면 역차별을 유발할 수 있는 병역 면제 기준의 강화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임상 소견에 의존하는 뇌전증이란 질병을 악용해 ‘뇌전증 병역 면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범죄행위 자체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는 게 현재로선 최우선일 것이다. 

 

【병역법 위반 시 처벌 조치가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렇다면 병역 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 적용되고 있는 정책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우리 헌법은 남자에게 헌법과 병역법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병역에 복무할 의무를 지운다. 병역법 등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만 18세부터 병역 준비역에 편입되며 19세가 되는 해에 병역판정 검사를 받게 된다. 병역판정 검사나 현역병지원 신체검사 등을 통해 신체 등급에 대한 판정이 내려지고 이에 따라 현역병 입영 대상자·보충역·전시 근로역·병역 면제 여부가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병역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법적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병역 비리의 대표적인 사례가 신체검사 등급을 낮추기 위해 신체를 손상시키거나 변형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체중 감량, 의도적인 청각 마비로 인해 장애 진단서를 발급받아 면제받는가 하면 본인의 증세를 과장함으로써 질병을 허위로 위장하여 병역을 회피하려는 시도도 줄곧 이어진다. 이처럼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쓸 경우, 병역법 위반으로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일부러 도망가거나 행방을 감춘 경우, 대체역으로 편입될 목적으로 서류를 거짓으로 작성·제출하거나 거짓으로 진술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신체검사 통지서 등을 받은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신체검사를 받지 않을 때는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병역법에 정한 기간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면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는다.  

한편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연예인, 체육선수, 고소득자, 고위 공무원의 병역사항을 별도 관리하는「병적 별도 관리 제도」가 2017년 9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병적 별도 관리 관리제」는 18세 병역 준비역에 편입된 때부터 현역병은 입영 시까지, 보충역은 복무 만료 시까지, 그리고 면제자는 면제될 때까지 이들의 병역 이행사항을 추적·관리 할 수 있다. 또한 병무청은 정확한 병역 판정 검사를 위한 ‘징병 전담 의사 제도’와 ‘중앙신체검사소 개소’, ‘특별 사법경찰관 제도’를 운영 중이다. 더불어 병무 행정과 관련한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비리 등을 일반 국민이 신고할 수 있도록 ‘병무 부조리 신고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병역 비리는 잊을만하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다. 해외 시민권 취득, 고의 신체 훼손, 질병 조작 등 병역 비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구체화됨을 알 수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법률 수단과 처벌을 시행하는 것만으로는 늘어나는 병역 비리 수단을 저지하기에 한계가 있다. 병역 비리에 대한 엄격한 조사와 그에 따른 법적 조치가 강화돼야 병역 비리 관련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실제 뇌전증 환자들이나 군 면제가 절실한 이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적절한 처벌을 통해 병역 비리 논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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