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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비극은 한 끗 차이

팀 버튼(Timothy Walter Burton, 1958~) 감독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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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Vincent Leonard Price Jr., 1911~1993)를 영원한 우상으로 삼았던 한 소년은 자라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즈니에 입사 후, 극악무도한 귀여움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다. 처음으로 도전한 드라마 <웬즈데이(Wednesday)>(2022)마저 흥행에 성공한 팀 버튼 감독은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됐다. 팀 버튼은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기괴하지만 따뜻하게 풀어내는 데에 도가 텄다. 팀 버튼만의 기괴한 색채에 가려진 그의 실험적이고 독보적인 연출에 대해 알아보자.

 

【팀 버튼, 그 장르의 시작】

 

뉴잉글랜드의 한적한 시골 동네에 살고 있던 ‘아담’과 ‘바바라’ 부부는 큰 저택을 장만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운전 중 길가의 개를 피하려다가 강물에 빠져버리는 사고를 당하며 유령이 돼 집 안에 갇혀 사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부동산중개업자인 ‘찰스’와 그의 가족들이 저택으로 이사 온다. 찰스 가족은 아담 부부가 생전에 애지중지하며 가꿔온 저택을 제멋대로 개조하기 시작한다. 이에 분노한 아담 부부는 찰스 가족을 내쫓기 위해 이들을 온갖 방법으로 겁주지만, 유령은 산 사람들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기 때문에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간다. 그러나 찰스의 딸 ‘리디아’만은 유령을 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어 아담 부부와 친해지게 된다. 한편 아담 부부는 산 사람을 집에서 내쫓아 준다는 인간 퇴치사 유령 ‘비틀쥬스’와 만나게 되지만, 그는 사실 사악한 미치광이 악령이었다. 비틀쥬스는 아담 부부가 의뢰를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택에 남아 리디아와 결혼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리디아는 아담과 바바라를 구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비틀쥬스와 결혼하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비틀쥬스는 계약대로 찰스가 투자를 위해 불러온 손님들을 모조리 쫓아버리고는 즉석에서 리디아와 결혼을 하려 한다. 그러나 아담과 바바라가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한 덕분에, 비틀쥬스는 사후세계 복지센터로 소환 당한다. 이후 아담과 바바라는 찰스 가족과 함께 저택에서 살게 된다.

팀 버튼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평범한 무리에 끼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캐릭터는 <유령수업(BeetleJuice)>(1988)에서 출발한다. 미치광이라는 이유로 유령들 사이에서 배척당하는 비틀쥬스와, 산 사람이지만 죽음을 염원하며 죽은 자들과 어울리는 리디아가 그렇다. 팀 버튼 작품의 단골 소재인 ‘저승’ 또한 <유령수업>에서 시작됐다. 팀 버튼이 그리는 저승은 화려하며 죽은 자들의 마을답지 않게 생동감 넘친다. 화려하고 생기 있는 저승과 오히려 고요한 이승의 대비는 발전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Tim Burton's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1993)과 <유령신부(Corpse Bride)>(2005)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유령신부>에서 무채색으로 그려지는 이승은 배금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진 산 자들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반면, 저승의 죽은 자들은 끈끈한 연대와 사랑 속에 살아간다. 이 외에도 <유령수업> 속 냉소적인 블랙 코미디, 뮤지컬적 요소와 이른바 B급 감성은 이후 팀 버튼의 많은 작품에 영향을 준다.

 

【소년이 본 진실은 무엇인가?】

 

100년 전 외딴 성에 홀로 살던 ‘빈센트 박사’는 양배추 기계에 생명을 주어 인조인간을 만들어낸다. 인조인간에게 사람의 손을 주려고 했으나 박사가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가위손을 단 ‘에드워드’만이 성에 남아있다. 어느 날 화장품 판매원 ‘펙 보그’는 마을 어귀 산 위에 있는 성에 들어갔다가 외롭게 살고 있는 에드워드를 만나게 된다. 펙은 에드워드를 집에 데려오고, 평범한 일상에 나타난 이방인에 무료하던 마을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펙의 딸 ‘킴’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남자친구 ‘짐’의 질투와 이웃들의 편견을 마주한다. 자신을 오해하고 모함하는 이웃들에게 쫓기던 에드워드는 더이상 마을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성으로 돌아간다. 에드워드는 짐에게서 킴을 지키기 위해 짐을 가위손으로 찌른다. 킴은 성까지 따라온 마을 사람들에게 분리된 가위손을 내보이며 에드워드가 짐과 서로를 죽였다고 말해, 결국 마을 사람들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홀로 성에 남은 에드워드는 킴을 그리워하며 얼음을 조각했고 얼음 가루는 마치 눈처럼 흩날렸다. 이후 에드워드가 오기 전엔 눈이 내리지 않던 마을에는 킴이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눈이 내린다.

<가위손(Edward Scissorhands)>(1990)은 동화와 현실,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문 영화다. 특히 강렬한 색채 대비가 이를 강조한다. 에드워드가 사는 검고 음침한 성과 마을 사람들이 사는 *팝 컬러의 화려한 집들이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어두운 집의 분위기와 달리, 인조인간 에드워드는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 반대로 동화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간사하고, 에드워드를 이용하며,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가차 없이 배척한다. 이러한 색채 사용은 나아가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차갑고 어두운 색채를 이용한 영화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화려한 색을 이용한 영화는 사회 문제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공포영화보다 학교를 무서워했고, 줄곧 공동묘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어린 시절의 팀 버튼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담은 경우가 많다. 평범함을 강요받고, 갖은 소외 속에서 외톨이로 지낸 소년의 모습은 에드워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팀 버튼의 결핍을 녹여낸 캐릭터들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외로워하지만, 그 안에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이 아닌, “팀 버튼”의 배트맨】

 

흉측한 기형을 갖고 태어난 ‘펭귄맨’은 하수구에 버려져 고담시의 동물원에 도착한다. 펭귄맨은 자신을 버린 부모와 고담에 강한 복수심을 갖고 33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펭귄맨은 명망있는, 그러나 부패한 기업가 ‘맥스 슈렉’에게 그의 공장이 오염물질을 마구 버리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협박한다. 슈렉은 그런 그를 세상 밖으로 꺼내어 시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한편, 슈렉의 비서 ‘셀리나’는 그의 비리를 발견하게 되고 슈렉에게 죽임을 당한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살아난 셀리나는 자신을 '캣우먼'이라 자칭하고 가면을 쓴 채 슈렉과 부패한 사회에 복수하려 한다.

<배트맨 2(Batman Returns)>(1992)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이다. 부패한 기업 회장의 비서였던 셀리나는 순종적인 여성상을 강요하는 사회에 분노하며 캣우먼으로 거듭난다. 팀 버튼은 여성을 향한 억압과 범죄에 분노하며,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불리는 팀 버튼의 영화에는 정작 ‘어른’의 등장이 적다. 애초에 주인공이 어린아이거나, 이미 어른으로 자랐음에도 내면은 성장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펭귄맨을 비롯해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2005)의 ‘윌리 웡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심을 지니고 있다.

 

“나는 늘 현실이니 정상이니 하는 단어들이 싫었어요. 누군가에게 정상인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정상일 수 있으니까요." 팀 버튼이 말하는 팀 버튼은 이렇다. 언제 어디서나 다수와 소수는 나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스스로를 비정상이라 느낄 때, 그럼에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을 때 팀 버튼을 찾아라.

 

*팝 컬러(pop color): 채도가 높고 화려한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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