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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엠히어〉(2021)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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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SNS를 통해 세상에 우리를 드러낸다. 그리고 SNS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때로는 SNS에서 만난 인연이 일상에서 만난 인연보다 흥미롭고 소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 뒤늦게 사춘기가 온 아저씨가 있다.

프랑스에서 낡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스테판’은 장성한 두 아들을 둔 아저씨이다. 스테판은 큰아들의 결혼식 당일, 큰아들이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는 아들이 동성애자이며 이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다른 가족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을 혼자 모르고 있을 정도로 스테판이 가족과 소원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대대로 물려받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별점 테러'에 스트레스 받는 스테판의 유일한 즐거움은 SNS에서 알게 된 '수'와의 대화이다. 수는 자신을 한국에 사는 화가라고 소개한다. 두 사람은 프랑스와 한국의 풍경을 공유하고, 스테판은 수가 그렸다는 그림을 사기도 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스테판이 SNS에 빠지면서 가족과의 사이는 더욱 틀어진다. 수와 채팅을 하며 운전하다가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스테판은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서울에서 수와 벚꽃을 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는 수에게 인천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무작정 한국으로 향한다.

▲ #아이엠히어 포스터
▲ #아이엠히어 포스터

 

기자는 스테판이 수를 기다린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으로 향했다. 스테판은 이곳에서 무려 11일 동안 수를 기다리며 공항 안에서 술을 마시거나 식당, 미용실, 영화관에 가고 공항 광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감상하기도 한다. 스테판과 레스토랑에서 함께 일하는 ‘수잔’은 스테판에게 한국이 어떠냐고 물었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야 관광 중이지. 쇼핑도 하고, 인삼밭도 가고. 여기 풍경이 끝내줘. 황홀하더라. 도시도 크고 사람이 많아. 생동감 넘치는 곳이야. 사람들은 정말 좋은데 다들 엄청 바빠. 길거리에 있어도 눈길도 안 줘. 여행 많이 안 가봤지만 여기 좀 희한해. 투명 인간 된 기분이야.”

 

▲스테판이 수를 기다린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스테판이 수를 기다린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스테판에게 한국 사람들은 한 마디로 ‘따뜻하지만 차가운 사람’이다. 스테판은 담배를 피우며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자신도 식당을 운영한다고 말을 걸지만, 여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한다. 스테판이 공항 벤치에 누워서 잠을 자도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그저 다들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판은 뛰어난 친화력으로 인천국제공항 최고 ‘인싸’가 된다. 스테판은 공항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만경정에서 내려다본 인천국제공항
▲만경정에서 내려다본 인천국제공항

 

만경정은 스테판이 공항 안에서 돌아다닌 많은 곳 중 하나이다. 스테판은 이곳에서 수에게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며 답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만경정은 인천국제공항 4층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에서는 공항 내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자는 만경정에서 공항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이 짐을 끌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은 아마 화려하고 바쁜, 그러나 조금은 차가운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외국인들이 처음으로 마주할 한국의 풍경인 인천국제공항은 기능적 설계를 뛰어넘어 매우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각종 꽃과 나무,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양과 전통 양식이 이곳이 ‘한국’임이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공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사람보다 캐리어를 끌고 각자의 목적지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주변에 무관심한 채 그저 자신이 갈 곳으로 향하는 조금 차가운 모습도 보여준다.

 

“고마워요, 수. 정말 희한한 휴가를 보내고 있어요. 내 사진 봤겠죠? 다 당신 덕이에요. 당신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당신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전화 걸기가 두려워요. 어디 지하실에 있는 사기꾼이 받을까 봐. 처음부터 날 갖고 놀았는데 내가 놀아난 거예요, 바보같이. 당신은 생각도 없었는데 내 멋대로 왔죠. 딱한 인간! 이젠 의심스러워요. 존재하기나 하는지.”

 

공항에 있는 동안 스테판은 여러 사람과 술을 마시고, 농구팀에게 밥을 사주고, 식당에서 요리사들과 함께 요리하는 등 공항에서의 행각을 인스타 게시물에 올렸다. 모든 게시물에 수를 태그해서 기다리고 있음을 알렸기에 ‘프렌치 러버’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스테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스테판은 불법 체류자로 의심받아 경찰에 연행됐다가 풀려나던 중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유명해진 것을 알게 된다. 원치 않게 유명해진 스테판은 공항에서 도망치듯이 나와 수에게 원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날이 밝은 후 수가 영상통화에서 자신이 일하는 곳이라며 보여준 건물로 향한다. 서울에 도착하여 수의 일터를 찾은 스테판은 드디어 수를 마주하지만 수는 스테판을 보고 도망간다.

 

▲수가 일하는 빌딩
▲수가 일하는 빌딩
▲스테판과 수가 만난 곳
▲스테판과 수가 만난 곳

 

 

“왜 안 나왔어요?”

“아직도 모르는 거죠? 이해 못 할 거예요. ‘눈치’를 모르시니까.”

“눈치가 뭔데요?”

“프랑스어엔 없는 말이에요. 눈치는 상대가 원하는 걸 이해하는 거예요. 듣지 않고도. 감정적인 지능이랄까? 상대의 기분을 알아내는 건데 물어보지 않고도 알아내는 거예요.”

 

수는 무턱대고 자신을 찾아온 스테판에게 좋았던 관계를 망친 것이라며 화를 낸다. 수에게 스테판은 그저 SNS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일 뿐이었다. 물론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수를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실제로는 마주한 적 없는 SNS에서 알게 된 사람이 지금 자신을 만나러 일터까지 찾아왔다고 생각해보면 매우 당혹스러울 것이다. 스테판은 가족에게 외로움을 느끼고 SNS 친구인 수와 더 가깝다고 생각했겠지만, 스테판의 현실은 SNS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뭘 하죠?”

“현실로 돌아가야죠.”

 

▲스테판과 수가 거닐며 대화를 나눈 청계천
▲스테판과 수가 거닐며 대화를 나눈 청계천

 

수는 스테판과 서울 곳곳을 거닐다가 유치원에 있는 자신의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한다. 스테판은 수와 헤어지고 어디냐는 아들의 연락에 금방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두 아들은 스테판을 데리러 서울로 온다. 스테판은 두 아들과 짧은 서울 여행을 즐기며 가족의 사랑을 깨닫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SNS의 발달은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제공했지만, 소중한 사람의 존재를 지우기도 한다. 당장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보다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엠히어>(2021)는 SNS 속 친구는 그저 허상일 뿐, 나를 가장 아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니 그들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현실에서 살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작년, 기자는 여러 술자리에 참여하며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화목한,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있다 집으로 돌아가 혼자 천장을 보고 누워 있을 때, 그 격차가 매우 크게 느껴졌다. 당장 기자의 옆에 있는 가족이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보다 더 자극적인 쾌락을 주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기자의 경험이 스테판과는 조금 다르지만, 소중한 사람을 잊고 어쩌면 의미 없는 인맥에 집착했던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기자는 수에게 집착하는 스테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지금,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SNS에 집착하는 수많은 스테판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현실을 사세요. 당신의 사람은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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