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눈앞으로 노을빛이 새어 들어왔다. 화한 햇빛이 몸을 데웠다. 풍경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켜고 한 컷. 뒤를 돌아보자 옅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태양을 등지고 한 컷. 순광 사진과 역광 사진 두 장을 찍은 게 전부인 사건을 계기로 기자는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침햇살과 저녁노을은 같은 태양 빛이지만, 함의하는 이미지는 정반대다. 아침햇살은 맑고 힘 있게 뻗어나가는 느낌인 반면 저녁노을은 엷으면서도 불그름히 퍼지는 느낌이다. 이토록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관해선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다. 아침과 달리 노을이 질 때는 햇빛이 대기권을 통과하는 경로가 길어 산란이 잘 되는 푸른빛은 없어지고 붉은빛이 남기 때문이다. 순광 사진에서 보이듯이 기자의 몸에 빛이 쏟아지는 걸 보고 마치 기자가 빛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뒤를 돌아 찍은 역광 사진에서는 흐릿한 그림자가 보일 뿐이었다. 사진을 대조하며 난해한 감정이 들었다. 이 감정을 정의하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필요했다.
태양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시각에서 태양은 스스로 빛을 내며 지구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별이다. 5778 캘빈의 표면온도는 1억 5천만 킬로미터를 날아와 기자의 배를 데운다. 하지만 태양은 달과 함께 낮과 밤의 기준점이라는 점에 더 주목하고 싶다. 태양이 뜨고 달이 지면 낮이고 달이 뜨고 태양이 지면 밤이다.
<아침이미지1> / 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새벽은 *개벽을 한다.
*물상 : 자연계의 사물과 그 변화 현상.
*개벽 : 세상이 처음으로 생겨 열림.
<빛과 그림자> / 정재삼
모든 것에는
빛으로 인해 그림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틈에도
비집고 들어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림자는
내 몸에 상처 난 것
깊숙한 내 속마음까지
내 자신을 알 수 없습니다.
빛은
단지 겉만 보이는 그림자로
내 모습만을 알았습니다.
오늘도
집 밖에 겉모습만 볼 수 있는 수많은 그림자들…
<아침이미지1>은 ‘빛이 대상을 밝힌다’를 뒤집어,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다, 즉 ‘어둠이 아침을 잉태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침이 오면 지상의 물상은 타오르지만 이는 어두운 밤이 있어줬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시를 통해 우리는 빛과 어둠이 단순한 상대어가 아닌 보완적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빛과 그림자>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다룬다. 빛이 있는 곳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바깥을 바라보면 겉만 보이는 그림자로 가득하다. 시 속 인물들은 빛 대신 그림자가 됐다. 모든 빛 이면엔 그림자가 있다. 사진 두 장을 찍고나니 해는 빠른 속도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어둠이 찾아옴과 동시에 그림자의 경계가 사라졌다. 노을은 지고 찾을 수 없지만 기자에게 쏟아졌던 그 빛은 기자에게 남아있었다고 생각한다. 빛이 들어온 느낌을 소재로 삼아 글로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는 기자에게 등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림자가 드리웠던 역광 사진이 기자에겐 왠지 더 아름답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