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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음을 선택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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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세상을 뒤흔들만한 진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밝힐 수 있는가? 단, 진실을 밝힐 시 자신을 포함한 가족, 친척, 친구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1986년 9월 6일 월간 《말》지의 특별호 <보도지침-권력과 언론의 음모>를 통해 ‘보도지침’이 폭로됐다. 한국일보의 김주언 기자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1985년 10월 19일부터 1986년 8월 8일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전달했던 보도지침 584건을 공개한 것이다. 보도지침이란 전두환 정부 당시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문화공보부에서 언론사들에 일제히 전달한 보도 통제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뉴스의 비중이나 보도 가치에 관계없이 모든 언론사가 사건 내용, 보도 여부, 보도 방향, 기사의 내용 및 형식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 받았다. 해당 자료는 지난 2020년 원본이 공개됐는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오픈아카이브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보도지침의 내용 중 몇 가지만 꼽자면 다음과 같다. “특파원들 기사 빨리 사전 검열받을 것”, “‘국회의원 미행, 도청 말라’ 보도하지 말 것”, “‘군부 집권 가능성 20%’ 보도하지 말 것” 등 내용이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의도가 투명하여 놀랐던 기억이 난다. 보도지침 폭로 사건 이후 민주언론운동연합회 사무국장 김태홍과 실행위원 신홍범, 그리고 김주언 기자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됐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기자는 목숨보다 중요한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만약 기자가 보도지침이 내려오던 당시 기자로 활동했대도 당연히 김주언 기자처럼 대중들에게 보도지침의 존재를 밝혔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지금, 그때처럼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답변은 솔직히 말해 불가능할 것 같다. 기자는 독재 정권 시절,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진실을 위해 행동했을 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알고 있다. 책을 통해, 영화를 통해, 연극을 통해 접했다. 기자의 행동으로 인해 나의 가족이 힘들어질수도 혹은 다칠 수 있으며, 기자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갈 수도 있다. 감히 상상하기도 두려운 끔찍한 일들이다. 그리고 사실 현 상황에서 당당하게 진실을 밝힐 거라 말하는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지금 누구보다 안전한 상황에서 과거를 상상하고 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기자의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실제로 그 상황에 존재했던 사람이라면, 이렇게나 쉽게 단언할 수 있는 질문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또한, 그 시절을 실제로 살았던, 용기를 내셨던 분들께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씨가 SNS를 통해 자신의 집안과 지인의 비리에 대해 폭로했다. 폭로의 내용은 마약, 기업 비리, 성범죄 등 다양했다. 그러나 그 후 전두환 일가 관련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다만, 전우원 씨가 인스타그램 생방송 도중 마약을 투약한 혐의에 대해 경찰 조사가 진행됐을 뿐이다. 지금은 경찰서에서 풀려나 광주를 찾았다고 한다. 사실 놀라웠다. 그는 이미 오랫동안 편한 삶을 살아왔고,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자신의 일가를 폭로한 것일까. 이런 행동들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기자는 옳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사람들처럼 두려움을 넘어선 진실의 가치를 믿고 싶다. 아직은 그럴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사실, 기자가 사는 평생 그런 용기가 필요한 일은 없을 수도 있다. 별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자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것 같다. 나 자신은 과연 목숨보다 중요한 진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가? 옳음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가? 옳음을 당당히 선택할 수 있는 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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