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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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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3호가 발간되는 4월 4일(화)는 기자의 생일이다. 생일은 매년 그날 태어난 사람, 그러니까 오늘은 기자를 축하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자의 첫 번째 생일에 기자 말고도, 어쩌면 그 당시에는 기자보다 더 큰 축하를 받았을 사람이 있다. 바로 기자의 엄마이다.

기자의 부모님은 기자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맞벌이를 했었다. 기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부모님이 모두 집에 늦게 들어와 한 살 차이 나는 오빠와 둘이서 저녁을 먹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가스레인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마치 컵라면을 먹듯 큰 국그릇에 봉지 라면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먹었고, 어둠이 무서워 TV를 켜 두거나 거실 불을 켜고 방문을 연 채로 잠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에게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오빠의 사춘기로 엄마는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기자는 이때 엄마와 오빠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였다. 오빠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갔고, 아빠는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다른 지역에 가게 돼 약 1년 동안 엄마와 둘이서 살았다. 당시 기자는 이사로 인해 기존에 다니던 학교에 가려면 약 한 시간 정도 통학해야 했다. 아침잠이 많은 기자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자라며, 기자의 엄마는 그 긴 거리를 아침마다 데려다주셨다. 그리고 시간이 맞으면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이때가 기자의 기억 속에서 엄마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해이다. 그래서인지 기자는 어릴 때 부리지 못했던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에 상한 마음을 엄마에게 풀며 집을 나가기도 했다. 지갑도 없이 핸드폰만 들고 나간 기자는 추운 날씨에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후에 엄마는 기자의 당돌한 반항이 엄마에게 큰 상처를 줬다고 했다. 짧은 가출과 약 3일의 단식 투쟁 후 기자가 선택한 것은 무단결석이었고, 평소 출석을 중요시했던 엄마는 화를 냈지만 결국 기자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기자가 집을 나가고 밥을 굶으며 학교에 가지 않을 정도의 사건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몇 번의 가출 시도를 했지만, 집에서 나가기도 전에 제지당했고 기자의 반항은 깊은 흔적을 남겼지만, 누구도 그 흔적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해, 기자도 오빠와 같은 학교에 가게 되면서 또다시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됐다.

처음 캠프 형식으로 학교에 갈 때, 기자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게 무서웠다. 중학교 3학년 때 크게 반항하기는 했지만 우습게도 어릴 적 결핍이 채워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 가서도 잘 지내고 마음속에 새겨두라며 엄마가 틀어준 <혼자라고 생각 말기>라는 노래에 눈물이 났지만, 엄마에게 우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눈이 아프다는 핑계를 댔었다. 그리고 엄마는 기자와 헤어지고 나서도 기자의 눈이 아픈 것을 걱정했다. 어쨌든 기자는 고등학교 3년을 모두 마친 후에야 다시 엄마와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기자의 엄마는 일을 그만두었고 기자는 집에서 통학을 한다. 그러나 빼곡하게 채워진 스케줄표는 기자가 여전히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없음을 보여준다. 엄마는 오후 10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는 딸을 11시, 12시, 심지어 1시가 넘은 시간에도 기다린다. 기자가 몇 시에 집에 들어가든 엄마의 방은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오늘도 기자는 늦은 시간에 귀가하겠지만, 오늘도 엄마는 기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매일 살 빼겠다며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안 챙겨 먹는, 매일 일해야 한다며 밤을 새우다 불도 못 끄고 잠드는, 매일 놀러 다니느라 늦게라도 들어올지 모르는 딸을 위해 방을 치워주고, 딸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냉장고에 가득 채워두고, 잠도 안 자면서 딸을 기다린다.

기자는 21살이나 돼서 초등학생 때보다 더 많은 잔소리를 듣고 있다. 밥 좀 먹어라, 불 끄고 자라, 일찍 다녀라, 방 좀 치워라, 또 넘어지지 말고 조심히 다녀라. 어쩌면 엄마도 기자가 어릴 적 기자에게 하지 못했던 잔소리를 하며 기자가 느꼈던 결핍을 채우려는 걸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딸이라 미안하단 말,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는 기자는 그저 장난치듯이 “엄마, 내 생일 축하해.”라고 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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