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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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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달달한 복숭아 향수와 맥도날드 감자튀김 냄새. 상상이 가는 냄새인지 당신에게 묻고 싶다. 복숭아와 감자튀김, 글자조차도 어울리지 않는 둘이다. 그러나 이는 작년 9월 27일(화) 오전 10시 33분 지하철 안에서 기자가 똑똑히 맡은 냄새였고, 이상하게도 이 냄새에 매료됐다. 기자가 이 냄새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작은 메모 때문이다. 핸드폰 메모장에 써놓은 짧은 글은 읽자마자 기자의 코끝에 그때의 향이 아른거리게 만든다. 그것이 기자가 기록하는 이유다. 기록은 그날의 기억을 불러온다.

기자가 기억을 기록하는 방법은 비단 글뿐만이 아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지와 교과서, 필기 노트를 버리지 못하고 책꽂이 한 켠에 꽂아뒀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기자의 땀과 열정이 느껴지기에 이따금 꺼내 보곤 했다. 영화 팸플릿을 모으는 건 일종의 취미였다. 2013년부터 쌓아둔 팸플릿은 이제 한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두께가 돼버렸다. 어린 시절 작성한 독후감, 전하지 못한 네 장짜리 편지, 두꺼운 종이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선물 상자, 빼빼로데이에 친구들에게 받은 짧은 편지가 적힌 과자 상자까지. 낡은 기억을 불러오기 위해 거창한 것들은 필요 없다. 작은 것들에 담긴 작은 기억이 기자의 하루하루를 채워나간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기자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것들을 더욱 버리지 못하고 그날을 기록하는 용도로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자가 가장 소중히 하는 것은 짧게는 한 줄, 길게는 3000자가 다 돼가는 메모들이다. 그리고 기자가 정말 들이길 잘했다고 자부하는 습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작은 단순히 꿈을 적는 것이었다. 일어나면 사라져 버리는 그 이야기가, 분명 잠자고 있던 당시에는 그렇게 생생하고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말도 안 되는 그 이야기들을 적어 내렸다. 너무나 달콤했던 꿈도, 악몽도 모두 가리지 않고. 핸드폰 메모장 속에 적힌 기자의 꿈들은 다시 읽어보지 않아도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섬세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치 내 진짜 기억이라도 되는 양. 그리고 일기를 메모하기 시작한 건 불과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매일 숙제로 써서 내는 일기가 너무 싫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고, “오늘 나는”으로 시작해서 “참 재밌었다.”로 끝나는 의미 없는 일기가 지긋지긋했다. 이랬던 기자에게 일기를 쓰도록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바로 중학교 1학년 때 난생 처음으로 본 외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 어리(My Mad Fat Diary)>(2013)이다. 1990년 영국 10대의 자화상을 가감없이 담아낸 드라마로, 10대 청소년이 느낄 수 있는 불안정함, 사랑, 우정, 우울함을 현실적으로 다뤘다.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은 “Dear. diary”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일기장에 적는다. 어렸던 기자는 그런 모습을 동경했고, 그렇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자는 매일 일기를 쓰고, 꼼꼼하게 일정을 정리할 만큼 성실한 사람이 못 된다. 그렇게 한낱 귀찮음 때문에 일기장에 적히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 휘발되는 기억들과 감정들이 늘어났다. 강렬한 기억이라 일기장에 쓰지 않아도 언제까지라도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기자는 메모장을 켰다. 어쩌면 일기라고 하기도 어려운 짧은 글들. 그러나 기자는 알 수 있다. 이 짧은 글이 이 순간을 영원토록 기록한다는 것을.

메모장이 가득 차는 시기가 있다. 메모를 남길 당시에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메모장을 켜보고 나서야 깨닫는다. 감정적으로 큰 동요가 있을 때, 생각이 많을 때. 행복한 기록은 손에 꼽는다. 기자의 메모장은 차마 다른 사람들에겐 말할 수 없는, 기자 본인조차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을 담고 있기에. 왜인지 올해 기자는 한 번도, 무엇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자는 행복했는가? 어쩌면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도, 어떠한 감정을 깊숙이 느끼며 음미할 시간도 없었는지 모른다. 주어진 상황이 너무 버거워 스스로 감정을 무시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놨던 감정에 정면으로 마주하려 한다.

그리고 여기, 올해의 첫 번째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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