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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 '바람' 1970년, 나무, 종이, 가변설치,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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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 '바람', 1970년, 나무, 종이, 가변설치,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이승택, '바람', 1970년, 나무, 종이, 가변설치,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묶기’ 조각, ‘한국 미술의 선구자’ 등 한국의 실험미술가로 잘 알려진 이승택은 1959년에 홍익대학교 조각과를 졸업했다. 그는 러시아의 구성주의, 사실주의의 화집과 여러 서구 조각들을 접하면서, 세계 조각의 흐름을 공부했다. 선구자라는 말에 걸맞게 대학시절부터 기성에 저항하는 반항적 작품을 만들어온 그는 1958년 졸업전시에 출품한 <역사와 시간>에서 포물선 형태의 석고 덩어리를 가시철망으로 감은 조각을 출품했다. 한반도의 역사와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역사와 시간>은 당시 전통적인 재료로 형상을 빚어낸 구상조각들 사이에서 이목을 끌었다. 그 이후 1960년대, 기존 조각에서 주로 사용되는 나무, 돌, 브론즈 등과 같은 딱딱한 물성을 가진 재료들이 아닌, 양감이 없는 종이, 헝겊, 유리, 비닐 등과 같은 낯선 재료를 사용해 반(反) 조각적 실험을 거치며 조각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그의 작업은 ‘형체 없는 조각, 비조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비조각’은 그의 작품관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기존 조각계에서 쓰이지 않던 재료를 실현하면서 조각의 새로운 영역과 표현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개념이다. ‘조각이 아닌 조각’, ‘비조각’이 의미하는 바는 이승택의 반항적인 정신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바람> 역시 전통적이지 않은 재료를 이용하여 비물질을 표현한 비조각 시리즈 중 하나이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시골의 성황당, 새끼줄, 풍어제와 같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바람>시리즈를 제작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 않은 불, 연기, 바람과 같은 비물질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흔들리는 풍어제의 깃발처럼 이승택은 공기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와 종이를 이용했다. <바람>에서 나무에 연결되어 있는 종이는 흡사 날개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바람이 불면 날개는 바람의 곡선에 맞춰 종이는 몸을 상하좌우로 흔들며 날갯짓을 시작한다. 그는 이러한 조각의 움직임을 통해 보이지 않았던 바람을 시각화했다. 덩어리로 공간을 점유하지 않아도 조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조각의 개념을 확장시킨 것이다. 이러한 ‘비조각’의 개념과 이에 깃든 그의 꺾이지 않는 도전정신, 전위적 태도를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인 <바람>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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