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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one Cool Gray 10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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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단순히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그 사이 무수히 많은 회색이 있다는 것쯤은 다들 알 것이다. 둘 중 어느 색이 더 많이 섞였냐에 따라 짙은 회색이 되기도 하고, 흰색과 다를 바 없는 회색이 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명도’ 개념에서는 흰색이 많이 들어갈수록 고명도, 검정이 많이 들어갈수록 저명도라고 칭한다. 본지 지면 종이 색은 검정색과 흰색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회색이다. 기자들의 명함도 종이색과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홈페이지 메인으로 사용되는 색은 ‘Pantone Cool Gray 10 C’라고 이름 붙여진, 신문 종이 색과 가장 비슷한 회색이다.

지난 23일(목) 김진표 국회의장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비공개 회동을 통해 내년 4월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에 적용 예정인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이하 전원위) 개최와 개편안 심의를 합의했다. 이후 같은 날 열린 본회의에서 “어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복수의 개편안을 담은 결의안을 의결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승자독식에 따른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뛰어 넘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꽃피우기 위한 정치개혁을 향한 대장정의 첫걸음이 시작되었 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이번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희망적인 의견을 밝혔다. 전원위는 국회의원 300명 전체가 참여하며, 지난 2004년 ‘국군부대의 이라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논의 이후 19년만에 개최됐다. 회동 전날인 22일(수) 국회 정개특위는 결의안을 통해 △도농복합 중 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이 세 안건을 전원위에서 심의하기로 결정했다.

총선이 1년 정도 남은 이 시점에서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근본적 이유는 현행 선거제도는 ‘정치 양극화 현상’과 ‘여야 극한 대립 현상’을 완화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크다. 한국 리서치가 한국행정연구원 의뢰로 지난해 12월 21일(수)부터 1월 15일(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자 중 61.8%가 더불어 민주당을 비호감으로 생각하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중 74.1%가 국민의힘을 비호감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이는 양당제인 미국, 영국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각 거대정당은 서로를 ‘흑’과 ‘백’으로 갈라놓은 채 각종 사안 마다 충돌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 자들이 모인 곳에서 점점 ‘회색’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제도 개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야 청년정치인들의 모임인 ‘정치개혁2050’은 지난 20일(월) 기자회견에서 앞서 제시된 세 안건 중 그 어떤 것도 위성정당 방지 방안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거대양당 중심의 승자독식 체제를 바꾸기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 확대와 동시에 소선거구 지역구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또한 위성정당에 대한 고민이 많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각각 창당했다가 ‘선거법 악용’이라는 유권 자들의 비난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정당이 오는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고 정치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이상,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한 창당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회색 지대가 사라져가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 문화에서, 거대 양당은 서로의 색에 어떻게든 물들지 않으려 모든 수를 고심하고 있다.

처음에 말했듯 본지 종이색은 회 색이다. 일반적으로 종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흰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검은색도 아닌 그 중간의 회색. 단순히 회색 종이가 더 가볍고 저렴 해서인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기자는 신문이 어느 한쪽에 물들지 않고 양쪽 입장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가 회색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흰색과 검은색 모두를 이야기하는 그 중간의 회색이 언론의 자리이며, 기자가 지켜야 할 본분이다. 흰색이 아주 조금 섞여 밝아져도, 검은색에 물들어 살짝 어두워져도 안된다. 소위 말하는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선 처음의 ‘Pantone Cool Gray 10 C’의 빛깔 그대로 존재해야 한다.

처음 엄마께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린 날이 생각난다. 그런 기자의 말에 엄마께서는 ‘‘기레기가 되지 않을 자신 있으면 하고, 없으면 생각도 하지 마라.’’는 답을 하셨다. 학보사 기자로서 이름 뒤 기자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지금, 이따금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돌아보면 의구심이 불쑥 솟아오른다. 기자는, 그리고 기자가 책임지고 있는 본지는 Pantone Cool Gray 10 C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가? 혹시나 가치관 또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이 색을 밝아지게 하거나 어두워지게 만든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면, ‘이건 Pantone Cool Gray 10 C의 색이 아니다.’라는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을 던져줄 소중한 독자가 있길,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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