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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홀트 에프라임 레싱, 디자인21, 2022

〈연극의 이해〉 김동조 교수가 추천하는 『민나 폰 바른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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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세계문학사를 기반으로 문학작품 읽기 <1>』을 읽게 됐다. 독일의 세계문학사를 배경지식으로 문학작품을   읽자고 제안하는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은 ‘함부르크 연극론’으로 유명한 독일의 희곡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의 『민나 폰 바른헬름』이다. 본교 독어독문학과 이순예 교수님이 번역해서 2022년도에 출간한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왜 외국 문학을 번역본으로 읽어야 하는지, 소위 지식인들이 추천하는 도서 목록에 등장하는 외국 고전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고전 작품은 그 시대에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해, 함께 고민하면서 새로운 생산관계로 들어갔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주요 통로가 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해타산을 고려한 합리성을 익히지 않으면 생존이 쉽지 않은 최근의 현대인들에게 문학 작품의 향기나 감동 같은 표현으로 문제를 호도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고전 작품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각 개인이 어떻게 대응하면서 그 생산관계가 만들어내는 비합리의 혼돈을 영혼 속에 새긴 채 각자도생했는지에 대한 인류 문화사의 핵심적인 흔적을 텍스트로 남겨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도 나라마다 다른 성격으로 성취됐다. 따라서 외국 문학작품은 장소의 영향을 받으며 그러한 장소와 시간의 영향을 삶과 영혼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보편의 양태를 드러낸다. 결국, 인간은 문학작품에서 이념형으로 나타나면서 작품의 배경에 존재할 뿐이다. 구체는 작품의 줄거리를 엮으며 희로애락을 분출하는 개인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으로 이 작품의 부록에 작품을 둘러싼 논란을 주제로 한 논문들을 함께 실었다.

레싱이 순수함과 적확함으로 쓴    산문은 그 당시까지 알려진 바 없던 것이었다. 생각의 깊이가 종종 신진 작가들의 경우에는 문체를 흐트러뜨리기  쉽지만, 레싱은 심원하고 근원적인 측면을 잃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자신이   반박하는 의견에 대한 적개심에 의해 항상 생기가 넘치고 불쾌감이 사상을 돋보이게 했다.

군대에서 부상을 입은 고귀한 성격의 장교가 갑자기 누명을 쓰고, 명예에 상처를 입는다. 그에게는 서로 사랑하는 여인이 있지만, 결혼하여 그녀에게 불행을 나누어주게 될 것을 꺼려 그녀에 대한 사랑을 감추려 한다. 이상이 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이다. 레싱은 이렇게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큰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작품 속 대화는 재기와 매력이 넘치고 문체는 지극히 순수하며, 각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명확해서 아무리 사소한 그들의 인상도 친구의 고백처럼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박해 받고 있는 젊은 장교에게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늙은 중사는 쾌활함과 다정다감의 행복한 조화를 보여준다.

우리가 무대 위의 사랑하는 두 사람을 보면 그 이상 더 행복한 연기를 하는 한 쌍을 보기가 어려울 것임을 알게 된다. 기본 정조는 두 사람에게서 동일한 것이다. 요컨대,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심지어 한 사람이 직접 입으로 말하지 않은 머릿속의 생각마저 하나하나가  굴절되지 않고 그대로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현대극의 경우에는 작가가 매우 이질적 상태에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대화 속에 섞어 넣기 일쑤인데, 그래서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가 내적으로  단절되곤 한다. 『민나 폰 바른헬름』에는 그렇게 튕겨져 나오는 이탈 같은 것이 없다. 이 극에서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영향을 받은 후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재분화 과정에 돌입하여 곧장 대립각을 세운다. 그런데 이 재분화는 우연적이거나 비상식적인 것에서 나오는 과정이 아니다. 최근의 연극을 보면 이런 우연에 속하는 것들이 결말에    가서 구제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극에서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것에서 도출되는 것, 즉 남녀의 성격에서 심리적으로 나오는 것,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분화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장면에서 탁월하게 제시된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그 당시 일부 사람들이 레싱을 차가운 지성을 가진 작가라고 주장할 때, 이 작품에서 풍부한 감정과 사랑스러운 순박함, 명랑하고 기운찬 생활인의 마음씨와 탁 트인 인격 등을   기대 이상으로 많이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이 어두운 시대에 출현했을 때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당대의 허약한 문단을 고려할 때 생각하기 힘든 고귀한 영역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칭송했다.

레싱은 독일 시민 계급의 정신적 선구자 중 가장 천재적이지는 않지만, 제일 자유롭고 진솔한 선구자, 무엇보다도 가장 시민적인 선구자였다. 독자들이 그의 글에, 처음부터 잘못 태어났거나 이미 오래전에 수명을 다한 저술을 가리지 않고 그의 글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것을 쓴 사람의 성격 때문이다.   정직함과 남자다움, 만족할 줄 모르는    지식욕, 진리 그 자체보다 진리를 향한 노력을 더 중요시하는 자세, 어떤 질문이든 아주 은밀한 내막이 드러날 때까지 끊임없이 뒤집는 변증법, 일단 이루어낸 자신의 업적에 대한 초연함, 모든 세속적 재물에 대한 경멸, 모든 압제자에 대한 증오와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이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자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 언제라도 불의에 맞서 싸우려는 자세, 어두운 정치와 사회 현실과의 소모적 투쟁 속에서도 보여주는 항상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 이 모든 것이 –이외에도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유쾌하게 하는 것이 많지만– 레싱의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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