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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4월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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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평소보다 일찍 만개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처럼 4월 중순 중간고사 시기에서야 피던 꽃이, 기자의 생일인 3월 말에 목련과 함께 피었다. 이는 1924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빠른 개화다. 벚꽃 축제로 유명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부는 이미 꽃이 피었다 지고 있다고 한다. 만개한 꽃은 때와 상관없이 아름답지만, 기자는 마냥 그 모습을 즐길 수가 없었다. 꽃이 피고짐을 거듭하는 동안, 지구라는 터전은 점점 망가져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제6차 기후 변화 종합보고서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의 행동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한다.”라고 경고했다. 1988년 시작된 IPCC는 1990년 제1차 보고서 발표 당시만 해도 ‘지구 지표 온도 상승이 인간의 영향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다.’라며 지구 온난화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소속 과학자들은 세계 각국 정부에게 하루빨리 대응책을 내놓으라고 경고하고 있다. 학계는 지구 지표 온도가 1.5℃ 상승할 경우 극심한 폭염과 가뭄을 비롯한 기후변화와 해수면 증가 등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보고서에는 산업 혁명 이전과 비교해 전 지구의 지표 온도가 1.09℃ 상승했다고 되어 있다. 이 흐름이라면 봄은 우리가 떠올리는 봄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가 아닌 새학기가, 심지어는 새해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우리가 4월에 잃은 것은 봄 뿐만이 아니다. 유채꽃이 만발하는 이때 즈음, 제주도 사람들은 75년전 핏빛으로 물들었던 자신들의 터전을 잊을 수 없다. 냉전 시기의 혼란이라는 이유로,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던 그때 그 사람들은 허망하게 희생당해야만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다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공화당과 자유당, 자유통일당 등은 3월 21일(화) 제주도내 곳곳에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며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재했다. 지난 2022년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책 또는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 현수막을 게재하는 경우 지자체 차원의 철거 또는 행정 집행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현수막의 경우 4·3 사건을 명백히 왜곡함으로써 「제주 4·3특별법 제13조」를 위반했다고 지자체가 판단해 30일(목) 강제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강병삼 제주시장과 이종우 서귀포시장은 이날 오후 발표한 공동 성명문에서 "현재 도심 곳곳에 걸려있는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현수막은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담은 정당 현수막이 아닌, 정당의 표현의 자유를 넘어 4.3특별법을 정면으로 위반해 4.3 유족의 명예를 극심하게 훼손하는 불법 현수막'이다."라며 "따라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신속한 철거 절차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4월이 몇 번이나 더 돌아와야 소중한 것을 잃은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될까. 

4월에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이 이들 뿐이라면 참 좋을 테지만, 역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가야 했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는 거꾸로 국민을 총칼로 짓밟았다. 여기엔 이제 잎새를 틔우던 젊은이들부터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었던 노인들, 심지어는 초등학생들까지 포함됐다. 이들에게도 4월은 잎새가 움트는 달이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달이다. 21세기에도 4월의 상실은 반복됐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평범한 고등학생들, 선생님들과 소중한 사람들과의 여행에 들떴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허망하게 스러져간 생명들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역사의 시발점이 됐다. 배가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던 그날을 우리 모두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니, 슬픔과 분노, 그리고 상실감 때문에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304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여기에 속한 한명 한명의 인생과, 거기에 연결되어있던 사람들, 더 나아가 모두의 기억을 사고 전 과거로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상실만 반복될 뿐이다.

어렸을 적 기자는 4월이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고 생각했다. 순우리말로 ‘잎새달’이라는 이름 에 어울리게 꽃과 나무들은 1년 중 가장 아름답고, 사람들은 봄 날씨를 즐긴다. 하지만 자라면서 보고 느낀 4월은 너무 아픈 달이었다. 우리가 4월에 잃은 것이 너무 많으며,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되찾아올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우리의 상실을 위로해주지 않는다. 4월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네’가 없는 4월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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